영화 <씽투게더>를 봤다. 일을 하면서 BGM으로 틀어놓을 만한 영화를 찾아보던 참이었다. 복사하기 붙여넣기의 노동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영화가 딱이지, 또 영어 대사니까 내가 하는 일에 집중이 흐트러지지는 않을 거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나는 영화 속 한 장면에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버스터 문을 대표로 하는, 공연팀은 좀 더 큰 곳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지만, 다들 주저하고만 있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거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용기를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을까, 이야기의 흐름상 저 인물들이 이렇게 공연을 포기해 버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데, 그들의 용기는 의외로 아주 작은 말 한 마디에,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졌다.
“밑져야 본전이죠!”라는 말. 주저하던 그들은 다소 무책임해 보일 수 있는 저 말에 환한 표정을 되찾았고, 공연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와, 이렇게 금방 풀린단 말야? 애초에 단단히 묶인 마음도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에멜무지로 묶인 거였다. 외래어 같아 보이지만, 명백히 메이드 인 코리아인, 우리말 ‘에멜무지로’는 ‘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 ‘결과를 바라지 아니하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하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덤비는 마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누군가 톡 하고 찔러주면 열정이 우르르 쏟아질 만큼 느슨히 묶인 상태의 마음이 바로 ‘에멜무지로’인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나 또한 에멜무지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쫄보 같은 마음은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겉으론 신중한 척한다. ‘용기 없음’을 ‘신중함’으로 바꿔치기 하는 비겁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또 그러다가 누군가 톡 하고 찔러 주면 ‘실은 말야’하고 ‘난 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로 이어지는 속마음이 술술 나온다. 이것저것 동기부여가 되는 말들을 잔뜩 들은 날은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너 잘할 것 같아”라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 바로 스르르 풀려 버리는 ‘에멜무지로 인간’. 뭘 몰라야 용감해진다는데, ‘에멜무지로’도 ‘무지’해야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톡 하고 건드려 주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난 아직 덜 묶여 있어. 풀어 줘!’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누군가에 가서, 손가락의 긴장을 살살 풀고, 그의 마음 한쪽의 끈을 쓱 당겨 풀어내 줘야지. 그러면 그 안에 담긴 많은 생각들, 자신감들, 계획들, 때로는 엉뚱한 공상들까지 마구 풀려 나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친구들과 어떠한 일을 시작할 때도 난 에멜무지로 행동한다. 나만의 생각으로, 내 고집으로 묶여 있지 않으니, 친구들의 제안에 “그럴까?”, “좋아!”라고 말한다. 내 마음속은, 내 머릿속은 금세 풀릴 준비가 되어 있기에, 어떤 생각이든, 말이든 주워 담을 수 있다. 한 집단이 제대로 활동하려면, 리더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말에 첫 번째로 동의하며 나서는 사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주체적으로 누군가를 이끌 능력은 부족해도, 첫 번째로 동의하고 신나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자신은 있다. 뭔가를 시작하려는 팀이 있다면 날 데려가야 크게 성공할 것이다.(ㅋㅋ)
물론 어떠한 일에 무턱대고 덤비는 것이 다소 위험할 수는 있겠으나, 다양한 경험치를 쌓아 결괏값을 도출해 내는 작업은 나에게 늘 이득이다. 언제든 동기부여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이제는 스스로 발동 스위치를 누르고, 다른 누군가의 마음도 쉽게 풀어 헤쳐, 함께 으쌰으쌰 일해 보는 날을 꿈꾼다. 그 팀의 이름은 ‘에멜무지로’가 딱 알맞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