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을 먹고, 책상으로 돌아와 버튼을 눌렀다. 윙- 소리를 내며 책상이 위로 올라갔다. 얼마 전, 구입한 모션 데스크 이야기다. 밥을 먹고 바로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면 소화도 안 되고, 엉덩이만 커지는 것 같아 고심하던 차에 이 움직이는 책상을 구입해 보았던 것이다. 밥을 먹고 난 후, 잠시 쉬었다가 일을 시작해도 되지만, 요즘은 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뭐가 됐든 책상 앞에 있어보려 했던 거다. 바로 앉지는 않고, 서서 뭐라도 해 보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책상에 앉아서 내가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조금 졸음이 몰려올 시간이 되면, 책상을 올려 서서 일한다. 처음에는, 앉아서 일할 때의 높이, 서서 일할 때의 높이, 두 개만 사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꽤 다양한 높이를 쓰고 있다. 수업 준비를 위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서서 일할 때와 앉아서 일할 때의 중간 정도의 높이로 맞춰 두고, 턱을 책상에 괸 상태로, 문제를 푼다. 원체 눈이 나빠 가까이 봐야 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도 활자를 가깝게 보는 게 더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또, 애들하고 수업할 때는, 의자 팔걸이에 살짝 걸터 앉아 책도 보고, 칠판도 봐야 하니, 아까 턱을 괬던 높이보다 조금 더 높게 책상 높이를 설정해 둔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인생처럼 책상 앞 작은 공간에서도 나는 오르락내리락 일희일비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너무 멀리 간 걸까. 높이를 조절하며 일을 효율적으로 하고 싶었던 건데, 요즘은 그냥, 내가 다양한 높이로 애쓰는 것 같아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곱도 못 떼고 자리에 앉아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민하고, 그러면서 난 왜 이렇게 느릴까, 난 왜 탁월하지 못할까 답답해 하면서 애면글면하고 있다.
우리말 ‘애면글면’은 ‘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양.’을 뜻한다. 나의 애씀은 대부분 ‘글’을 쓰는 과정 중에 발생하는데, 이와 같은 상황이야말로, 애면’글’면이지 않을까. ‘글면(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할까. 애쓰는 상황을 해결하려면 말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애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애쓰고 있다는 것은 잘하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니, 나의 애씀을 스스로 칭찬해 주며, 조용히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아마 다음 스텝은, ‘대면’이 될 것이다. 내 상황을 정확히 대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다, 없다’를 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책상 앞에서 골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할 수 있다’의 경로에 접어든 것이니, ‘할 수 있다, 없다’의 고민은 시간 낭비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상황을 ‘대면’한 후의 스텝은, ‘변화’에 있었으면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변화를 가져 올 것인지 생각하고 조금 더 나은 변화 쪽으로 움직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또 앞서 한 일과 행위 자체가 변화한 일로 다음 일을 정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일을 일어서서 했다면, 다음은 살짝 변화를 주어 단순 업무를 앉아서 해 봐야지. 이땐 내가 좋아하는 영상도 살짝 틀어 주고. 타이머를 1시간씩 맞추고 해당 시간이 다 지나면, 또 다른 일을 해 보고, 방금 전 일이 나쁘지 않았다면 한 시간 더 하는 방식으로.
애쓰지 않고 살아갈 세상이 죽었다 깨어나도 오지 않을 거라면, 애쓰다의 ‘애’를 ‘사랑 애(愛)’로 바꾸고, 살아봐야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사는 세상 또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마음을 다잡고 싶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내가 나에게 쓴 응원과 위로였다, 이 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