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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Jun 05. 2024

아, 뜨막하고 싶다

어릴 적 나는 생일이 좋았다. 생일이 되면, 그날 하루 종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의 생일을 알고 있고, 나에게 ‘축하한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내 사진을 보면, 케이크 위 활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을 보며 초흥분 상태가 된 꼬맹이가 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 가면서, 생일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일 뿐이고, 생일이라고 해서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차근차근 알아갔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생일에 들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들뜨고 나면 그 다음에 찾아올 평범함이 너무도 고요하고 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0대에 만났던 남자친구들 중 몇 명은 나의 첫 생일을 매우 화려하게 만들어 주고는 헤어질 땐 정나미를 똑 떨어지게 만들었었다. 또 고등학교에서 잠깐 일했을 때에는, 내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짠하고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는데, 신나 하는 다수의 학생들 뒤로 조급해 하는 아이들의 얼굴도 보았다. 공부하는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담임도 아닌 시간강사 선생님 생일에 시간을 쏟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친구들 다수가 하자니까 마지못해 선생님의 생일케이크를 위해 초코파이를 사고 롤링페이퍼를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뭔가 뻑적지근하게 차려진 만남과 이벤트들에 거부감이 들었나 보다.   

   

근데 사실 말로는 뻑적지근한 이벤트들을 싫어한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생일을 별일 없이 지나게 되는 것에 실망할까 봐 미리부터 감정을 조금 식히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특별한 날뿐만이 아니라, 특별한 소식이나 평가에도 유지되었다. 누군가 칭찬을 해 주어도, ‘들뜨지 말아야지’ 하며 감정을 내리누르고, 기다렸던 소식을 듣게 되어도 혹은 그 반대여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의미로, 이번 생일에는 카톡에서 ‘내 생일 알림’을 꺼버렸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가까운 사람들은 카톡 알림이 없어도 축하의 말을 건네줄 터였다. 내 생일 알림이 다른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알림을 보고 형식적으로 보내는 축하를 받고 싶지 않았으며, 많은 축하 인사가 오지 않아도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뜨막하다’는 ‘사람들의 왕래나 소식 따위가 자주 있지 않다.’라는 뜻이다. 요즘 나는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관계에서 뜨막했으면 좋겠다. 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예의 없이 막하겠다는 게 아니라, 뜨막하겠다는 거다. 사람들 사이가 서먹해지는 것은 ‘뜨악하다’라는 말을 쓴다. 엄연히 단어가 따로 존재하니, 뜨막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미는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사람과는 왕래나 소식 따위가 자주 있지 않아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잘 지내라’ 생각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도 어색하지 않다. 가끔은 뜨막해도 좋다.     

 

또 들떴다가 식어버리는 내 감정과도 뜨막하고 싶다, 멀어지고 싶다. 어떤 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일희일비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일희일비하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 나에게 막하는, 나를 막 대하는 행동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뜨막하는 거다. 잘은 몰라도, ‘뜨막하다’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가 벌어지다, 즉 사람들 사이가 ‘뜨다’라는 말에서 온 것일 거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감정이 들뜨다’의 ‘뜨다’에서부터 온 말 같기도 하다. 대개 사람들의 감정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바닥에 착 붙어 있는 상태이다. 마치 바다 바닥에 딱 붙어 있는 넙치 같다. 검색해 보니, ‘넙치’는 높은 수압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삶의 불안과 압력을 견디기에는 들뜨기보다 몸을 낮추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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