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기 시작하면, 편의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편의점에 있는 누군가를 찾듯이, 편의점 안을 기웃기웃. 예전엔 바깥에 나와 나를 기다리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편의점 안에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기다랗게 목을 빼고 편의점 안의 상황을 살피게 된다. 저기 있다!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뽀얀 얼굴의 호빵! 이 계절을 사랑하는 이유, 호빵을 빼고 말할 수 없다.
호빵은 그 인기만큼이나 맛도 다양한데, 이 맛 선택에 있어서만큼은 난 아주 완고하다. 호빵은 무조건 팥! 피자나 야채는 싫다. 달달한 팥, 엄청 뜨거운 팥이 입 안 어느 한 구석에 찰싹 달라붙기라도 한다면 호들갑스럽게 입을 벌려 가며 떼어 내야 한다. 그 과정도 호빵의 매력이라 해야 한다.
우리말에는 ‘빵그레하다’라는 말이 있다. ‘입만 예쁘게 조금 벌리고 소리 없이 보드랍게 웃다.’라는 뜻인데, 입천장에 붙은 팥을 떨쳐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여, 곁에서 보고 있는 누구든 빵그레하게 만든다. 이 단어는 ‘방그레하다’보다 센 느낌의 말인데, 이렇게 느낌을 세게 만들기 위해선 ‘빵’이 필요한 법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빵과 가까워졌던 건. 그 당시 가정 시간에는 영양소를 바탕으로 식단을 짜는 내용을 배웠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탄수화물의 대표 음식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밥, 빵, 국수였다.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아침엔 밥, 점심엔 빵, 저녁엔 국수로 탄수화물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예전엔 쌀이 부족해서 이런 식으로 식단을 짜는 것을, 중학교 교육 과정에 넣었다는 말도 있던데, 그 의도가 뭐가 되었든 나는 그 순간부터 ‘아, 세끼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다. 지금도 ‘저녁 뭐 먹을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점심 때 뭘 먹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점심에 밥을 먹었다면, 안심하고 ‘저녁은 빵으로 가자’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서 피자빵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시식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엄마의 저녁 먹으라는 말에 집으로 갔었다. 그날 저녁, 나 빼고 남은 친구 둘이 그 빵을 모두 먹어버렸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옷이며, 팔꿈치며 밀가루 반죽의 흔적이 다 남아있어, 누가 보면 피자빵은 나 혼자 만든 것 같아 보일 정도였는데, 정작 나는 그 빵의 맛을 볼 수 없었다니,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꽤 어린 나이였지만, 그게 바로 배신감이었다는 것은 정확히 알았다. 지금도 피자빵만 보면, 그때 느꼈던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삶의 진리를 떠올리게 된다.
시간은 흘러흘러 고등학교 1학년, 그 당시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꽤 많았다. 50명씩 열 다섯 반이나 되었으니, 세 개 학년의 아이들이 다 모이는 쉬는 시간의 매점은 그야말로, 여기서 꺼내달라 소리치는 지옥불의 현장 같았다. 그땐 왜 질서도 없었는지, 줄을 서서 한 사람씩 원하는 것을 말하는 시스템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그 매점을, 같은 재단의 정보고등학교도, 중학교도 함께 쓰고 있어서 쉬는 시간 10분 안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나오려면 요령이 필요했다. 그 요령은 간단했는데, 우선 상황을 살피며 말을 아끼고 서 있다가, 누군가 “땅콩샌드 주세요”라고 하면 타이밍 좋게 “저도요.”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면 매점 사장님은 땅콩샌드를 두 개 꺼내와서 그 친구에게 하나, 나에게 하나 건네셨다. 그러면 난 딱 세 글자를 말하고 아주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자, 이제 땅콩샌드의 양쪽 식빵을 펼친 후, 한곳에 뭉쳐 있는 땅콩 크림을 넓게 펴바르고 먹으면 당이 온몸에 퍼지면서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또 시간은 흘러 흘러 고등학교 3학년하고도 수능 날, 엄마는 자주 체하는 나를 알고, 수능 도시락으로 따뜻한 옥수수 수프와 카스테라를 싸 주셨다. 나는 긴장하면 뭘 잘 먹지도 못할뿐더러 적게 먹어도 적게 먹은 것을 고스란히 명치에 얹어두는 아이였다. 그래서 수능날은 밥을 먹지 못할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1교시 2교시 시험을 제대로 말아먹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실 한 구석에서 보온도시락을 열었는데, 노란 빛의 옥수수 수프가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옥수수 수프를 한 숟가락 입에 머금고, 카스테라를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치아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카스테라는 부드럽게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날 시험은 망쳤지만, 점심 메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크리스마스 케이크 판매 아르바이트를 밤 12시까지 했던 경험, 2리터 우유에 쟁반만 한 맘모스 빵을 순식간에 해치웠던 남편을 본 후, 적잖이 받았던 충격까지 빵과 관련된 수많은 추억들이 나를 다시 빵그레하게 만든다.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빵”하고 총 쏘는 제츠처를 취한다면, 응당 “으악”하고 쓰러져 주어야 맞지만, 누군가 나에게 “빵” 한다면, 나는 “그래, 그래”라고 외치며 언제든 빵에 응할 것이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빵그레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