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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야 인도지!

델리에 도착한 첫날의 에피소드

by 자유영혼 깡미

인도의 수도이자 여행자 거리가 있는 델리 빠하르간지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밤 10시. 인도의 밤이 무섭다는 이야기는 진즉 듣고 간지라 한국에서 출발 전에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통해 공항 픽업 서비스를 예약해 놨었어. 만약 이 날 공항 노숙을 했으면 어땠을까? 분명한 건 이 날의 선택이 나의 인도 여행 전반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빠하르간지에 내 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시작돼.



에피소드 1 _ 소와 영접하다.


인도하면 소, 소하면 인도라는 건 알고 있지? 인도는 소를 숭배해서 길거리 여기저기 소들이 사람인 것처럼 돌아다니잖아. 이 이야기는 가이드북에서 봤던지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절대 소를 보고 놀라지 않겠노라 다짐했어. 그런데 빠하르간지에 도착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소에게 도망치고 있는 날 발견하고 만 거야! 어둡기는 했지만 대략 30m 정도 거리에 있는 검은 물체 무언가가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날 향해 뛰어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바로 검은색 소였던 거지. 내가 느끼는 소의 속도감은 시속 100km 정도였고, 나의 발은 본능적으로 달리고 있었어. 다행히 간발의 차이인지, 아니면 소의 목표물이 내가 아니었던 건지 여행 온 첫날부터 소에게 테러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어. 하마터면 인도 도착 첫날부터 몸져 누을 뻔했지 뭐야. 사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알게 되지만 소가 사람에게 달려드는 일은 거의 없거든. 내가 빠하르간지에 처음으로 온 여행객인걸 알았던 건지, 단순히 예민한 소의 희생양이 나였던 건지 알 길이 없지만 이 일로 며칠 동안은 소를 피하게 되는 '소 기피증'을 겪어야만 했어.


에피소드 2_델리에서 게스트하우스 찾기


이번 인도 여행에서도 나의 여행 베프는 가이드북이었어.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목표로 빠하르간지에 도착한 첫날부터 숙소 찾기에 여념이 없었지. 날 공항에서 픽업해준 인도인(이름은 우메쉬)에게 내가 선택한 게스트 하우스 이름을 이야기했어. 그러자 그는,


우메쉬 : "음... 그 게스트하우스 진짜 갈 거야?"

나 : "응! 방값이 200루피밖에 안 하잖아~ 어차피 델리에 오래 있을 생각도 없고 낮에는 주로 밖에 있을 테고, 잠만 자면 되거든!"

우메쉬 : "아마도 가 보면 알겠지만... 네가 마음에 들어하진 않을 거야~"

나 : "괜찮아~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면 상관없어~"


이렇게 호언장담하며 게스트하우스를 들어서는 순간.....................................

정말 이건...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게스트하우스 중에서도 최악이었어. 캄보디아에서 단돈 5달러를 주고 지냈던 게스트하우스가 호텔처럼 느껴졌으니 말이야. 일단 들어왔으니 방을 보여달라고 말하자 직원이 2층으로 날 안내했어. 2층에 올라온 순간, 난 그대로 얼음이 되고 말았던 거야. 정말 비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방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그 문으로 모든 인도인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아마도 이들은 나를 보며 이렇듯 환호했을 것 같아. '우와! 동양인 여자다!!!!!' 더구나 단 한 명의 외국인도 찾아볼 수 없었어. 비좁은 2층 복도 바닥은 1층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철창살로 만들어져 있어서 여자가 치마라도 입고 있으면 1층에서 고개만 들어도 속이 다 보일 정도였거든. 그리고 방으로 들어서자 난 더 할 말을 잃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100% 빈대가 있을 수밖에 없는 침대의 위생상태와 청소를 안 한 지 1년은 돼 보이는 화장실은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테니까 말이야. 뒤도 안 돌아보고 게스트하우스를 뛰쳐나왔고, 나를 보며 박장대소하며 웃는 우메쉬........


우메쉬 : "거봐~ 내가 뭐라 했어~ 거기서 지낼 수가 없어~"

나 : "나 좀 도와줘 ㅠㅠㅠㅠㅠㅠ 다른 게스트하우스 찾아줘...."

우메쉬 : "어디가 좋을까... 주변에 게스트하우스들은 많긴 한데 얼마짜리를 원해?"

나 : "에어컨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깨끗한 곳만이라도...."


그렇게 내가 위치해 있던 그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추천받아 방을 확인하고서는 힘겹게 매고 있던 20kg의 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 그 어떤 방 보다 좀 전에 확인한 그 방보다야 나았을 터... 인도 여행 시작 전의 빅 피쳐였을까? 이후부터는 그 어떤 열악한 공간에서도 저 순간을 떠올리며 '그것보다야 낫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 빠하르간지에서 지냈던 게스트하우스 가격은 400루피였고 에어컨이 없는 딱 가격만큼의 방이었어. 하지만 안전한 방문, 깨끗한 침대,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고 더군다나 여행자들이 지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어. 사실 인도에서 에어컨 없이 지내는 건 동남아에서 에어컨 없이 지내는 일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아. 샤워를 하고 나와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땀이 질질 흐르고 찜질방 한증막에서 잠을 자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냥 밖에서 자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그래도 내가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음에 감사하며 기나긴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어.


또 다른 나라로 향한다는 설렘으로 한국에서의 아침을 맞이했고, 인도로 향한다는 기대감으로 10시간의 기나긴 비행을 즐겼으며, 더욱이 소의 습격과 게스트하우스 사건으로 인도라는 나라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도착 첫날부터 각인시켜줬지만 다가올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쉽사리 잠들지 못했던 첫째 날...


그래, 인도도 다 똑같이 사람 사는 나라인데 뭐!

앞으로 잘해보자고!



잊지 못할 델리, 그리고 첫 게스트하우스.

여전히 빠하르간지에서 여행자들을 반겨주고 있겠지?



간밤에 난 꿈을 꿨던 걸까?

빠하르간지에서 맞이한 첫 아침은 지극히 조용하고, 지극히 평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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