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 가면 꼭 먹어야 할 먹거리 이야기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그 여행자만이 낯설 뿐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 -
방콕에 도착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텅텅 비어있는 나의 뱃속에 빨리 먹을걸 집어넣어 달라고 요란한 외계인 소리 내는 걸 멈추게 하는 일이었어. 도대체 뭐부터 먹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배낭여행 초짜가 무작정 카오산로드의 좁고 복잡한 골목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녔지.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답게 식당들은 아침부터 분주히 오픈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음식을 파는 길거리 노점들은 이미 부지런한 여행자들에게 그들만의 음식을 대접하고 있었어.
나의 첫 픽은?
바로 ‘팟타이’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태국 음식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태국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는 서울 촌년이 면 요리라면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눈을 부릎뜨고 기다란 음식을 찾기 시작했지. 나의 배고픔은 카오산로드에 힘없이 굴러다니는 망고스틴 껍데기를 주워 먹고도 남을 배고픔이었거든. 다행히 면 요리를 파는 노점들이 많았고 그게 태국의 대표적인 요리라는 건 대략 이틀이 지난 후쯤이었어. 여러 노점들 중 여행자들이 많이 모여서 먹고 있는 곳을 공략했고, 그건 아주 성공적이었지. 하긴, 그때는 뭘 먹든 천상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노점 주인이 능숙하게 어떤 면 종류를 넣을 거냐며 손짓으로 묻기에 내 눈에 익숙한 면들을 나 또한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그러더니 내가 가리킨 면들을 능숙하게 슉슉 빼내어 야채와 스크램블 에그를 한데 썩어 맛 좋은 볶음면으로 만들기 시작했어. 언제쯤 만들어질까 침만 꼴깍꼴깍 넘기는 순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팟타이 요리를 받아 들 수 있었어.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 거야. 음식을 넘겨받은 동시에 이걸 대체 어디서 먹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었지.
'서서? 앉아서? 숙소 가서? 음... 대체 어디쯤 자리를 잡고 먹으면 되는 거지?'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지난 인생을 살아왔지만 지저분한 걸 참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어. 동남아 중에서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깨끗하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순 없단 말이지. 전날 누가 먹었는지도 알 수 없는 다양한 음식 찌꺼기들과 쓰레기들이 뒤섞여 나뒹굴고 있었고, 물인지 침인지 알 수 없는 축축한 얼룩들이 여기저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곳에서 내가 처음 접하는 이국적인 음식 맛을 논평할 상황이 아니었거든. 결국 난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한적한 길바닥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서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팟타이 한 젓가락을 내 입으로 쑤셔 넣을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지, 팟타이를 한 입 우걱우걱 씹어먹는 그 순간, 난 왜 그토록 '자리'에 연연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더라고. 어차피 똥도 밟아보고 구정물도 먹어보려고 떠난 여행이었거늘...
태국 어느 지역을 가든지 쉽게 만나는 노점은
항상 배가 고픈 여행자들을 유혹하며 1일 5끼하게 만들지.
지금 가장 그리운 건 팟타이를 파는 노점이 아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곳만의 공기와 그곳만의 냄새.
방콕 길바닥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고작 1200원짜리 팟타이를 먹고 있다 보면
가격은 맛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해 줘.
난 이 순간부터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이 주는 낯섦과 불편함, 무모함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지. 그 후로 난 식당 음식보다는 노점 음식을 즐겨 찾게 되었고, 의자보다는 길바닥을 더 사랑하게 되는 진정한 백패커로 성장해가고 있었어.
나 : "chicken?"
노점상 : "Yes, chicken!"
이건, 닭의 일부인 닭똥집이었어.
맙소사... 배가 고파서 6개나 샀는데...
(닭똥집을 즐겨먹진 않았던 내 식성탓에 두 꼬치만 겨우 먹고 쥐쥐쳤던.. 그런 기억...)
나 : "What is this?"
노점상 : "Octopus!"
그래, 최소한 닭똥집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