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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Dec 24. 2019

산타 대륙의 크리스마스이브

달콤꿈 하나, 카카오꿈 하나.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남극에는 악명 높은 협곡이 있었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를 하자면 이 협곡 근처에는 항상 심한 블리자드가 치고, 만약 협곡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다시 돌아오지 못해 죽음의 협곡이라 했다.



 연구를 하러 남극에 들른 모든 연구원들이 제일 첫 번째로 듣는 주의사항은 죽음의 협곡에 대한 내용이었다. 모두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도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산타의 거짓말이었다. 이 협곡에 부는 블리자드는 사실 슈가파우더 뭉텅이들이었다. 가끔 감기 걸린 루돌프들의 콧물도 섞여있긴 하지만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협곡을 타고 쭈욱 미끄러져 내려오면 빙하 속에 있는 산타 대륙이 있었다. 산타는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의 선물을 탐을 낼까 두려워 이러한 거짓말을 퍼트리고 다녔다. 산타의 영특한 지혜로 인해 산타 대륙은   번도 세상에 드러난 적이 없다.



 산타 대륙에는 두 나라가 존재했다. 꿈에 접속해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알아내고 다시 부모의 꿈에 전달해주는 드림국과, 크리스마스마다 한 번씩 달콤 꿈이나 카카오 꿈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미아국이 있었다.



 드림국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모두 집 안의 와이파이를 통해 집에 들어갔다. 옛날에는 굴뚝으로 들어갔다 꿈을 적고 나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제자리에 앉아 키보드만 따닥 두들겨도 와이파이를 통해 접속한 AI 드림 로봇들이 알아서 꿈을 수집해주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해주면 되는 드림국과는 달리, 미아국은 매년 달콤 꿈과 카카오 꿈의 물량이 달라 항상 12월 내내 야근에 시달려야 했다.



 달콤 꿈은 말 그대로 달달한 내용의 꿈이었다. 한 해 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한 아이들에게 전달되었고, 아이들이 원했던 소망이나 희망찬 내용들을 주로 보여주었다.



 카카오 꿈은 친구들에게 나쁜 행동을 하거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 아이들에게 전달되었고, 쓰디쓴 내용들로 가득한 꿈이었다. 카카오 꿈 중에는 정말 무서운 충치균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카카오 꿈을 만드는 요정들도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산타 대륙 전체에 따뜻한 해님이 내리기 시작했다. 해님의 손길이 미아국 여기저기에 뻗쳐 요정들의 단잠을 깨워주었다. 미아국 128번 숙소에 사는 초아와 코아의 집에도 해님이 머물렀다. 찬찬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아이들이 눈을 번쩍 떴다.




“일어나야 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라구!”


“아, 징글징글해. 마감이란 글자는 누가 만든 거야?”


“일어나!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야! 너무 즐거워!”


“시끄러워. 한 번만 말해도 알아듣는다고.”




 초아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에 일어나 방방 뛰었다. 초아가 뛸 때마다 몸에서 슈가파우더 팡팡 뿜어져 나왔다. 코아는 익숙한 듯이 코코아색 머리에 떨어진 슈가파우더를 툭툭 털어내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코아의 짤막한 종아리가 종종걸음을 냈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코아의 입은 쉴 새 없이 투덜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어제 급하게 바뀐 달콤 꿈과 카카오 꿈의 수량 생각뿐이었다.  



 코아와 초아는 소보루 가루가 부스스 떨어지는 문을 꼭 잠그고 미아국 중앙본부로 향했다. 코아는 둥그런 손목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초아와 코아의 숙소에서 중앙본부까지는 느긋하게 걷는다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시간은 이미 8시 50분을 향해 있었다. 초아가 방방 대느라 떨어진 슈가파우더를 정리하고 나오느라 출근시간이 빠듯했다.



 초아는 신이 난 마음에 아직도 잠잘 때 쓰는 산타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코아는 알고 있었지만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무시했다. 초아 모자 따위가 알게 뭐람. 마감 싫어.




“야! 그만 뛰어! 복도에도 파우더 떨어지잖아.”


“그치만 너무 신나는걸...... 어떻게 하지. 그럼 좀 살살 뛰어볼게!”




 초아와 코아가 지나간 미아국 3층 중앙통로에는 슈가파우더가 소복이 가라앉았다. 그 위에 앙증맞은 네 개의 발자국이 다닥다닥 찍혔다. 초콜릿 블록으로 만들어진 복도라 어차피 곧 스며들어 없어질 테지만, 깔끔한 코아는 그 잠깐도 못마땅해했다.



 끼이익. 막대 과자 문을 열자 안에는 벌써 근무하고 있는 요정들이 종종 걸어 다니고 있었다. 초아는 달콤 꿈 생산부로 쪼로로 뛰어갔고, 코아는 꿈 유통부로 향했다.








 꿈 유통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무실 안은 이미 키보드 소리로 정신없었다. 코아는 제 자리에 앉아 판 초콜릿 키보드를 몇 번 두들겨 컴퓨터를 켰다.




“코아! 안녕! 평소에는 일찍 오더니 오늘은 왜 이제 왔어. 십 분 뒤에 보고하러 가야 된대.”


“아아!! 다 초아 때문이야. 쟤는 일이 미친 듯이 많으면 같이 미치는 것 같아. 잠깐만. 리사. 어제 퇴근 전에 달콤 꿈이 모자란다고 했었나?”


“아니, 카카오 꿈이 모자란다고! 485개 모자라대.”


“와. 올해는 나쁜 행동을 한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카카오 꿈이 모자라기는 오랜만이네.”


“응. 다 스마트폰 때문이지 뭐. 아이들이 늦게 자서 산타께서 카카오 꿈을 많이 뿌리기로 하셨대.”


“작년에 342개 남았는데. 그래도 물량이 부족하네 이따가 니바랑 스아한테 물량 몇 개 더 뽑을 수 있는지 물어볼게. 우선 보고하러 가자.”




코아는 한 번 더 마감 싫어를 외치며 종종걸음으로 리사와 중앙 복도를 걸었다.








 초아는 달콤 꿈 생산본부를 거쳐 곧장 공장으로 들어갔다. 공장 안은 이미 흰 슈가봉 환풍기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초아와 같이 슈가파우더를 만들 줄 아는 요정들이 엎치락뒤치락 트럼펠린 위를 뛰고 있었다. 트럼펠린 아래에는 슈가파우더 솜뭉치들이 롤러에 데구루루 굴려지면서 달콤 꿈이 되기 위해 다음 생산라인으로 옮겨졌다.




“초아 안녕!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야!”


“안녕! 우리 달콤 꿈 몇 개 더 만들어야 한대?”


“이미 다 만들었대! 그래서 내년 꺼 미리 만들고 있었어!”


“아이 참. 아이들은 왜 착한 일을 많이 하지 않은 걸까. 이번에는 더 많은 달콤 꿈을 나눠주고 싶었는데!”




 초아는 투덜대며 대형 트럼펠린 위로 뛰어들었다. 다른 요정들과 같이 손을 잡고 뛰기도 하고 꼬리잡기를 하며 뛰기도 했다. 사실 초아가 어떻게 뛰든 슈가 파우더는 함박눈처럼 쌓이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초아는 뛰는 방법을 다양하게 해야 더 다양한 달콤 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초아는 열심히 트럼펠린 위를 뛰며 내년에는 아이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해 자신이 만든 달콤 꿈이 모두 전달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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