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취향] 첫번째 이야기: 냄새
어릴 적 선물받은 동화책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는?" 이라는 에피소드였는데, 주인공 어린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를 찾아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온 세상을 다 찾아다니며 온갖 냄새를 수집한다. 그러다가 결국 내린 결론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건 엄마 냄새라는 것이었다. 아이 책다운 결말인데, 그 동화책의 에피소드 중 이제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이 결말만은 삽화까지 더해서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나도 엄마 냄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아주 희미하게 나는 나쁜 냄새도 다 잡아냈고, 코가 쓰리다는 이유로 향수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싫어하는 냄새의 종류는 아주 다양했는데, 첫째로 음식을 조리한 후 남아 있는 음식 냄새, 특히 김치 냄새나 해산물 비린내를 정말 싫어했다. 해산물이야 안 먹으면 되지만 한국인 밥상에는 김치가 올라오기 마련이니, 엄마가 마련한 대책은 김치를 항상 소량으로만 사고 밀폐용기에 랩으로 이중 삼중 밀봉해서 보관하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사람에게서 나는 체취였다. 땀 냄새, 쉰내, 시큼한 냄새, 머리를 감지 않아 올라오는 냄새 등 엄마는 그 모든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래서 생긴 웃긴 기억 중 하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어딜 가면 엄마는 '저기 있는 저 사람이 머리를 안 감은 것 같다' 같은 걸 아주 명확하게 캐치해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에게선 항상 좋은 냄새가 났다. 특별히 향수를 뿌리거나 향이 강한 화장품을 쓰지 않는데도 그랬다. 엄마 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왠지 편하고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때 나는 불안해서 자주 깨는 아이였는데, 엄마 냄새가 밴 이불이 있으면 항상 잠을 잘 잤다. 나는 그 이불이 다 낡아서 거적데기가 될 때까지 덮었다.
그런 반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선 항상 콤플렉스가 있었다. 땀이 많은 편이고 체취가 강해서 나에게선 항상 안 좋은 냄새가 난다고 느껴졌다. 그게 싫어서 자주 씻고 양치도 부지런히 했지만 왠지 자꾸만 기분 나쁜 냄새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씻고 난 후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아질 시기부터 향수를 한 두개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썼던 향수는 아빠가 쓰지 않아 버려졌던 향수인데, 불가리의 쁘띠마망이다. 아주 강한 파우더 향. 아직도 코 끝에 그 향기가 맴도는 것 같다. 너무 어린이한테서나 날만한 향기가 나다 보니 아빠는 충동구매 후 이 향수를 방치했고, 엄마가 쓰기에도 연령대나 취향이 맞지 않았다. 결국 내가 쓰게 됐는데, 향수를 뿌리자 왠지 나를 쫓아다니는 것만 같은 나쁜 냄새가 사라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윽고 스무살이 되었을 때, 성인이 된 기념으로 나는 새 향수를 샀다.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향수는 한정되어 있었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데메테르의 "체리 블라썸"을 마련했다. 향수는 가격대에 지속력이 크게 좌우되는 물건이라 그런지 데메테르 향수는 하나 같이 지속력이 아주 나빴다. 특히 여름에는 땀에 향이 완전히 묻혀 버려서 씁쓸해졌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쓰던 제품은 향수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분류가 "코롱 스프레이(cologne spray)"였기에, 향이 빨리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온갖 저렴한 향수를 옮겨 다녔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향수는 멈칫에서 나온 청포도 섬유 스프레이다. 이 제품은 아예 섬유향수지만, 향이 특이해서(청포도 사탕 향이 난다) 열심히 뿌리고 다녔다. 그 후에는 생일 선물로 바디판타지에서 나온 바디 스프레이 중 화이트머스크 향을 선물받았는데, 내가 좋아하던 향의 이름이 머스크라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바디판타지 스프레이는 가격대가 저렴해서 향을 바꿔가며 여러 병을 사용했는데, 화이트머스크 향을 제일 즐겨 뿌렸다. 나중에는 어디선가 머스크향이 나면 사람들이 나보고 향수 뿌렸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주변에서 졸업 선물로 향수를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겐조의 "플라워 바이 겐조"와 코치 플로럴이 있다. 겐조의 플라워 바이 겐조는 광고 모델이 나의 최애 배우, 김태리 배우라서 더더욱 소중히 여겼던 기억이 난다. 이 향도 나와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 오래오래 소중히 뿌렸다. 코치 플로럴은 상대적으로 더 쉽게, 자주 뿌리고 다녔다.
예전에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뇌에서 냄새 기억을 처리하는 부분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부분은 밀접한 영역에 있어 우리는 다른 감각 자극보다 냄새 자극을 받을 때 옛 기억을 더 잘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힘든 시기에 제일 많이 뿌렸던 향수, 코치 플로럴은 이제 더 안 뿌리게 된다. 이 향수를 뿌리면 내가 그 시절 외출하던 심정에 이입되기 때문이다.
모닝콜로 지정한 음악은 그게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질려 버리는 것처럼, 고생했던 시기를 관통한 향기는 어쩌다 맡는 것조차 싫어지나 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냄새들도 그 냄새 자체를 사랑했다기 보다 그 냄새와 함께하던 기억, 함께하던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어떤 냄새는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지만, 그건 그 냄새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시절이 좋았던 거다.
그래서 요즘은 향수를 잘 사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나에게서 항상 나쁜 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빈도도 약해졌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 냄새가 싫었는지 모른다. 이제 나는 나에게 조금 정이 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