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 신부님 이야기
Padre Pio : Miracle Man ( 피오 신부님 : 기적의 사람 )
어린 피오 신부님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통해 누군가의 병을 고쳐주는 등 신비로운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린 피오 신부님은 늘 무언가 자신을 괴롭히는 어두움에 시달리며 두려워하고는 했다. (영화에서는 늑대와 들개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이후 청년이 된 피오 신부님은, 부모님에게 수도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당시 수도사가 되는 것은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피오 신부님의 아버지는 처음에 이를 반대하지만, 신앙이 매우 깊었던 어머니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려 아들이 수도사가 되기 위한 지원금을 마련하고자 멀리 돈벌이를 떠난다.
그렇게 수도생활을 시작한 피오 신부님. 그러나 그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괴롭히는 악마와 허약한 건강으로 인해 쉽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게 되고, 그 와중에 성직자로서의 부르심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감을 갖게 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그 와중에 당시 그에게 처음으로 성흔이 발현되는데, 그는 그게 그저 무서워서 다른 신부에게 가서 '제발 이 것을 없애달라'라고 울며 애원한다. 그리고 처음 발현된 그 성흔은 사라지게 된다.
그 후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는 징집을 당하게 되는데, 자신이 '죽음'을 무서워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다행히도(?) 신체검사 과정에서 그가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점으로 인해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게 된다.(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이후 의무병으로 복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그의 지병이 악화되어, 곧 죽을 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다.
그 후 그는 고향에 내려가서 요양을 하며 사람들을 돌보다가, 그의 여생을 보내게 될 수도원(San Giovanni Rotondo)으로 향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이 곳에서 지내게 될 것임을 예감하게 되었으며, 이 곳에서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선과 구제를 하며 지내게 된다.
그리고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사람들을 도울 돈이 없어서 수도원에 있는 마리아 성상의 보석을 팔아서 굶주린 아이들에게 빵을 주는 모습이 나오고는 하는데, 이 때문에 (평생의 절친이었던) 수도원장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이 된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피오, 여기 목걸이 어디 갔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압니까?' '또 네가 가져간 것 아니야?' '......(도망)' '(못 말리겠다는 듯이) 피오, 또 이러면 어떡해' '(도망가면서) 어차피 진짜도 아니잖아요. 마리아 님이 팔아서 아이들에게 주라고 하셨다고요!'
그는 그 무렵 특히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모습에 긍휼의 마음을 느끼고는 했는데,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다시 성흔(예수님이 못 박히신 것과 같은 형태의 상처가 손과 발에 초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발현된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그는 그 성흔을 받아들인다.
수도원장을 비롯하여 모두가 이 상황에 놀라게 되고, 진찰을 온 의사 역시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님을 증언하지만, 이를 보고받은 교황청에서는 의견이 분분하게 나뉜다. 그러다가 '과학적'인 것을 강조하며 '이제는 교회가 신비주의적인 것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라고 말하던 한 지위 높은 신부가 그를 직접 조사하러 오는데, 피오 신부로부터 따끔한 일침을 받은 후 그에 대해 좋지 않은 내용의 보고를 올린다.
이후 피오 신부는 오랫동안 교회로부터 오해, 견제, 핍박을 받게 되지만, 가능한 한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며 일생을 보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구제하고, 기적을 행하며, 병원을 설립하고, 그가 그나마 스스로 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고해성사 듣는 일을 하루 종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교회에 대해 막말을 일삼던 어느 남자와, 불륜 관계에 있었던 한 여배우가 피오 신부님을 통해 새 사람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또한 그의 유명세에 수도원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물품들로 장사를 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피오 신부가 매우 화를 내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인상 깊은데, 그는 늘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신실한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잠겨 무덤 곁을 한동안 떠나지 못한다. 이후 돈을 달라고 하다가 거절당하자 키워준 보람이 없다며 불평을 하던 아버지가 병에 걸려 떠나기 직전에 찾아가 아버지로부터 고해성사를 듣고 그를 평안하게 보내주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기적을 일으켜주었던 아들에게 자신의 병이 낫도록 기도해달라고 요구하지만, 피오 신부님은 슬픈 표정으로 '저 자신을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킬 수 없어요, 아버지...'라고 답한다.)
수많은 기적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죽기 직전까지 마귀로부터 늘 시달리며 고통을 받게 되는데, 그의 마지막 미사에서 한 여인에게 들린 마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이 괴로움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떠난다.
피오 신부 : Now, take care of me. (Give me an absolution.) / 이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게.
젊은 신부 : Father, What are you doing? It's you who should've absolve me. / 신부님, 어찌 이러십니까? 당신께서 저의 죄를 사해주셔야 마땅한데요.
피오 신부 : No. You only ... But your belief was right. Then, and now. / (정확히 안들리지만) 아니네. 자네는 그저 미숙했을 뿐이야. 그러나 자네의 믿음은 올바르네. 그때나, 그리고 지금이나.
젊은 신부 : But I pursecuted you, judged you, condemned you. / 그러나 저는 당신을 박해하고, 판단하고, 비난했습니다.
피오 신부 : But Church did what it had to do. If you hadn't persecuted me, I wouldn't have able to save myself. / 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했을 뿐이네. 자네가 나를 박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 자신을 구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네.
젊은 신부 : God... such a blindness. / 오 하나님... 제가 이렇게 눈이 멀었었습니다.
So many gifts, So much grace,
So many miracles you gave me.
You came to the earth
and suffered within my body.
I am within you, and you are within me.
What a great mystery...
당신은 제게 많은 은사와 은혜
수많은 기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이 땅에 오셔서
내 몸 안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신비인지요...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여정을 모두 마쳤을 때
나 역시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은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웁니다.
[골로새서 1:24]
성 빠드레 삐오(프란체스꼬 포르지오네, 1887~1968). 카푸친 프란치스꼬회 수도자, 성흔(聖痕) 수혜자. 어렸을 때부터 신비에 가까운 영성 감각을 드러냈다. 후에 그는 영성 지도신부에게 자기가 다섯 살 때 하느님께 자신을 영원히 바치겠다고 생각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어린 꿈은 후에 카푸친 프란치스꼬회에 들어감으로써 현실화되었다. 카푸친회 수도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허약한 건강과 악마의 벽에 시달리며 평온하고 점잖은 수도자로 지냈다.
1910년 신품을 받은 후, 제1차 세계대전 때 6주간 이탈리아 군 의무병으로 지낸 것을 빼고는 비교적 평범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군에 복무할 때 탈주병으로 오인되어 방출당하기도 했다. 1918년 San Giovan-ni Rotondo 수도원에 지정되어 수도 생활을 하면서 9월에 처음으로 성흔(聖痕)의 은혜를 받았다. 그의 성흔에 대해 바티칸과 카푸친 수도회가 조사할 때 Padre Pio는 의아한 태도와 당황하는 태도로 임했다. 병약한 건강과 악마의 시달림을 받고 있던 터라 수도 생활에 지장을 초래했다. 그의 성흔에 관하여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느니 초자연 현상이라느니 의사들과 신부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바티칸에서는 Pio 신부에게 공적인 미사를 금지하고 조사를 진행했다. 로마 성청의 이 같은 조치는 Padre Pio가 San Giovanni Rotondo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폭동으로 변해 14명 사망, 80명 부상자를 냈다. 1920년 교회 당국은 그에게 13년 동안의 성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Padre Pio는 이 모든 일을 감수하고 순명했다. 1933년 교황 비오 11세는 금지령을 취소하며 해당 대주교에게 “나는 Padre Pio를 나쁘게 생각지 않는다. 다만 Padre Pio에 대해 나쁘게 들려온다”라고 말했다.
50년 동안 Padre Pio는 San Giovanni Rotondo를 떠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영성적인 은혜를 입으려고 모여들어 그의 존재 자체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평상시대로 미사를 드리고, 강론하고 고해성사를 주는 평범한 일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제물이 된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없다. 다만 그가 평생 하고 싶었던 사업으로 Padre Pio 병원 Casa Sollievo della Sofferenza(고통의 위안의 집)를 설립했다. 1968년 그가 죽은 후 그의 거룩한 영성적 생활은 신자들과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Padre Pio, St.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 2007. 11. 25., 백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