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기피증, 그리고 전화공포증

한동안 사람들이 무서울 때가 있었다

by Brightly



나는 20대 초중반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극심한 대인기피증을 겪은 적이 있다.



어쩌다가 가게 된 작은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이래저래 시달렸던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했던 것인데, 대인기피증이 나아질 때까지 수년이 걸렸다. 당시 다녔던 교회는 매우 작은 교회였고, 대부분 내 나이 또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나는 공교롭게도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은 (학교) 선배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교회에 먼저 왔다는 이유로, 내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하는 것을 즉각 시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내게 무언가를 하게 하려고 압박하고는 했는데, 나는 미련하게도 1년을 넘게 (아마 2년가량 되었던 것 같다) 참다가 결국은 못 참을 지경이 되어서야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친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너 같으면, 이런 것들 당하고서 여기 못 있을 것 같아.'라고 얘기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으로 바보 같았던 것 같다.



그렇게 참고 버티다가 결국 도망쳤을 때, 내 상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개월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거의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었다. 당연히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인기피증의 일환으로 전화공포증이 생겼고, 정말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면 전화 통화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당시에는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또 누군가가 (그 사람들처럼) 전화를 통해 나에게 내 말은 듣지 않는 채로 무언가를 요구하고 나는 그러한 요구에 대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감 때문이었다. 인들에게 전화가 왔을 때도 차마 받지 못했던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렇게 얻게 된 대인기피증과 전화공포증은 음에는 (어쩌면 래대로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증세가 차차 호전되어갔지만, 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아지기까지 수년동안 간관계와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대인기피증과 함께 찾아왔던 전화공포증은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업무수행에 있어 매우 큰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을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특히 어려운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나는 전화를 걸 때마다 늘 몇 분 가량 준비를 하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티를 내지는 않았기에 남들은 잘 몰랐을 테지만, 업무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이, 한동안은 너무나 어려웠다. 인기피증이 나아진 후였는데도, 전화공포증은 한동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랬던 내가 전화공포증을 극복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어쩌다 보니 부 전체 부서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나는 전화가 어려워서 가능하면 문서나 메일로 업무를 처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과장님께서 해당 과 담당자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리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하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르는 분들과 수십 번의 전화통화를 했고, 그것이 좋은 계기가 되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 나의 전화공포증이 아주 많이 호전되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전화공포증은 거의 다 나았다. 아직도 주 가끔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흠칫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면 '피하지 말자. 막상 통화해보면 별 거 아냐.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한다.



오늘은 왠지 내 마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마음아, 그래도 이정도까지 잘 회복해주어서 고마와. 정말 고생 많았어. 앞으로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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