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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Sep 02. 2022

세 번째 결혼식 그리고 그 후,

8월 마지막 주말 토요일, 나의 세 번째 결혼식을 진행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뭐하러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만, 여하튼 했고, 즐겼고, 기분이 가 좋았다.


정말 손재주 남다르고 굉장히 부지런하시고 마음 씀씀이가 세상 제일로 최고가는 우리 in-law에게 마음 깊숙이 감사를 다시 표한다.




세 번째 결혼식이라고 거창할 것 까진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거창했다. 뭐지....


이게 다 주례 때문이다.


주례가 영국에선 우리나라보다 복잡하고, 굉장히 Formal 하게 진행되는 터라, 주례사의 시간에 우리가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 혼인신고를 결혼식 당일에 하지 못했다.


그래서 첫 번째 (가)결혼식을 어쩌다 보니, 또 다른 드레스, 신발, 양복을 입고 혼인신고 office에서 진행했다. 찐 결혼식과 다들 바 없는 인원에, 오피스에서만 서로 선서하면서 주례사 앞에서 진행했는데, 그때가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살짝 닭살이 돋는 건 기본이었다.


그리고 300파운드 가까이 되는 돈을 그 Certificate하나 받자고 냈고,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꽤나 평 좋은 레스토랑에 가 샴페인, 스테이크 등등을 먹으며 룰룰랄라 즐겼다.

그렇게 나의 진짜배기 같은 pre결혼식이 끝났다.


그리고 한 달 뒤 한국에서 멀리 모셔온 엄마 동생을 붙들고 나는 다시 진짜 오피셜 결혼을 했다.

물론 식자체를 위한 주례사도 모셨다. 그래도 결혼식에 그게 빠지면 섭섭하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대니네 대가족을 위한 세 번째 결혼식 Reception을 준비했다.

아시아인 나도 없는 대가족이 여기에 있었다...


그냥 바비큐나 먹고 사진이나 좀 찍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조촐한 생각과는 다르게, 대니네 어머니가 팔 올려붙이며 열심히 준비하셨다. 그 아기자기한 손재주로, 인스타용 프래임도 만드시고, 웨딩 케이크용 컵케익에, 풍선, 커다란 하얀 텐트까지. 


손수 칵테일 이름까지 붙여가며, 칵테일 메뉴까지 만드셨고, 하루 종일 키친 바에서 칵테일 만드시느라 앉을 새가 없으셨다. 


이런 축하와 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속으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지 말자고.



이상한 생각이라고 표현 한건, 아무도 우리에게 가지라거나 가지지 않을 거냐는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없고 궁금해한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아무도 우리에게 애는 언제 가질 거냐는 시답잖은 질문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100% 아시안인 우리 엄마 동생도 한마디 한적 없다, 내 나이가 내나 이임에도.


시어머니 아버지도 우리에게 한번 물어본 적이 없는데, 우리는 점점 더 그런 생각을 알아서 스스로 했다.


애는 가지지 말자고. 정말 저위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져라! 하고 냅다 던져서 내가 무슨 거의 동정녀 마리아만큼의 사태로 애를 가지게 된다면야 어쩔 수 없는데. 그전엔 가지지 말자고.


그렇게 결혼했다고 해서 애를 가지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 험악하고 볼품없고, 애를 통해서 나의 인생의 공허함과, 뿌듯함 그리고 자랑스러움을 가지기에는 내가 너무 나쁜 이기주의자이다.


당장 안 돌아가는 머리와 계산기로 계산을 뚜둥겨도 아기 1명을 키우는데만 억 단위가 들어가고, 게다가 이런 Energy bill에 cap도 없는 영국에서? 둘이 꽤 좋은 봉급을 벌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Six Figure이어도 집도 가져야 하고 애가 뛰놀 뒷마당과, 좋은 환경의 학교도 가야 하는데. 그럼 그거 충당하느라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이제껏 가고 싶었던 버켓 리스트의 장소들은 1년의 1번이 뭔가 꿈도 꿀 수 없다. 항상 Paycheck by paycheck으로 살아가는 조카네 모습을 보면서 저게 사람 사는 삶인가 싶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또 빵긋 웃게 되고... 참 희한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 아이들은 정말 착하다. 


한국에 나가면 항상 아이들을 어떻게든 마주치는데 내가 먼저 눈웃음을 치든, 어쩌든 간에, 이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배시시 웃어줘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뭐야 위아래로 쳐다보고 가면 갔지...내가 낳게 된다면 나의 아이도 이렇게 될 확률이 100%이다. 누가 웃으면서 바라보면, 뭐래. 하고 시니컬하게 비웃겠지......


영국 아이들은 뭐 어떻게 남이 웃어주면 웃어주라고 교육을 받고 자란 건지, 눈 마주쳐 웃어주면 배시시 웃어주거나, 활짝 웃어준다. 그렇게 웃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저런 웃음은 앞으로 못 볼 수도 있겠구나, 대니와 나랑 dna가 섞여서 태어난 아이의 머리색은 검정일까 브라운일까를 생각할 수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종종 들려오는 조카네들의 소음과 돌고래에 가까운 피치의 고함들은 나를 진절머리 나게 만든다. 기가 다 빨린다. 특히나 남자 조카는 50db 데시벨로 우리에게 얘기를 거는데, 무조건 어느 목소리라도 이겨먹어야 한 다는 정신이 있는 건지, 단 하루 한 번도 데시벨을 50 이하로 낮춰본 적이 없는 아이 같다.


조용히 하라고 쉿 쉿 주의를 주는 데에도, 열심히 지른다. 고래고래.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안 낳을 작정이다. 

저 조카아이의 목소리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우리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면에서는 우리는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았다. 내가 낳아줘야 하는 입장도 낳아야 하는 입장도 아니다. 내 아이이고 내 생활이고 너네가 키워줄 것 아니면 닥치라는 주의이기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어누 2059년 Handmaid tale이라는 이상한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는 이상......


대니와 나는 열심히 개처럼 벌어서 일찍 은퇴해 열심히 fancy 하게 놀아볼 생각이다.

물론 영국 정부가 그걸 support 해줄지는 모르겠으나, 내년 1월에는 인플레이션이 18% 가까이 된다던데.


하하. 당장 살아남는 게 중요할 듯하다.


그렇게 왁자지껄, 특이한 나의 세 번째 결혼은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웬만하면 4번째 결혼식은 안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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