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카페의 연인"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티셔츠 핸드페인팅 수업을 했다. 하얀 면 티셔츠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다 섬유 전용 물감으로 덧칠을 하는 수업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이 작품을 가지고 기말고사 시험을 대신한다고 하였다. 뭘 그릴지 너무 난감하여 원앙을 생각해서 새 두 마리를 그렸다. 하지만 나온 결과는 원앙이 아니었다. 작대기 두 개가 동그라미 밑에 그려져 있고, 그 위로 작대기 하나가 목이라고 붙어 있으며, 머리는 갈매기를 연상시키는 그림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나의 그림을 보고, 너무 성의 없게 그렸다고 화를 내셨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말했다.
"너는 미술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이 말을 하시고 성적을 수우미양가의 "양"을 주셨다. 이 후로 그림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말이 치명타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도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서야 생각해 보니 그 때는 나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미술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늘 나의 마음속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 그림을 시작해 보려고 마음먹고 쌌지만 묵혀 두었던 미술용 연필과 스케치 북을 오늘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렸다.
연필로 자주 가는 Goldstruck Coffee에서 서로의 눈빛에 빠져 있는 연인을 상상하며 그렸다. 사랑은 눈의 마주침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작품이라 갈 길이 멀지만, 그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미술 선생님의 말을 깨뜨리는 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던 것은 내가 그리는 선 하나에 달라지는 그림이었다. 그림이란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나이 마흔에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나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느껴지는 해방감이 좋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린 그림을 성적 매기는 사람이 없기에 마음 껏 그릴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