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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다.

[그림] "카페의 연인"

by 싱클레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미술 시간에 티셔츠 핸드페인팅 수업을 했다. 하얀 면 티셔츠에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다 섬유 전용 물감으로 덧칠을 하는 수업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이 작품을 가지고 기말고사 시험을 대신한다고 하였다. 뭘 그릴지 너무 난감하여 원앙을 생각해서 새 두 마리를 그렸다. 하지만 나온 결과는 원앙이 아니었다. 작대기 두 개가 동그라미 밑에 그려져 있고, 그 위로 작대기 하나가 목이라고 붙어 있으며, 머리는 갈매기를 연상시키는 그림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나의 그림을 보고, 너무 성의 없게 그렸다고 화를 내셨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말했다.


"너는 미술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이 말을 하시고 성적을 수우미양가의 "양"을 주셨다. 이 후로 그림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말이 치명타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도 왜 그렇게 그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서야 생각해 보니 그 때는 나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미술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늘 나의 마음속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 그림을 시작해 보려고 마음먹고 쌌지만 묵혀 두었던 미술용 연필과 스케치 북을 오늘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렸다.


IMG_8157.JPG 카페의 연인

연필로 자주 가는 Goldstruck Coffee에서 서로의 눈빛에 빠져 있는 연인을 상상하며 그렸다. 사랑은 눈의 마주침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작품이라 갈 길이 멀지만, 그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미술 선생님의 말을 깨뜨리는 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던 것은 내가 그리는 선 하나에 달라지는 그림이었다. 그림이란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나이 마흔에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나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느껴지는 해방감이 좋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린 그림을 성적 매기는 사람이 없기에 마음 껏 그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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