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현재, 미래를 잃어버린 날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불안은 일상생활이 되었다.
평소보다 수십 번 더 손을 씻고, 손 세정제를 바르고, 장보기가 무섭게 세정제로 사 온 물품들을 다 닦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대다수의 캐나다인을 보면서 불안하고, 지나가다 마스크를 쓴 나를 보고 얼굴을 가리지 말고 다니라고 고함치는 사람, 자신도 돌아다니면서 지금은 집에 있어야 한다면서 고함치는 사람,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렵지 않다는 듯이 악수하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출근하면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정리해고 되는 상황, 조금이라도 나의 몸이 이상하거나 기침을 한번 하게 되면 혹시?라는 불안감이 있어도 병원 가서 진찰받거나 코로나 테스트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에서 자가 격리하면서 심해지면 병원에 연락하라는 온타리오 정부의 지침들, 온통 머릿속에는 나의 건강에 대한,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 불안, 불안, 불안이 가득 차 있다.
현재가 사라져 버렸다. 미래도 사라져 버렸다.
이 불안들을 도피하기 위해 인터넷 뉴스만 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어제 지인을 통해 도이치 그라모폰 공식 유튜브에서 World Piano Day를 맞이하여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보게 되었다. 이 연주들을 통해 코로나 때문에 느껴왔던 불안들을 잠시 잊게 되었고,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다.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 사람들은 현재, 지금 몰입하고 있구나. 그 몰입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도 없고, 오로지 그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와 그 소리에 담긴 자신의 감정과 열정만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나는 어떻게 될까라는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공식과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의 일상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아마 그럴 것이다.
이제 나는 옛 것을 버리고 변화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코로나는 단순히 전염병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활 방식을 바꿀 것이고, 문화,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그 변화는 급격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전염병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명확히 보였던 시야가 보이지 않는 안개로 가득차며, 도처에 보이지 않는 암초들이 가득한 인생의 바다를 어떻게 하면 잘 항해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이제 나에게 실존의 문제가 되었다.
지금처럼 내가 스스로 원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상황에 의해서 변화되기를 강요받을 때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지만, 그것을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그 걱정과 불안에 함몰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는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선택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은 그 불안 때문에 일상생활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 불안이 만들어 내는 현재와 미래를 소멸시키는 그 힘에 대항하며 계속해서 빼앗겼던 나의 현재와 미래를 되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식물들이 겨울이 되면 잎들을 떨구고, 봄이면 꽃 봉오리와 새싹들을 피우듯이 말이다.
작년 10월에 이름 모를 식물을 선물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니면 생각날 때 한 번씩 물을 주는데 잎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 보았던 떨어진 줄기의 마디에서 새로운 잎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계속 잎들을 떨구고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새싹들을 탄생시키는 것을 보니 나는 이 식물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나도 나 자신 안에 이 모든 불안을 뚫고 새롭게 미래를 향해 변화하는 나의 내면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렇게 불안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되었다. 식물이 이럴진대 나는 더 큰 힘을 발휘해서 코로나와 코로나로 인해 발생되는 어려움들을 뚫고 나갈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빼앗겼던 현재와 미래는 나의 일상생활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