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

I'll see you in my dreams

by Sinclair

1시간 반 남짓한 짧은 분량의 영화였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인상적이었던 대사와 장면들이 있어 기억한 뒤 글로써 풀어내고 싶었지만, 머지않아 다른 대사와 장면이 그 기억을 덮어씌워버렸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스쳐 지나간 대사와 장면을 복기해볼까 한다.




관계는 나이가 아닌 생각의 유사성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나간다.

캐럴과 로이드는 집주인과 수영장 청소부로 첫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누가 봐도 사소하기 그지없는 관계가 '노래'라는 공통점 하나로 단단하게 결속된다. 신기했다. 지금까지 사랑, 우정 등의 관계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나이'라고 생각했다. 많아도 10살 남짓한 차이. 그 이하 혹은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관계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생각의 유사성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유사성은 비슷한 나이 또래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캐럴과 로이드는 엄마와 아들 수준의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가 가능했다. 심지어 이 독특한 관계의 가장 큰 강점이 있었다. 서로 생각하지 못한 부분, 아니 어쩌면 생각은 이미 했을 수도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말을 서로에게 건네어 준다. 심지어 그 말 한마디로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위로한다. 캐럴은 로이드에게 미래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었고, 로이드는 캐럴에게 직접 만든 노래로 감동을 안겨 준다.


'그'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노인분들의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 달갑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왜 그랬을까?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건 내 시각으로 세상을, 그들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캐럴과 실버타운 친구들은 마치 소녀와 같았다. 자글자글한 피부를 갖고 술을 한잔 걸치며 테이블에 모여 카드게임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만큼은 여린 소녀였다. 이성에 관심을 가지며 시답잖은 이야기에 꺄르르 웃을 수 있었다. 특히 마리화나를 피고 마트에 가 엄청난 양의 과자를 쇼핑하고 길거리에서 경찰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느 일탈하는 여고생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들도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 노인이기 전에 여자였고, 소녀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 때문에 특별한 이유 없이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할 거라고 감히 짐작했던 것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반성했다. 노인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내 단편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땐 남편이 그리 일찍 죽을지도, 내게 이렇게 예쁜 딸이 생길지도 몰랐지.

캐럴과 그녀의 딸 캐서린의 대화 중 캐럴이 한 말이었다. 이 대사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인간인지라 피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대비하는 것 또한 인간인지라 불가능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너무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지 말자였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봤는데 우리가 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90% 이상의 확률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나름대로 행복한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계획하고 준비하기 위해 고민과 걱정을 끊임없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90%가 넘는다니. 바꾸어 말하면 일어나지도 않을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 때문에 지금 내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지금 당장이 중요한 게 아닐까?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일이 기쁜 일일지 슬픈 일일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한 감정을 위해 선택하는 건 가능한 영역이지 않을까? 그래.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땐, 단순하게 생각해야겠다. 그냥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것만 고민해야겠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지금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도 물론 일정 부분 필요하겠지만, 생각의 순서를 바꿔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선택하고 결정하며 쌓아가다 보면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확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참 잔잔하지만 깊은 호수와 같은 영화였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대사와 장면이 참 많았다. 쇼츠와 자극적인 콘텐츠만 보다가 오랜만에 서정적이고 슴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위 3가지 말고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였지만 아직 내가 정확히 서술하기 힘든 토픽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죽음이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원한 이별을 뜻할까? 죽음이란 단어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종교와 철학 등 더 공부하고 알아가야 할 게 많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제목처럼 마음속 한편에 그리움을 갖는 누군가가 아직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추억에 자리하고 아직 잊히지 않았다면 죽음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