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을 연결 짓기 위한 질문을 던지면서 출근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열정 교사와 워라밸 교사 그 사이
첫 해 때는 정말 학교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모든 생각이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주말에도 자료를 만들고 수업을 준비했고 평일에 출근을 하면 수업을 하며 틈틈이 업무처리를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면 이미 3시가 훌쩍 넘어있다. 교실정리를 하고 수업 내용이나 알림장 등 하루 마무리를 하고 한 숨 돌리면 4시. 그때부터 업무처리를 하면 퇴근시간이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퇴근을 하면 지치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였다. 몸이 지쳐갔고 몸이 지치니 감정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깊어 어느 순간부터 ‘너무 열심 내지 말자. 누가 알아준다고.’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욕먹지 않을 적당한 열정을 붓고 퇴근시간 땡 하면 절대 학교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퇴근 후에는 나만의 힐링을 찾아보려 애를 쓴다. 가끔씩은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맛있는 걸 먹고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집에서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요가를 하고 향초를 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출근이구나’하며 학교로 향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된다.
워라밸이라는 말의 함정
분명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는 있는데 결국은 돈 버는 수단 정도가 되고 있었다. 이런 약간의 씁쓸함은 있지만 내가 너무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이상적이고도 배부른 생각을 하나 싶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의 시간은 그것 나름대로 보람 있고 좋았고 그 이전에 내 감정과 몸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나만의 취미를 만들었고 퇴근 후의 내 삶을 즐겼다. 학교에서의 일이나 수업은 퇴근과 동시에 내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워라밸이라는 말을 되뇌며 직장에서의 시간과 내 삶을 분리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일과 삶을 분리해버리니 직장에서의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로 직장에서 하루 8시간을 보내며 20대, 30대,....... 50대. 퇴직할 때까지 이어진다고 답답해졌다. 끊임없이 내 감정과 몸을 지키기 위한 워라밸을 되뇌며 이 시간들을 보낼 걸 생각하니. 심지어 100세까지도 살지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생각하게 됐다.
work and life balance, 워라밸
이게 과연 일과 내 삶을 분리하라는 말일까? 본능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님을 직감했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가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도록 하고 있나? 질문했을 때, “no”였다
그러다 작년 초 코로나가 터지면서 다양한 책과 시대변화를 빠르게 캐치하는 분들의 유튜브 강연을 많이 접하게 됐고 조금씩 내 의문과 고민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독서하던 초기에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집었다가 한 자리에 앉아서 다 읽은 <부의 재편>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앞으로 사람들은(이미 그렇기도 하며) 더 이상 한 가지 직업이 아닌 슬래시 워커(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지금 내가 교사이지만 이것은 ‘직업’ 일뿐 앞으로 이를 토대로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그리고 나는 언제 행복한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나는 관계, 사랑, 삶에 대해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배우길 좋아한다. 내가 행복한 순간들은 내 노트에 차곡차곡 몇 년간 적혀있는데, 대부분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여유로운 시간에 내 몸과 마음을 돌볼 때 등이었다. 이런 것들을 죽 나열해보면서 당장 답이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주체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길을 만들어나가야겠다는 확신은 들었다.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사회의 관심과 필요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를 위해 지금 나의 자리는 나의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지금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며 만드는 콘텐츠들, 나의 경험과 지식들이 앞으로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밑거름이 되고 연결된다. 이렇게 내 인생 전반에서 지금 자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게 되니 맹목적으로 열심을 내고 번 아웃되던 이전 모습이 아닌, 이유가 있는 열정을 붓게 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마음 상태로 출근을 하고 일하는 나를 발견한다. 목적지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이렇게 중요했다.
일과 삶의 분리가 아닌 연결
내가 이전에 그랬듯 work & life를 분리해버리는 건 직장에서의 시간이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는 도구가 아닌 의미 없이 ‘소모’ 되도록 하고 있을지 모른다. 되돌아보니 나는 오히려 일과 삶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생각하면서 당장의 오늘, 내일이 아닌 삶 전체를 보게 되었고 해답을 찾아갔다.
사람마다 제각각 원하는 삶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그렇기에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도, 옆에 있는 사람의 길이 옳다고도 판단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때 자신감을 얻고 행복해진다.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하는 일이 원하는 삶과 연결되기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어쩌면 끊임없는 ‘질문’이다. 워라밸을 계속해서 되뇌며 일과 삶을 분리해서 사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나는 결국 분리가 아닌 연결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제는 퇴근 후에도 내가 수시로 읽는 책, 하는 생각 모든 게 한 방향으로 연결된다. 단순히 내 월급을 벌어다주는 직장에 붓는 소모적인 노동이 아닌 내 삶을 위한 고민들이기에 즐겁다.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면 워크의 시간을 그저 소모적인 시간으로 분리해버리는 게 아니라, 내 삶과 생산적인 연결을 시도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