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보고 싶어

by 이승준

그는 어느 날 문득 코끼리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근 시간에 맞추어 아침 일찍 눈을 떴지만 딱히 할 일이 없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눈 뜬 채로 한참을 누워있었다. 막연히 불 꺼진 천장의 전등을 보며 생각했다. 코끼리가 보고 싶다고.




그가 처음부터 서울에서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 교수들의 좁아터진 시선을 참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속이 안 좋은데 토할 수 없는 기분으로 자퇴서를 내던지고 수능을 다시 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만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만만하게 다시 본 수능은 꽤 좋은 성적을 받았고, 차석으로 입학해 각종 공모전을 휩쓸면서 다녔다. 책장 가득 쌓여가는 상장들을 보며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패기 있게 20대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고 통장에 찍히는 억대의 숫자들을 보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길을 확신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들이 빚으로 바뀌어 돌아올 때도 그는 악이 올라 어금니를 깨물고 버텨냈다. 맞는 길을 걸어왔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길에 의문 같은 건 없었다. 분명히 빛나는 꿈이 가슴팍 어딘가에 분명히 박혀 빛을 내고 있었고 그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었다.




코끼리가 보고 싶다고 작게 말했다. 어딜 가야 볼 수 있지? 하고 묻자 친구들은 대공원에라도 가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답해주었다. 그는 작게 코끼리, 하고 다시 한번 말했다. 이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누군가 물어보면 그냥 인터넷에서 하마랑 코뿔소가 싸우는 영상을 봤는데 어째서인지 코끼리가 보고 싶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코끼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코끼리를 보러 갈 날짜를 잡고 하루하루 기다리면서 그날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코끼리가 잘 보여야 할 텐데, 혹시 가까이서 볼 수는 없을까 하며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사업을 하고 있는 그의 친구가 일자리 하나를 내어주었다. 큰 일을 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 하지만 사업은 잘 안 풀렸고 그는 월급을 받아가는 게 언젠가부터 눈치 보이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른 작은 회사에서 그를 불러주었다. 그의 글 솜씨와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다며, 그가 못다 꾼 꿈을 이뤄주겠다며.


불려 간 곳에서 그는 처참한 대접을 받았다. 무엇하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없었고 다른 일 못하는 직원에게 온갖 폭언과 욕설을 일삼는 대표의 눈치를 보며 어느샌가부터 그가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닌 대표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혼 없이 타자를 쳐야 하던 날이 쌓여나가던 여러 날 중 하루, 월급이 몇 달째 밀리던 날 중 하루, 대표는 그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는 그날 이 회사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기 위해 대표를 불러내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했다. 자존심이 지켜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많은 단어들은 잃어버렸던 게 분명했다. 퇴사를 통보하고 집에 돌아와 옛날에 썼던 글을 찾아보던 밤, 그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은 코끼리를 보러 가는 날이야. 출근 시간을 한참 넘기고 난 후에 눈을 뜬 그는 허공에 대고 작게 말했다. 그는 주섬주섬 일어나 밥도 먹지 않은 채로 옷을 대충 걸치고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날이 많이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코끼리를 보러 가는 날이니까.


대공원 역에서 내린 그는 황량한 주차장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 하나 없는 그 넓은 곳에서 그는 어쩔 줄 몰라 급해지는 마음과, 희미해져 가는 방향 감각에 발만 동동 구르며 연신 코끼리, 코끼리만 중얼거렸다.


순간 머리카락에 무언가 툭 치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그는 불러주는 사람이 많았다. 그 불러주던 사람 중에 한 명은 그가 이전에 했던 일들을 보며 못다 이룬 꿈을 이뤄주겠노라며 온갖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월급이 조금 많이 작아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그 대표를 따라나섰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아마도 그의 키만큼 문서작업을 했던 것 같다. 대표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끝없는 욕심에 비해 그의 속은 한 없이 작았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고 때로는 대표의 고민 상담까지 해주어야 했다. 어르고 달래고 일하고 까이고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그는 그 자리가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조금 큰 문제가 생겼다. 대표는 그의 탓을 했고 그는 대표와 점점 감정적으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을 들였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자기 자식 같은 기분으로 벌인 사업이었기에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대표는 돈이 떨어져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가 왔을 때 그를 제일 먼저 내쳤다.


그는 제발 자기 자식 같던 일들, 꼭 잘 봐달라고 남은 직원에게 부탁하며 문을 나섰다.




비를 맞으며 그는 코끼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방향을 하나 정해 빠른 걸음으로 비를 헤치고 걸어갔다. 물론 틀린 길이었고 꽤 많이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 뒤였다. 한 시간쯤 걷고 나서야 그는 결국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빗속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며 안전바에 턱을 괴고 발 밑을 바라보았다. 안전그물을 바라보며 떨어져도 죽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그게 문득 아쉬워졌다. 이런 좋은 경치 속에 파묻혀 죽는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마무리일 텐데, 하고 생각했다.


주변 풍경을 보며 참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가 코끼리를 보고 싶다는 마음 따위는 하찮은 소망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코끼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만약 코끼리를 만났는데도 아무 생각이 안 들면 어쩌지 하는 작은 불안도 피어났다고 한다.




그는 처음으로 누가 불러주지 않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조금 늦었지만 합격 통보를 받았고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월급이나 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하고 싶었던, 하던 일들과는 사뭇 다른 일들이었지만, 그의 상사들이 그를 괴롭히고 그가 하던 모든 일들이 작은 톱니바퀴만도 못한 일들이었지만, 자존심과 자존감이 모두 짓밟히고 자신을 무능하다고 되뇌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버텼다.


이제 그는 이를 악물지 않아도 그는 충분히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겠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폭력적인 언어에 휩싸인 하루하루가 계속되었지만 그는 영혼 없이 출근하고 퇴근할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회사는 월급날 단 하루만 유의미한 존재였다.


그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익숙한 고통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코끼리를 보러 가는 길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비도 오고 있었고 사람도 없어서인지 죄다 어딘가 숨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기웃거리며 동물들을 찾아내었다. 이건 코끼리를 보기 전 애피타이저 같은 거야. 하고 작게 말했다. 혹시 코끼리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르니까. 하고 뒤이어 말했다.


호랑이를 보며 커다란 고양이라며 좋아했다. 발을 한 번만 만져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울타리를 넘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괜히 만졌다가 호랑이가 싫어할 것 같아서 고개를 작게 저었다. 이왕 보는 거 여러 동물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는 열심히 걸음걸이에 힘을 주었다.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그는 우산 하나 없이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내일은 분명 감기에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월급이 두 달째 밀렸을 때, 회사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그는 여전히 영혼 없는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출근해도 일이 없었다. 모든 임원들은 저마다 자기 살기 위해 서로의 뒤통수를 칠 궁리만 하고 있었고, 직원들을 온순한 양처럼 정시에 출근해 뭔가 저마다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보며 그는 고통을 참을 이유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삐딱하게 앉아 불량하게 대답했다. 누군가 그에게 화를 내면 그는 비아냥 거리며 화를 받아쳤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쉽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왜 지금 알았을까 하고 후회했다. 그러기를 다시 한 달째, 생계를 위해 아끼던 물건들을 중고로 팔아넘기고 그걸로 모자라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늦더라도 꼬박꼬박 출근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던 그 조직이 이제는 고통을 줄 수 있는 상대가 되자 그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이 없어도 출근해서 삐딱하게 앉아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생각보다 코끼리는 작구나. 뭔가 계시를 바라고 코끼리를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뭔가 얻고자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허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서서 코끼리를 바라보았다. 코부터 꼬리까지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끔뻑 거리는 눈이나 멍하게 벌리고 있는 입, 연신 움직이는 코 끝과 묵직하게 들었다 놨다 하는 넓은 발바닥.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고 그때쯤, 그는 코끼리의 정면을 보기 위해 제발 이 쪽으로 돌아서라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빌고 있었다. 한 번만 눈이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한 번만 코끼리의 앞모습을 보고 싶다고. 혹은 아직 보지 못한 코끼리의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이 보고 싶다고. 그래야 그의 실망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회사는 결국 정리될 거라며 모든 직원을 집으로 보냈다. 급여는 밀려있는 채로. 사람들을 따라 그도 진정 제기를 하고 누군가 고소할 거라고 해서 위임장에 사인을 해주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행복한 삶은 어떤 걸까. 하고 생각했다.


분명 뭔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나도 꿈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가슴에 뭔가 빛나는 게 있던 것 같은데. 이제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그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는 이제 서울을 떠난다고 한다.


많은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그가 가지고 있던 빛이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는데 그게 뭐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지독한 동네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냥 조금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동물원이 문 닫는 시간을 꽉 채워서야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코끼리가 좀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과 왜 그렇게 코끼리가 보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 두 가지를 품고 집에 돌아왔다. 어쩌면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코뿔소와 하마가 싸우는 영상이 이유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유 같은 건 없이 결과만 남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굉장히 많은 일에 의미 같은 건 사실 없는 게 아닐까. 그냥, 그냥 그렇게 되어야 해서, 혹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게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되는 일이 대부분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쩌면 어떤 드라마 같은 계시와 결심, 번뜩이는 영감이나 뜻밖에 찾아오는 무언가 따위는 없는 게 아닐까. 그냥 코끼리가 보고 싶을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삶을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지독하게 힘들다, 그는 작게 말하면서 이사 준비를 했다. 이후 삶은 어떻게 기록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예전에 잃어버린 의미를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코끼리를 보러 가는 일만큼 이유도 의미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돌아가는 길을 찾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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