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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 x 너 x 스패너

by 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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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 친구가 죽었던 날도 오늘이랑 비슷한 것 같네요.”


며칠 전부터 내 연구실에 전구에 잔광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을 꺼도 빛이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걸 보며 결국 관리인에게 말을 꺼냈다. 별로 말을 섞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자가 건물 관리인이니 어쩔 수 없었다. 금방 해치우고 가겠거니 했는데 내 착오였다. 큼지막한 공구통을 챙겨 오더니 한 시간째 저러고 있다. 나는 뭔가 내 방에 이 사람을 두고 가자니 꺼림찍한 기분이 들어 감시하는 기분으로 잡혀있는 중이다. 천장 마감재 한쪽을 들어내고 상반신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걸친 상태로 한참 뭔가 뚝딱 거리는 게 안 그래도 신경 쓰였는데 드디어 우려하던 주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많이 왔던 것 같은데요. 해도 지기 전인데 먹구름 때문에 꼭 밤처럼 깜깜했었던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얼른 해주시고 가면 안 될까요?” 나는 결국 짜증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교수님. 이 잔광이라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게 보이기도 하고 막상 까 보면 공사가 복잡한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너무 지루해서 실언을 했나 봅니다. 그나저나.” 관리인이 상반신을 천장에서 꺼내고 사다리에 걸터앉은 채로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이거 좀 큰일이라 시간이 걸리겠는데.. 혹시 연구소 전체 전원을 좀 내려도 될까요?” 왠지 모르게 손에 묵직한 스패너를 들고 있는 큼직한 손에 자꾸 시선이 갔다.


“박사님, 그러면 저희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나도 여기 정리하는 대로 갈게.” 마침 전원도 내려가겠다, 연구실에 큰 일 없으면 그냥 잔류인원 모두 퇴근하라고 지시하던 참이었다. 내 지시를 받고 방을 나가는 선임 연구원과 관리인이 교차하며 들어온다. “가만 보면 연구원들은 다들 교수님을 박사님이라고 부르네요. 밖에서는 교수님이 더 익숙하신 것 같던데. 나도 박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나는 미간이 작게 떨렸다. “그딴 건 마음대로 하시고요. 이거나 빨리 끝내고 가주세요. 저도 바쁘니까.” 관리인은 “예 예 교수님~” 하며 다시 사다리를 올라 아예 천장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잔광 때문인지, 아니면 완전한 일몰은 아니어서인지 연구실 안이 희미하게 밝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 친구 진짜 사고로 죽은 걸까요?” 잠깐 졸았나 보다. 어느새 목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바로 들렸고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머리 위로 쿵 쿵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차마 소리가 나는 천장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다 끝난 이야기를 또..” “음.. 그렇지만 말이에요. 머리에 피를 그렇게 흘려가면서 연구실 문으로 기어가다가 결국 문턱까지는 가고 죽었단 말이죠. 그 정도의 힘이 있었으면 신고를 하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요?” 머리 위에서 뚝딱 거리는 소리가 잠깐 멈췄다. “역시 단순히 사고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연구실에서 넘어졌고, 머리를 다쳤고, 하필이면 뇌혈관이 터져서.. 하필 연구소가 비어있을 때고..” “꼭 변명하시는 것 같네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아니 그렇게 결론이 난 걸 왜 이제 와서 또 의심하시는 건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러시는 건데요 도대체!" 머리에 열이 올라 사고를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왔다. "의심받은 게 그렇게 억울했어요?” 천장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다잉 메시지였잖아요. 그거.” 머리 위로 쓰윽 쓰윽 문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먼지 위에 뭔가 쓰는 것 같았다. “투박하지만 분명하게 쓴 ‘너’ 말입니다.” 알 수 없는 오한이 느껴졌다. 소름이 돋았다. 순간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그 사건 이후로 관리인이 잘렸던 거 아닌가?


“이 이야기 그만하면 안 될까요?” “교수님은 벌써 잊으신 모양이군요?” “아니 잊은 게 아니라.” “아니면.” 관리인이 내 말을 잘랐다. “혹시 죄책감인가요?”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계속 말해봐요. 죄책감을 느꼈나요? 뭔가 양심에 가책이라도 느꼈나요?” 다시 머리 위로 쿵쿵 소리가 들렸다. 자꾸 아까 관리인의 손에 잡혀있던 커다란 스패너가 떠올랐다.


확실히, 연구소 내 사람들은 알리바이가 확실하거나 특별한 동기가 없었다. 그저 대학 부지 바깥쪽에 위치한 작은 인문 연구소였다. 연구소 사람은 적었지만 작은 건물을 통으로 쓰고 있어서 각자의 영역이나 연구 공간도 충분했다. 환경이 그래서인지 다들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모난 관계도 없었다.


그런 연구소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다지 색이 튀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원한을 살만한 친구도 아니었다. 손가락 끝에 피를 묻혀 죽어가는 마지막에 남긴 ‘너’라는 글자만 아니라면 모든 게 사고로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다. 더 조사해봐야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경찰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문제는 관리인의 입이었다. 사고사로 결정지은 날, 호기심이 넘치던 기자 하나가 뭐라도 건질 게 없을까 싶어 관리인을 찾은 게 문제였다. 우리는 관리인과 입을 맞춘 건 아니었고, 그래서 그렇게 새어나간 ‘너’라는 글씨 하나는 그날 이후 엄청난 음모론의 대상이 되었다.


경찰들은 연이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다잉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상상력들과 만나 엄청난 소문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소문의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처음에는 그냥 꺼질 불씨일 줄 알았다. 그러나 연구소 앞은 수많은 유튜버들과 기자들이 줄어들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 연구실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 와중에 경찰은 조사를 재개했지만 결국 밝혀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애초에 밝힐 수 있는 게 있을 리 없었다.


관리인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건 어떤 방송이었다. 요점은 그거였다. 환기구로 들어가 흉기를 가지고 기다렸다가 머리를 때리고 도망갔을 거라는 거였다. 현장의 핏자국이나 동선 같은 것들을 종합해서 유추해봤을 때 이 가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방송의 진행자가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환기구 위치 같은 걸 잘 아는 건 아무래도 관리인일 거라며, 사건 당일 앞뒤의 관리인 스케줄표를 대조해 알리바이가 부족하다며 보여준 그럴듯한 정황을 말했다. 무엇보다 ‘너’라는 글씨는 관리인의 ‘관’ 자를 쓰다 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뇌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방향감각이나 여러 감각을 잃게 되며 글자를 반전해서 썼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사가 직접 소견을 밝혔다. 본인이 의심한 글자가, 본인을 오히려 옭아매는 꼴이 되어버렸다.


“제대로 된 수사자료를 본 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냥 그랬을 거라는 추측들만 가득했죠. 그리고 저는 범인이 되었고요.” 머리 위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 스패너로 여기저기 두들기는 것 같았다. 전기 공사에 이렇게까지 두들기는 일이 있나? 하는 차에 머리 위로 하얀 가루가 떨어져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피했다. 나는 천장을 눈으로 훑으며 어디서 목소리가 나는지 확인해야 했다. 방 안을 뒷걸음질 치며 열심히 소리를 피해보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머리 바로 위에서 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부터 사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죠.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 심지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저를 수사하지 않는 경찰을 욕했죠. 몇 달은 찾아오는 사람들이랑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정말 잠도 못 잤을 정도였다니까요. 일자리도 잃었죠. 이런 논란거리의 관리인을 누가 쓰겠냐고.” 쿵쿵대는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그런데 교수님. 집에서 한동안 쉬어야 했을 때 시간이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나름 알아봤어요. 근데 그 의사가 교수님 친구분이더라고요? 그 있잖아요. 뇌내출혈이 발생하면 방향이 어쩌고저쩌고. 가만 생각해보니 방송에서 쓴 자료들도 연구실 책임자.. 교수님이 관리하던 자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저를 그때 범인으로 의심한 게 교수님이죠?”


순간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이 흘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교수님.” 이번엔 천장에서 난 소리가 아니다. 방 안에서 난 소리다.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번개같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천장 타일을 뜯어낸 곳에서 관리인이 목만 내놓고 나를 보고 있었다. 한층 더 어두워진 실내 탓인지 그의 안광이 소름 끼치게 보였다. “이제 너무 어두워지는 것 같은데 저기 조명좀.” 머리 옆으로 그의 커다란 손이 나왔다. 손에는 기분 탓인지 뭔가 끈적한 액체가 묻어나 보이는 커다란 스패너가 들려진 채로. 그중 검지 손가락을 뻗어 자기가 가져온 공구통 쪽을 가리켰다. 내가 머뭇거리자 슬그머니 다시 천장 위로 사라졌다.


“그래도 교수님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결국에는 제가 문제 삼은 그 글자 때문에 제가 휘말린 거죠 뭐. 좋은 게 좋은 거였는데.. 그래도 나름.. 많이 미웠습니다. 그래도 결국엔 뭐 이렇게 복직도 했잖아요? 혐의도 벗었고 이제 예전만큼 시달리는 일도 없고. 그래서 평화롭고 조용히 지내는 중인 거죠.” 천장에서 다시 손가락으로 스윽 스윽 훑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여전히 거둘 수 있는 의심이 없더라고요. 너. 가 뭘까요. 연구원 중에는 너라고 부를 만큼 동기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니고. 막내였잖아요?” 또다시 천장에서 먼지위로 슥슥 뭔가 써보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억울하니 이 안 좋은 머리라도 굴려보자고 열심히 생각했어요. 나름 관리인이었으니 연구실 구조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환풍구에서 내려쳤을 거라는 가설이 납득이 되더라고요. 그날 상황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사고라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몇몇 보이더라고요. 쓰러진 위치라든가 기어간 동선이라든가. 그런데 별 다른 단서는 없어서 그냥 강한 의심으로만 가지고 있었죠.” “이런 이야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 거죠? 경찰에게 하셨으면.” “글쎄요. 그래도 공공연한 범인인데 제 말을 누가 들어주겠어요. 그냥 작게 남은 푸념 같은 겁니다. 범인으로 저를 의심하셨던 분이니 혹시 사고라고 생각 안 하실지도 모르고.” 그때 관리인의 흥분한 소리가 들렸다.


“엇! 혹시 그 친구가 쓰려던 글자가 ‘너’가 아닐지도 몰라요!” 빛이 안 들어오는 어두운 천장에서 먼지 위에 써보다 뭔가 발견했나 보다. “아니 이게 그러니까 분명 손가락에 힘도 없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획이 떨어진 이런 글자를 제대로 썼을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어요! 어디 보자..” 뭔가 흥분한 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읍! 그래 이거 비읍 아닐까요! 이야! 이걸 왜 여태 몰랐지? 혹시 연구원 중에 박 씨나 뭐 배 씨라든가 그런 연구원이 있나요?” 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에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아니요.”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면 이름에 비읍이 들어가는 친구가 있나요? 이거 비읍 맞는 거 같은데.”


“아니요.”

나는 한번 더 대답했다.


“이야 이상하네. 이거 확실한 것.. 같은데.. 비읍이면... 어.. 이거..”

관리인이 갑자기 말 꼬리를 흐렸다.


“그러게요.”

공구통에 쓸만한 게 있나 뒤져본다.

“정말 그날이랑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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