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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x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x 질문

by 이승준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을 찾아주세요.’


어느 나라의 공주가 혼인할 남자의 조건으로 내건 문장이었다. 다른 나라의 왕자와의 혼인을 몇 번이고 성사시키려고 했으나 공주의 고집이 완강했다. 적어도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을 원한다며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내건 조건이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을 찾아오는 자라면 부자도, 빈자도, 미남이나 못생긴 자라도 상관없다. 누구든 영원한 불꽃을 가져와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열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파격적이었던 조건은 나라를 술렁이게 했다. 공주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왕의 외동딸이라는 점에서 왕을 이어 나라를 다스릴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안의 매력만큼 쉽게 도전하지는 못했다. 첫째 날의 사건 때문이었다.


나라에서 꽤 이름 날리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진짜 활활 불타오르는듯한 불꽃 그래픽을 태블릿 피씨에 담아왔다.


“잘 보십시오 공주님. 이 불꽃은 적어도 꺼질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지요.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타오르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주가 손짓하자 근위병이 다가와 태블릿 피씨를 빼앗아 바닥으로 던져 부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안 타오르는 게 아닙니까?”

“하하, 걱정 마십시오 공주님. 아까 보신 그래픽은 이미 웹 서버에 올려둔 상태입니다. 어느 매체든 디스플레이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불러와 재생만 하면 됩니다. 이 그래픽 불꽃은 전파 안에서 떠돌아다닐 테고 이는 영원하겠죠.”

“만약 서버가 고장 나면요?”

“그렇다면 백업 서버가 있습니다.”

“백업의 백업, 그 불꽃을 담은 모든 전자기기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고장이 나는 속도보다도 먼저 그래픽을 독립된 저장매체에 옮겨 담으면 됩니다.”


공주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백업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매체들이 고장 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가정은 무의미합니다. 고장 나는 속도보다 저장의 속도가 빠르면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둘 다 무한이 빠르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죠. 두 무한한 빠르기 중에서 어느 쪽의 더 클지 함수를 정확히 쓸 수는 없겠지만 제 생각에 저장하는 속도보다 고장 날 경우의 변수가 훨씬 클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저장의 경우 시스템 내에서 한계가 있는, 그러니까 사람이 명령하고 시스템이 데이터를 복제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고장은 시스템 외적인 물리 변수도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방금 근위병이 부순 당신 태블릿처럼 말이죠.”


일러스트레이터는 당황했다.

“자, 고장 나는 쪽, 그러니까 파괴되는 변수가 더 클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고장이 난다는 것의 최대치는 전자기기의 총합을 넘지 못하겠지요. 그렇다면 결론이 날 것 같네요. 두 경우의 차는 0에 무한히 수렴하겠군요. 이러면 제가 말씀드린 영원의 정의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벌게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0에 수렴한다는 건 0이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다가 공주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이 모든 대화는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던 많은 이들은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을 꺾어버렸다.


-


공주의 요구에 도전자가 나온 건 몇 주 뒤의 일이다. 자신이 개발자라고 소개한 그는 타오르는 불꽃이라는 큼지막한 명패를 단 거대한 조각상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가지고 왔다.


“공주님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절대 꺼질 일이 없지요. 전에 누군가 가져와 보여주었던 무한히 복제된다는 속성으로 영원을 주장하던 그 그래픽 데이터 불꽃과는 아주 다릅니다. 실체가 있는, 그야말로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지요.”


공주는 무심히 보다가 말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세월이 지나 부식되고 풍화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그런 것도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이 조각상 안에 있는 코어 나노머신이 기본적으로 주변의 원소를 끌어와 합성하여 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해두었습니다. 물론 자가 수리조차 가능한 영구적인 시스템이죠. 단순한 철제 조각상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시스템이 판단하여 주변 원소를 모아 합성하고 이 형태를 알아서 구현해낸 것입니다.”

“지구가 사라진다면.”

“그런 걱정도 안 하셔도 됩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습득할 수 없는 영역의 원소도 계속해서 수집할 테니까요.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습니다. 우주 전체의 원소가 소멸해버리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그냥 없다고 가정해야 할 테니까요. 공주님도 이건 부정하실 수 없겠지요?”


"동력원은 무엇인가요? 영구기관은 존재할 수 없을 텐데요?"

"지금은 내부에서 핵 합성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소비하고 다시 합성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구기관은 아니지만 영구적인 동력원으로 작동하지요. 지금은 크기가 매우 크지만 알아서 학습하고 존체 자체를 개선해 나가다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미래에는 아마도 더 작은 크기의 머신으로 적은 동력으로도 작동하게 될 겁니다. 지금도 이 기계는 아주 느리지만 진화하는 중이니까요."


공주는 턱을 괴고 뭔가를 가만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건 영원하다고 할 수 없겠군요. 아니 지금 이 상태로도 실격입니다.”

“억지 부리지 마시죠 공주님. 이것이야말로 영원할 것입니다.”

“생각해보시죠. 지금은 튼튼해도 언젠가 풍화되고 고장 나고 일부의 원소가 붕괴되고 어딘가 사라질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시스템이 다른 원소들을 끌어와 수리해서 형태를 만들겠지요. 자, 그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어서 어느 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해보죠. 그 지점은 지금 당신이 가져온 이 불꽃 조각에서 하나의 원소도 빠짐없이 새로운 원소들로 교체된 무언가가 된 상태를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그 상태의 무언가도 지금 당신이 가져온 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라고 이름 붙인, 이 조각상이라고 할 수 있나요?”


개발자는 말문이 막혔다.


“형태가 같으면 그렇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죠 형태만 같을 뿐, 그 안의 그 무엇도 당신이 의도를 담은 처음의 이 조각상과 같은 게 없습니다. 무엇으로 그 둘이 같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애초에 같은 것은 형태일 뿐, 이 조각의 이름을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라고 붙였다 하여 그때도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가능할까요?”

“존재의 이유가 같지 않겠습니까?”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형태는 상관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 시스템이 분화되어버렸다고 합시다. 뭐 미사일을 맞았거나 어떻게 되었든 해서 파괴된 나노머신이 다시 형태를 갖추기 위해 가동되었다 가정한다면요.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그런 경우에는 분화된 나노머신이 여러 개의 이 불꽃 모양이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중에 어떤 게 개발자님이 말씀하신 존재의 이유를 가진 개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죠, 모두가 다 같은..”


개발자는 말을 하다 말고 조용해졌다.


“맞아요. 모두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겠죠. 이제 우리는 이 실체가 이미 모호하다는 걸 동의한 셈이네요. 당신이 가지고 온 건 대체 무엇입니까?”


-


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에 도전하는 이가 나타난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굉장히 허름한 옷차림과 얼마나 깎지 않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거지 행색을 한 사내가 공주 앞에 나타났다. 자신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을 가져왔다며 당당히 공주 앞에 나섰으나 어쩐 일인지 미동도 하지 않고 공주를 빤히 보기만 하였다.


“그래서 불꽃은 어디에 있나요?”

“여기 제 손 위에 있습니다.”


사내가 펼쳐 보여준 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장난하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공주님 제 말을 들어보시죠.”


사내는 크게 헛기침 한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영원히 타오를 수 있는 불꽃을 생각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영원한가. 혹은 무엇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다 문득 깨달아버렸습니다. 그 어떤 불꽃도 영원히 타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했다면 영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비단 불꽃이 아니라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보이지 않는 전기 신호로 바꾸어 허공에 뿌려 놓아 모든 세상에서 존재하게 하든, 혹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파괴되지 않게 만들든, 그 시간의 영원함은 결국 우리 세계의 시간 안에서 한정적일 뿐. 이는 영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생각의 끝에 내린 결론이 이것입니다. 타오른 적 없는 불꽃만이 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불꽃은 어디에 있는가. 애초에 꺼지고 타오르고 하는 윤회가 계속되는 우주의 속에서 불꽃이라는 개념을 품에 안은 이 우주, 이 공간 만이 영원한 것 아닌가. 그저 불꽃이 머물러있는 이 세계.


그러니 이것이 제 결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자체가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공주를 제외한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탄식이 여기저기 흘러나왔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불생불멸이라. 꽤 납득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아뇨, 이게 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은 불꽃입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말입니다. 좋은 말은 잘 들었으나 불꽃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지 않습니까. 여태 설명한 것은 어찌 들으시고.”

“아뇨, 당신이 가지고 온 건 좋은 말이었지요. 불꽃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이제.”

사내는 당황했다.


“맞는 말입니다. 이 우주가 불이고 불이 이 우주죠. 불꽃은 일렁일 뿐이고 타오르거나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불꽃 그 자체는 아마도 영원히 타오르겠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저 불꽃이 아닙니까. 내가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은 어디에 가지고 오셨습니까?”


-


공주는 인터넷 중계를 끄라고 손짓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끔 찾아오는 이 도전을 위해 왕궁 내에 세팅해둔 일종의 스튜디오였다. 가림 천을 치우고 여러 가지 왕궁의 이미지를 좀 더 돋보이게 하려는 여러 소품을 치우고 공주의 헤어와 메이크업 담당이 와서 공주의 주변을 분주히 정리한다.


사내는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한 가지 더 생각해 놓았던 답변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이 역시도 불꽃은 아닙니다. 혹시 공주님은 이 답이 없는 문제를 일부러 던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말들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입니다. 이렇게까지 기술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달했는데도 왜 공주님은 결혼을 해야 하고 나라를 통치할 왕자를 찾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본인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이 혼인하지 않고 나라를 통치할 명분과 함께 자신이 가장 잘 드러나 보일 수 있는 그야말로 위태로우나 완벽한 대치상태. 더불어 왕실과 자신의 이미지를,”

“그만.”


공주는 손으로 사내를 제지했다.


“두 번째 답변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답변도 꽤 마음에 들었어요. 당신도 내일부터 왕실에 출근하도록 하세요. 맞는 자리를 하나 비워두겠습니다.”


공주는 캐시미어 100프로 코트를 걸치고 왕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제작한 신상 백을 맨 채 궁녀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아하게 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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