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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Feb 06. 2017

her

시간 낭비를 할 순 없어요. 당신이 진지하지 않다면요.

테오도르와 소개 자리에서 만난 여성은 이야기가 꽤 잘 통하는 듯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밤인 거리.

밖으로 나온 둘은 격렬하게 키스한다.


'혀 그렇게 많이 쓰지 말아요.'


하고 그녀가 살짝 밀치며 이야기한다.

점점 격렬해지는 스킨십 중 갑자기, 그녀는 살짝 떨어져 테오도르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한다.



'당신도 다른 남자들처럼 나랑 자고 나면, 전화도 한 번 안 할 건가요?'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죠?'


그녀가 갑작스럽게 꺼낸 몇 번의 집요한 물음, 그리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테오도르.

그녀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테오도르의 눈을 어떻게든 쳐다보려 하며 다급하게 말을 가져다 붙인다.


'이봐요, 우리 나이엔 느낌으로 말이죠.'

'나는 느낌으로...'

'난 그냥...'

'시간 낭비를 할 순 없어요. 당신이 진지하지 않다면요.'



'잘 모르겠어요.'


오늘은 이만 가야겠다는 테오도르의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두 번 흔들린다.




시간 낭비.


사랑에 가능성을 재봐야 하고,

사랑에 시간이 낭비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고,

사랑이 시작하기도 전에 성공 가능성을 먼저 합의해야 한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나는 사랑에 쏟아야 하는 감정과 시작하기 전에 들어갈 시간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사실이 심지어는 귀찮기까지 하다.


나는 나 혼자 여러 취미 생활하고 버는 돈 혼자 잘 쓰며 살고 있는데,

여기에 나를 계속해서 사랑해 줄지 아닐지도 모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나의 편안함을 희생해야 하는가.

심지어 그 가능성마저 낮다면 그건 고스란히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이 든다는 사실 자체가 어떨 때는 서글프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실패했던 지난 연애가 나에게 주었던 감정의 폭이 너무 커서이기도 한 것 같다.


her에 나왔던 다른 대사처럼,

나는 내가 평생 겪어야 할 감정의 종류를 그때 다 겪어본 것 같아서,

애타지 않고 간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넓은 마음의 간극에서 달콤할 마음의 기쁨보다도 망가졌을 때의 상처가 더 두렵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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