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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Feb 14. 2021

19금 여성향 웹소의 클리셰

좀 부끄럽긴 함 

브런치가 대체로 성인들이 많이 쓰기는 하는 서비스인데 야설작가로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이 글 제목을 '뒤로 돌아서 엎드려'로 하고 싶었다. 왜냐면... 방금 쓴 대사다. 그리고 엄청 흔한 대사다. 뒤로 돌아서 엎드려. 진짜 일전에 엄청 논란이 되었던 알페스 판부터 시작해서 19금 씬의 단골 대사. 자주 나오는 문장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의 대사인데 나는 거의 처음 쓰는 것 같다. 왜냐면 보통은 그렇게 말을 잘 안하니까. 무슨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대사는 사실 배워서 쓰는 것이지 실제 섹스를 반영하는 대사는 아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건 여성향 포르노이지만 남성향 포르노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하면 그냥 그런 것들도 꽤 과장되게 등장한다. 현실에서 하면 대박 깨는 것도 있고... '리디광공'밈과 비슷한 것이다. 소설의 남주가 '뫄뫄씨, 대답.'하면 으악! 꺄악! 하지만 썸남이 나한테 '뫄뫄씨, 대답.'하는 순간... 술자리에서 다섯 번은 써먹을 수 있다. 그런 소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안 하는 게 좋다.  


하지만 '뒤로 돌아서 엎드려'라는 문장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이 성인 로맨스 판에서 나는 저게 상당히 인기있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반드시 주인공이 고양이를 구한다는 클리셰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야설 클리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런 것을 누군가 정리를 했을까. 나는 귀찮지만 남이 해주면 좋겠다. 19금 웹소설 클리셰. 어쩔 수 없이 한 결혼, 거대한 빚, 몸으로 갚아야 할 여러가지 일, 강압적 상황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연출, 허릿짓, 추삽질, 왜 비너스의 둔덕은 이제 초초초초 올드한지, 옥문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양물은 여전히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각자 선호하는 표현이 따로 있는지, 하지만 자주 못 사용한다면 왜인지... 등등...


'강압적인 시츄에이션' 같은 경우는 이 어절 자체가 약간 업계 용어인 것 같다. 강압적 묘사가 들어있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절대 강간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사실 비서랑 연애하는 거나 신입사원이랑 연애하는 거 현실로 끌어오면 직장 내 성폭력이고 오후 세 시쯤 탕비실에서 섹스하면 진짜 미친사람이고 원치 않는 결혼으로 팔려가서 신혼 첫날밤 맞는 것도 전부 강간이다. 그것이 왜 강간인가, 하지만 왜 그것을 보는가, 그 욕망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너무 길고 또, 공격을 많이 받는다. 아무튼 나는 그런 강압적 시츄에이션에 꼴리는 여성 독자들이 이상하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또한 우리가 전부 뇌가 망가졌으니까 다정하고 친절한 섹스에만 성적으로 흥분하도록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진짜로 저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이 여성이 남성향 포르노를 보고 자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정말로 성적 취향이 있는 몇몇이 아니라 그것이 보편적 욕망의 일부인 이유는 억압적인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욕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억압.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여성들은 야설을 사서 볼 수 있지만, 욕망에 솔직할 수는 없다. 결국 다 말했군. 


14살짜리 여중생이 섹스가 하고 싶다고 말해도 완벽하게 그 아이의 평판과 신변이 안전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나? 전혀. 그게 이 사회의 억압이다. 그렇게 일부라는 그 일부 미친놈과 일부 변태들이, 그렇게 일부면 왜 여성들 대다수는 어릴 때 쓰던 메신저에서 한 번씩 아무 맥락없는 낯선 변태의 쪽지를 받았는가. 세이클럽 타키나 버디버디, 네이트온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보낸 '섹스 조아해 ㅎㅎ?'에 뭐야 이게? 한 기억들 없는 여자 못 봤다. 이미 이 사람 저 사람이 여러 논문을 통해 골백번도 더 한 이야기이다. 드러내서는 안되는 성욕과 자신에게 있는 욕구 사이에서, '나는 싫은데 쟤가 하자고 해서...'이지만 그 '쟤'가 해당 세계관에서 가장 좋은 남자인 시츄에이션이 정확하게 그 부분을 충족한다고. 


또 한번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NO MEANS NO이다. 애초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러가지 베이스를 쌓고 또 쌓아 올려서 만든 장면이다. 소설에 존재하는 암묵적 합의는 오로지 픽션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비현실성으로 따지면 내가 토요일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 세시에 깨서 화장실 갔다가 물 한잔을 마시는데 어차피 내일 할 일도 없는데 갑자기 섹스가 하고 싶어, 근데 마침 냉장고를 열었더니 거기서 키 180의 얼굴이 내가 좋아하는 약간 수염있고 중후하게 생긴 40대인데 정력은 20대 같고 몸은 근육질인 남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래서 내가 실례를 무릅쓰고(애초에 남의 집 냉장고에서 튀어나온 것도 상당히 실례겠지만 타이밍이 지나치게 좋았으므로) 남자에게 지금 당장 제방으로 가실래요, 해서 섹스를 했다. 그런 것이다. 


분명히, '뒤로 돌아서 엎드려'라는 문장을 쓰고 크으! 꺄악! 하고 시작한 글인데 결국 그 강압적인 장면들은 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가를 말하다가 이렇게 속이 터진다. 하지만 여성향 성인 소설을 쓰면서 그 욕망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그런 강압적 관계에 대한 욕망을 '안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고, 창작물에서 남주가 여주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하는 모든 짓은 마침내 화해와 용서로 끝이 나지만, 사실은 사랑의 이름으로 용서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내 리디 서재는 강압적 관계로 넘쳐난다. 나 혼자 이 억압적 사회에서 홀로 떨어져 자라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뒤로 돌아서 엎드려'라는 문장이 나와 독자의 욕망에 충실히 복무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이러한 욕망의 근원에 억압이 있다는 것을 굳이 말하게 된다. 또한 굳이 억압이 아니더라도, 그냥 섹스 취향일 수도 있고. 

막장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현실에서 자신의 관계를 그렇게 파탄내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그 드라마를 보는게 아니라고 말하면 좀 더 설명이 쉽겠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1. 자신이 이상성욕자일까봐 걱정하지 말 것 2. 그렇다고 하더라도 뭘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니며 세상엔 많은 이상성욕자들이 있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알아서 잘 갈무리하고 살아가고 있다. 3. 많은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성적 욕구를 잘 채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작가 같은 이야기를 썼군. 매거진에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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