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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Apr 07. 2021

적절한 기분은 없으니까

일은 늘 시작이 어렵다. 앉으면, 한글을 켜면,(한국어 문서를 작성하기에 한글은 정말 훌륭하다) 한 문장을 쓰면 그 다음부터는 그럭저럭 괜찮다. 한 편에 4시간이 걸리든 5시간이 걸리든 아무튼 첫 문장을 시작했다면 그날치 일은 어떻게든 마치게 된다. 하지만 늘, 아아, 하기 싫어, 아아, 쓰기 싫어. 하면서 미적거린다. 스마트폰 안에 재밌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글이 쓰기 싫어서 인스타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를 그만 둔 이후 내게 SNS는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떠들어야 재밌는 사람이다 나는. 


적절한 기분은 없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잠이 덜 깼을 수는 있다. 난 어젯밤 꿈에 14만원을 잘못 이체했고 중간에 살짝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꽤 졸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 정도면 11시쯤부터는 정신차리고 일을 해야지. 적어도 오전을 전부 날리진 말아야지. 시간 땡 하면 움직이자고 정해두는 건 꽤 도움이 된다. 가서 뒷목을 마사지기로 좀 풀고, 눈 감고 좀 누워있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지. 아아. 으아아. 물론 나는 열한시 반에 운동 일정을 잡아뒀으므로, 아마 그렇게 하면 30분 일하고 운동하고 일을 해야겠지만 그 30분으로 '오늘은 일을 하는 날이야'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평일마다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 거의 오전 시간은 대부분 일하는 날 스위치를 켜는데 쓰는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것도 기분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던 때나 다니지 않을 때나 앉자마자 일을 시작하는 사람을 만난적은 좀 드물다. 물론 앉자마자 창은 띄운다. 마감이 코앞이면 아무래도 좀 더 그냥 하게 된다. 인디자인을 켜거나 한글을 켜거나 바로 타자를 치고 마우스를 움직이게 되지. 지금도 사실 발등에 불이다. 프리랜서의 기한 없는 마감은 본인에게 좀 더 타격이다. '고작 이 글을 쓰는데 너 1년을 넘게 버리고 있어.' 같은 마음이 된다. '네가 멍청해서 멍청해서 멍청해서 멍청해서 멍청해서....' 하지만 자신의 멍청함에 화를 내는 것도 하루 정도이지 아무튼 더더더더 멍청이가 되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초고를 털어야 하는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보니 정신이 좀 돌아온다. 커피를 마시고 들어가야지. 최근에 하고 있는 불교 명상 수행에서 들었는데, 타인에게 뭘 이야기하고 답장을 바로바로 받고 싶은 그런 마음도 감각적 욕망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을 피로하게 하는 대신에 블로그에 좀 더 글을 써야지, 그냥 답장 받고 싶은 마음으로 보내는 메시지는 보내지 말아야지. 그런 방침을 새로 세웠다. 그래서 '으아아 일하기 싫어'라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일하기 싫은 마음'에 대해 긴 글을 썼다. 상대는 내가 바라는 대답을 해주지 않고, 그러면 좀 실망하게 되고, 그런 게 감각적 욕망이 가져오는 괴로움이다. 요만한 욕구가 있는데, 위로와 공감을 원하는 대로 얻지 못하면 실망하게 되는 것. 하지만 남과 나는 너무 달라서, 남이 하는 위로는 대부분 내 맘에 탁 와닿지 않는다. 사람마다 중시하는 게 다 차이가 있는데, 내가 하는 말도 남이 하는 말도 어쨌거나 각자의 방식대로 수용하기 때문에 적절한 위로지점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그래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런저런 것들을 잘 다스려보려는 시도들을 늘려나가고 있다. 


사실 좀 더 초점이 한 곳에 맞춰진, 쓸모있는 글이면 좋겠지만 잠을 깨고 하소연도 좀 안에서 풀고 하려다보니 역시나 아무말 대잔치이다. 글은 한 점에 모여야 하는데에에에 라고 생각하고, 그게 기본이지만, 에이 모르겠다. 블로그까지 일로 만들고 싶진 않다 나는. 맘 먹고 상업화 하려면 하는 방향도 있지만, 역시나. 이  글도 일이고 저 글도 일이면, 그러면 무슨 재미가 남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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