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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Jan 20. 2019

자기소개서요? 저 좀 데려가세요.

안 써 본 건 아닌데 제대로 써 본적은 없었다. 

자소서. 안 써본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 할 때도 자소서를 요구하는 곳이 있었고 예전에 한번 취업을 시도했을 때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고 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의 자소서를 쓴 적이 있다. 그러니 나를 뽑아달라. 회사 이름을 빼고 좀 두루뭉술한 내용을 넣어 잡코리아에서 여러군데에 간편하게 지원했었다. 그때는 오로지 '직무'만 생각했다. 내가 왜 이 회사에 가야하는가, 같은 내용은 생각도 못했다. 왜냐면 딱히 그 회사에 가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게 티가 났는지 지원한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떨어졌다. 붙은 곳도 있었는데 이상한 곳이었다. 회사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고 대뜸 지원부터 했으니. 나는 한달도 못 다니고 그만뒀다. 사장이 매일매일 두시간씩 사원을 앉혀놓고 훈화말씀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어떤 곳에 가고 싶다는 욕심과 목표가 있으니까, 가고 싶은 회사를 추려서 그 회사에 맞는 자소서를 하나하나 썼다. 원래 이렇게 했어야 하는건데 전에는 이런 걸 몰랐다. 게다가 자소서는 내가 그간 써왔던 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이기는 하다. 내가 그간 썼던 글은 소설이었고, 이것은 자기소개서이다. 글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먼저 소설은, 놀랍게도, 내가 엄청 새로운 것을 하거나 엄청 눈에 띄는 기발한 것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아니,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익숙하게 재밌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쓰는게 좀 더 낫다. 남들이 맨날 쓰는 로맨틱 코미디를 내가 쓰고 싶으면? 쓰면 된다. 같은 얘기도 남보다 잘 쓰면 된다. 어차피 내가 쓰는 거니까 남이 쓰는 거랑은 다르다. 남과 내가 다른 인간이니까.


그런데 자소서는 다르다. 날 도와주기로 한 친구는 내 자소서를 슥 훑어보고는 "너무 평범해."라고 말했다.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물어봤다. "그럼 어떻게 해야 기발해?" 친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려운 질문이네..." 

"어케 해야 기발하죠..." "글쎄요...."

자소서는, 그런 나의 디테일한 부분은 아무래도 좋다. 나만이 갖고 있는 미약한 개성, 인간 100명이 있으면 100명이 다 다르잖아요, 정도의 다름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나를 뽑아서 면접에 부르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상에 남아야한다. 내 소설은 오 재밌어 보이는데? 하고 사서 하하 뻔한 맛인데 이 집이 그걸 참 잘해 허허허,하고 그대로 잊어버려도 큰 문제 없지만 내 자소서를 보고 호오 흥미로운 소리를 하는군 한 다음에 내 존재를 잊으면 내 취업은 하늘로 날아가잖아요?


일단 친구가 말해준 자소서의 기본은 이랬다. 


당신네 회사는 상황이 이렇고,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니,
나를 데려가서 문제를 해결하세요. 


"당신네 회사 상황을 이제 막 지원하는 신입인 내가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쓰나요...? 그 사람들 다 나보다 몇년씩은 일을 했을텐데 내가 아는 거면 그 사람들도 당연히 알지 않을까?" 

"밖에서 보이는 문제도 있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네가 뭐라고 해도 당연히 너보다 훨씬 많이 알아. 그래도 말하는 거 보면 얘가 뭘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고 하는 소린지 판단할 수 있잖아. 사람을 뽑는건데."


그래서 나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서 보이는 문제가 뭘까 생각했다. 그걸 알려면 일단 이 회사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알아야했다. 물론 회사는 자기네 제품 혹은 서비스를 더 많이 팔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라 이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스타트업일수록 그게 더 컸다. 배달의 민족이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말을 내세우듯이 각자 그런 게 있다. 어디는 재미를 중시하고, 어디는 지성을 중시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썼는지 정리하자면 '귀사는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재미란 뭔가? 재미는 우리와 쟤네를 구분짓는 선이다. 한 집단 내에서 공유되는 문화 코드이다. 당장 내가 재밌는 걸 우리 엄마한테 보여주면 그게 무슨 소린지조차 모르는데 그런 재미가 확장성이 있을까?' 같은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하지만 남들이 우리의 재미에 포섭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남들이 '우리'에 끼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같은 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동시에 내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다음, 나는 귀사의 가치에 십분 동의하여 당신들과 함께 하고자 하니 (제발) 나를 데려가라. 는 식으로 짜는 것이다. (앞서 말한 내용은 그냥 내가 막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회사는 마냥 좋아보이는데다가, 내가 찾아낸 문제라고 해야 너무 뻔한 것이었고, 수수한 문제에 수수한 답변이 나왔다. 글은 매끄러우나 임팩트가 없어서 응 그렇구나 하고 넘길 문서 쪼가리에 불과했다. 이 때 한번 더 친구 찬스를 썼다. "도저히 안 기발해 어떻게 하지!" 친구가 대답했다. 

기발하든지 
논리적이고 근거가 있든지 
아님 스킬셋이 있어보이든지


스킬셋 없다. 제꼈다. 기발한 문제제기도 못했다. 그래서 그냥 말이 되게 하는데 집중했다. 귀사가 하려 하는 일은 이것이고, 제 직무는 이것이니, 제 직무를 이렇게 이렇게 하여 귀사의 목적을 이루도록 힘쓰겠다. 하는 식으로. 그리고 냈다. 결과는 기다리는 중이다. (그새 이미 두번 떨어졌다.)


듣던대로 자소'설'은 아니었다. 그렇게 길지도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을 이런식으로 어필하는 글은 누구에게나 낯선 것이라,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낯설어서 '자소설'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인가 싶다. 


막 시작하는 단계이고, 신입이니 당장 좋은 결과가 나와도 실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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