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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Mar 15. 2019

줄 선 보람이 있는 텐동

망원동 이치젠

마음 먹고 외출했습니다. 출근 안해서 좋은 게 뭔가요. 평일 외출이잖아요. 줄 서는 가게에 줄 안 서고 가는 거. 사람 많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작업하는 거. 주말에 사람 미어지는 곳을 굳이 그렇게 갈 필요가 없어요. 남들이 일하는 평일 낮이 있으니까! 


...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저는 이치젠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개강... 안했나요? 출근은...? 백수인 것도 서러운데 백수 어드밴티지조차 사라진 것 같은데요...? 순간 이치젠이라는 가게를 마음속에서 지울까도 싶었어요. 기대하면 마음만 아프니까 이제 없는 셈 치자. 맨날 문 앞에서 텐동 맛있겠다고 울면서 지나가기도 이제 지쳤어. 그냥 옛날에 그런 가게가 있었다고 생각해야지.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잖아요. 그래서 일단 이름을 적었습니다. 김반짝 / 1 하고요. 근데 혼자 온 손님은 2,3인씩 온 손님들 때문에 한칸씩 빈자리 나는데 쏙쏙 잘 껴주나 보더라고요! 생각보다 일찍 이름이 불렸고 저는 완전 신났습니다. 메뉴판도 안 보고 봄텐동을 외쳤고요, 제가 주문한 시점에서 두 그릇밖에 안 남아 있었어요. 봄 텐동! 봄 텐동! 땅두릅! 땅두릅! 


연어와 관자, 땅두릅이 포인트
지금까지 먹었던 익힌 연어중에 제일 맛있었다

주문을 하고 들어가서 앉아서 음식을 받을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너무 오랜만에 이치젠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고 대기가 길기는 하지만 대기자 관리가 잘 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음식이 '되게' 맛있다는 거예요. 

이치젠만한 텐동이 다른데 없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가격에 그 정도 맛있는 텐동집이 망원이나 합정일대에 있느냐, 하면 없어요. 망원에 맛있는 집은 많이 있어요. 하지만 되게 맛있는 음식은 원래 찾기 힘들어요. 중간 맛있거나 평범하게 맛있는 집은 꽤 있어요. 분야가 달라서 단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망원에 보라초라는 스페인 음식점이 있어요. 여기도 제가 되게 맛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는 곳이에요. 하지만 보라초는 가격대가 이치젠보다는 높지요. 그러니까 이치젠은 소중해요. 

가성비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면 그건 좀, 이 값 치고는 맛있다 그런 느낌이잖아요. 이치젠은 이렇게 맛이 있는데도 가격이 이렇게 합리적이다! 니까 좀 달라요. 소중한 이치젠에게 가성비 같은 단어를 쓸 수는 없어요. 


두릅이나 관자는 너무 당연한듯이 맛있었는데, 연어 때문에 너무 놀랐어요. 따뜻하고 부드럽고, 연어 맛이 진하면서 고소하고... 흰살 생선과 붉은살 생선의 중간 같은 느낌이었어요. 연어를 허버허버 먹었어요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관자는 뜨거울 걸 알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것도 한번에 허버허버 먹었어요. 허허 뜨거뜨거 후어어어. 나머지 튀김은 얌전하게 먹었어요. 봄텐동에 올라가는 것 중에 연근샌드라고, 슬라이스한 연근 사이에 새우완자 같은게 들어있는데 내 돈 내고 먹는건데도 좀 고마웠습니다. 아니 이거 손 많이 갈텐데 여기 이렇게 넣다니...  단호박이나 야채처럼 평범한 튀김도 바삭하고 고소하면서 속은 촉촉하지요. 어떻게 그렇게 가벼운 옷을 입은 튀김을 만들까요. 


다음에 또 줄을 서야겠어요. 줄 안서고 먹을 방법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줄 서서 먹어야지 어떻게 해요. 안 먹을 수는 없잖아요.


아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맞은편에 당도를 갔어요. 거긴 원래 주에 한번씩 가서 컵 두개 먹으면서 큰거 하나 포장해오거든요. 평일이라 줄이 없었어요. 바질토마토와 잔두이아를 먹고 맛보기로 참외와 믹스베리를 얹었습니다. 당도 아이스크림은 참외야! 아이스크림이 되어라! 한 것 같은 맛이에요. 과일을 그대로 아이스크림의 형태로 먹는다는 느낌입니다.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 아이크림을 어디서 어떻게 배우셨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저는 소심하니까...


당도에서 합정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골목이 있잖아요. 첫번째 지나처셔 두번째 골목에 보면 빌로우라는 카페가 있어요. BELOW. 커피가 다른데보다 작은데 되게 맛있어요. 저는 항상 플랫화이트와 아인슈페너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로또 되면 그냥 두 잔 마실텐데요.


평일에 으쌰-! 하고 나오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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