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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Dec 16. 2019

퇴사 방지 일기

벌써 12월, 월급은 1.5번 




바쁘고, 바쁩니다. 시간이 금방 가서 두 달쯤 되었고 브런치에는 글 한 편 못 올린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숨 돌릴만 하면 일이 쏟아지는 와중에 여전히 제 글을 쓰고 있고 차기작 계약도 했어요. 마감이 닥쳐오니 당분간은 회사 끝나고 카페로 직행해서 글을 쓰고 집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회사는 다닐만한, 업력이 긴 중견기업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좀... 어... 옛날 회사예요. 같이 일하는 분들은 좋은 분들이지만 매주 월요일 아침 훈화 말씀이 있어요. 고객사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디는 같은 일을 시켜도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금방 하시잖아요,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아침에 일찍 나와서 저 출근 전까지 보내주세요.'라고 하는 데도 있어요. 외근도 종종 있고 야근도 있고 여섯 시에 오늘까지 해달라고 하는 일도 있고 그렇습니다.


다들 겪는 일이겠지만, 월요일만 되면 회사가 너무 싫어요. 와, 퇴사하고 싶어요. 늦잠 자고 싶고, 포근한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고 싶어요. 퇴사만 하면 마감도 착착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글도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뜻한 집에서 매일매일 고양이랑 놀고, 더 많이 신경 써주고, 운동도 더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요. 흔히 계획 없이 퇴사하지 말라고 하죠. 전 글 쓰는 것도 잘 되어 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고 이미 내 손에 쥔 건 아니죠.  글을 써서 이미 '잘 된' 다음에 퇴사해야 해요. 너무 잘 알거든요. 애초에 직장 왜 다니려고 했는데요. 돈이 너무 없어서! 


돈 없는 게 뭐냐면요, 그냥 짜장면 못 먹고 짜파게티 먹는 그런 게 아니라, 남자 친구한테 매끼 밥 얻어먹기 미안하니까 차라리 쌀 한 포대 사달라고 부탁하는 거,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손이 곱아서 도저히 타자를 칠 수가 없는데, 카페 갈 돈도 없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거, 친구들에게 맨날 받기만 해서 민망하고 미안한 거, 이대로 단칸방에서 내 인생 끝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진지하게 내 손으로 이 삶을 끝낼까 고민하는 거예요. 


지금은 대전에 내려와 있고, 엄마 아빠 집에 얹혀사니 일단 주거 안정도 되어있고 밥을 굶지도 않겠죠. 하지만 서울 월세도 안 나가는 상태의 온전한 월급을 내 손에 쥐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밥도 살 수 있고요. 


주말에 친구 만나는 것도 돈 있어야 만나는 것이고, 전업작가 하려면 작가 수입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하죠. 몸 피곤해도 회사 다녀야 해요. 당장 회사 그만두면 하루 1만 자, 1.5만 자도 껌일 것 같지만 제가 저를 알죠. 돈 벌어야 해요. 저축도 하고 면허도 따고 공부도 하고 남에게 밥도 살 수 있는 그 돈. 


그러니 내려가서 비싼 커피 마시고, 이렇게 혼자 퇴사 방지 일기를 쓰면서 월요일을 넘겨봅니다. 월요일만 넘어가면 또 괜찮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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