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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Aug 02. 2020

샤워를 하고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일기를 쓴다

2020년8월1일

무알콜 맥주는 생각보다 매우 훌륭하다. 크롬바커 무알콜을 마시는 중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라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자기 전에는 좋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맥주에 유난히 약하고, 얼굴이 잘 빨개지고, 술이 깰 때까지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일기를 쓰는 자신을 연출하면서 조금 뭔가 멋진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무알콜 맥주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추천하겠다. 방은 어질러져 있고, 나는 안주로 와사비 아몬드 다섯알을 두고있으며 일기를 못쓰도록 방해하는 고양이도 옆에있다. 모든 게 아주 예술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진 않지만 하루키 에세이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하루키 에세이를 안 읽었지만 기분이 그렇다. 하루키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은 미도리였어야 한다고 믿고 그 외에는 하루키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다. 안 읽었으니까....


1. 소설 작업은 이렇게 되고 있다.


술 마시다 인대를 다치고 몇 달이 지났다. 내 소설은 이제야 초반부 작업중인데, 전과는 아주 다르다. 10만자 쓴 것을 엎었을 때는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뭘 써야 할지도 몰랐다. 이렇게 계속 덧붙여가봐야 커리어에 오점만 남고 망신만 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작업을 계속했다면 그랬을거다. 지금은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 길을 다 안다는 건 아니지만 방향을 알고 있다. 저기로 가면 목적지가 있다는 그 방향. 써봐야 알겠지만, 지금 내 이야기는 확장중이고 나는 이렇게 확장하는, 커다란 이야기를 처음쓰고 있어서 매우 즐겁다. 그냥 다 재밌다. 이것도 에피소드로 만들자! 저것도 만들자! 주인공을 그냥 가게 하지 말자! 목표가 있다면, 당연히 역경이 있어야 한다. 주인공이 다이아를 찾으러 갈 때, 그냥 우연히 길 가다 주워서는 재미가 없다. 주인공이 극단에 가고 싶다면, 바로 단장을 찾아가 오디션을 보고 합격을 하면... 재미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장편이 쓰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극단을 찾아갔는데, 단장이 애초에 지금은 사람을 안 뽑는다고 이야기를 해서 시무룩한 찰나에, 잡일이라도 시켜달라고 빌어서 잡일을 하다가 작은 역을 맡게 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너 같은 놈이 무슨 배우를 한다고 해! 라는 구박을 받고 쫒겨나서 여기저기 극단을 찾아다니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한 다음, 직접 1인극을 만들어서 야외 공연을 한다거나, 그런게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하지 소설은 다 그렇게 생겼잖아.’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야기를 만들때의 입장에서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2. 여성주의 영화 모임에 나가고 있다.


아주 좋다. 내가 선정한 영화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다른 분들은 재밌게 보기도 했고, 영화를 보는 관점이 사람마다 다른 것도 너무 재미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드시 이야기에 페미니즘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거나 소녀들의 귀감이 될만한 멋진 여성이 등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면, 이 남자가 엄청 잔인한 남자라고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남자가 애인을 가차없이 학대하거나, 성적 방종을 보여주기 위해서 멍청하고 헤실거리는 창녀가 등장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여성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반드시 금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변화된 시대에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그냥, 관객이나 독자를 더 늘리는 데 그 편이 좋다. 독자나 관객이 “아, 저런 사람이 어딨냐.”라고 생각하면 몰입이 깨지는 거니까. 여성관객과 남성관객이 반반이라고 쳤을때,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는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관습적으로 도구화되는 인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말 그런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거나 풍성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3. 작가 모임에 갔었다.

아주 재밌었다. 많은 사람과 친해졌다. 아주, 아주 신나게 놀았다. 7월 31일이었다. 아주아주 재밌었기 때문에 여기에 적어둔다. 스타일이 좋고, 작업물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는데 그렇게...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모옵시 허물없이...) 친해질 줄은 몰랐다. 굉장히 유쾌했다. 내 글을 읽은 분들도, 좋다고 말한 분도 있었고, 화기애애하고 아주 기뻤다. 좋았다.


4.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루틴을 되찾았다.


1번과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식사를 하고 씻고 산책을 다녀오는 루틴을 되찾았고, 하루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링피트를 하루에 30분씩 꾸준히 하고 있으며 글 역시 하루에 5000자 이상씩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해야지! 하면 바로 하는 법을 되찾았다. 여러번 말하지만 재능이 대단하지 않은 대신 성실하고 꾸준한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친 이후로 그걸 상실한 것 같아서 아주 우울했었다. 다리가 많이 나아졌는데도 나는 게으르고,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매일 게임이나 하고 별다른 일도 안했는지 못 했는지 아무튼 생산성이 매우매우 낮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잘 회복했다! 발목뿐 아니라 매일 성실하게 사는 것도!


고양이가 내가 여기 앉아서 일기쓰는 걸 정말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이만 줄인다. 일기보다는 고양이의 행복이 세 배 정도 중요하니까.... (발을 마구 물렸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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