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풀씨

살 판을 벌이는 질경이

by 이경아

밟아, 밟으라고.

제발 나를 밟고 가라니까.

소원이야. 나를 밟아 줘 제바알~~~~~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

흉내라도 내고 싶은데

태생이 쫄보인 나는 그게 참 어렵다.


그는 허허실실 넉살 좋고 성격 좋은 친구다.

그 친구가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피눈물 나는 분투?

아니, 그는 아예 싸우려 하지 않는다.

여느 풀처럼 쓰러 진 몸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도 없다.

그는 처음부터 누워 버렸다.

"배 째!"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배 째!" 하는 것은 절망 가득한 이들의

마지막 절규와도 같은 몸부림일 테지만

그의 그것은 고도의 전략이다.


"비키라고? 못 비켜."

"아, 몰라. 그냥 밟고 가."

하는 그가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다.

그 유쾌, 통쾌함에 덩달아 북이라도 치며 장단 맞추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이 풍진 세상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한바탕 신바람 나게 놀아 재낄까 보다.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질경이05_web.jpg <코튼지 위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풀,

혀를 내두르며 "참 질기네, 질겨"

하고 이름 지었을 질경이는 길가에서 자라는 풀 길경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수레바퀴 지나는 길에 자란다는 뜻의 차전초(車前草)라고도 부른단다.

이것 말고도 별칭이 참 많은 풀인데 대부분 '질기네'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잡초를 연구하는 미국 잡초학회에서는 "인류의 활동과 행복과 번영을 거스르거나 방해하는 모든 풀"을 잡초라 일컫는단다. 하... 참... 거창하게 써 놨지만 결국 인류의 이익에 반하는 풀은 그게 뭐든 잡초가 되는 거다. 폼나는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원하지 않는 곳에 나는 풀"은 모두 잡초인 셈이다.

이를테면 냉이밭의 냉이는 유용한 작물이지만 무밭의 냉이는 뽑아버려야 할 잡초다. 그러니 눈치껏 때와 장소를 가려 살아야 잡초 취급받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대단한 친구 질경이는 사람 많이 오가는 길가에 보란 듯 자리를 잡았다. 숨어 살아도 행여 눈에 띄면 뽑혀 나갈 판에 대놓고 사람들 오가는 길가에 살 판을 벌인 거다. 죽지 않고 살 그런 대단한 판 말이다. 그리고 제발 밟아라 통사정을 한다.

생김도 딱 밟기 좋게 둥글넓적하고 낭창낭창하게 생겼다. 신발에 진흙이라도 묻었다거나 하필 운 나쁘게 개똥이라도 밟았다면 눈에 띈 질경이가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쓰윽 문질러 닦기 좋게 생긴 풀이구나 하면서 주저함 없이 그 행위를 할 테니 말이다. 그뿐인가 쿵쿵 발을 굴러 마지막 남은 똥덩이를 털어내려 하는 행동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이때 별안간 똥 세례를 받게 된 풀 질경이에게 미안함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 때문에 풀 한 포기가 죽는구나 하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가 간절히 바라던 바다. 오히려 그는 당신의 그런 행위에 키득거리며 깊은 감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대단한 인간들을 향해 씨익 웃음을 날렸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다. 옛날, 힘없는 백성들이 탈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저잣거리에서 탈춤을 추며 높으신 분들을 한바탕 풍자하던 예의 그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


질경이07_web.jpg <코튼지 위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여러 해를 사는 그는 뿌리에서 뭉쳐 나온 줄기 없는 잎을 땅 가까이 넙데데한 방석 모양으로 밟히기 딱 좋게 펼친다. 대개의 경우 밟히면 찢어지기 십상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부들부들한 잎과는 다르게 일곱 줄기 안팎의 잎맥에는 탄력 좋은 질긴 실이 있어서 밟혀도 양분을 실어 나르는 그 맥이 무사할 뿐만 아니라 외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단다. 그러니 밟히는 것쯤은 대수가 아니란다.


그렇다고 굳이 밟히기 좋은 곳에 벌렁 누울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나의 물음에

"두고 보쇼, 다 계획이 있으니." 한다.


모든 생명의 꿈은 자기와 꼭 닮은 후손들을 많이 많이 퍼뜨리는 것일 테지. 그래서 질경이도 꽃을 피운다. 얼핏 저것도 꽃이야? 참 못났네 조롱할지도 모르겠다.

"곱고 향기 좋아야만 꽃일까? 누구 좋으라고?"

그가 씨익 웃는다.

특별한 향기는 없지만 높게 솟아 오른 줄기 빼곡하게 꽃을 피웠다. 향기 없는 꽃,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수정하는 그는 벌이나 곤충들의 힘을 빌지 않는다.

그 꽃 참 많기도 하다.

꽃을 한가득 매단 줄기는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밟히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솟아난 꽃줄기 역시 이를 피하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그는

"밟히면 까짓 껏 그냥 눕지 뭐! 그게 뭐 별거라고"

하며 짐짓 여유를 부린다.


"내 줄기 바깥쪽은 아주 단단하고 안쪽은 매우 유연하지. 그러니 밟혀도 끄떡없어."

질경이09_web.jpg <코튼지 위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유연한 줄기>
질경이06_web.jpg <연필과 수채화 물감, 질경이 꽃줄기로 하는 풀싸움>

꽃이 지고 나면 벼의 낟알보다 작은 초록색 열매가 그야말로 바글바글 달린다. 바야흐로 시월 지나 가을이 툭툭 자리를 털 무렵, 열매의 초록은 짙어져 밤색이 되는데 그의 대단한 설계의 정점이다.


"자, 이제 나를 마구마구 밟으라고. 추적추적 비라도 오면 더 좋다네."

아예 대 놓고 바람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유혹한다.

"허, 다 키운 열매들인데 또 밟히겠다고? 도대체 어쩔 심산이야?" 역시나 그는 다 계획이 있었다.


방추 모양의 열매는 허리 부분이 팍 터지면서 고깔 뚜껑이 저절로 열리는데, 그 안에 4~8개가량의 씨앗이 '언제 나갈까?' 올망졸망 기다리고 있다. 씨앗에는 젤리 같은 물질이 있어 물에 젖으면 어디든 잘 들러붙는다.

그래서 누구든 습기를 머금은 질경이를 밟으면 그의 씨앗들이 착 들러붙는다. 사람의 신발은 물론이고 동물의 발, 수레바퀴, 자전거바퀴 가리지 않는다. 스스로 이동할 수도 없고, 민들레처럼 바람 타고 날아갈 솜털도 없지만 그는 수레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때론 자동차를 타고 먼 곳까지 간다.


질경이01_web.jpg <코튼지 위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덜 여문 초록열매>
질경이03_web.jpg <손그림과 사진과의 합성>


질경이02_web.jpg <다 익은 열매, 실제로는 루페로 관찰한 것을 접사 촬영했다>
질경이04_web.jpg <루페로 관찰, 접사 촬영한 질경이 씨앗 차전자>

그도 양지바르고 풍요로운 땅에서 살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곳에는 그가 낄 틈이 없었을 것이다. 키 크고 강한 식물들이 그곳을 다 차지했을게다. 그래서 살겠다고 나선 곳이 죽기 딱 좋은 길가였겠지. 그럼에도 죽지 않고 자자손손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밟혀도 "허허" 웃을 수 있는 모나지 않고 낙천적인 성격 탓이 아니었을까? 내 맘대로 추측해 본다.


얼마 전 완성한 그림동화 더미북을 열몇 군데 출판사에 메일로 투고했다. 대부분은 받았는지 여부조차 아직 회신이 없는데 한 곳에서 출판 거절 의사를 표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게 그렇게 쉽나?' 끄덕였다. 하지만 몇 며칠을 아팠다. 나의 못남을 자책했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그들을 원망했다. 막막해졌다. 콩닥콩닥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했다. 그때 내 친구 질경이가 생각났다. 그 덕분에 지금은 웃는다. '에잇, 밟아! 난, 더 단단해질 거야.'


몇 해나 살까? 아무튼 여러 해를 사는 그는 땅속 깊숙이 뿌리를 박고 황새냉이가 그랬듯 잎을 땅에 바짝 붙여 추운 겨울을 견딜 것이다. 이듬해 다시 찾아 올 찬란한 봄볕을 그리면서.

그때는 내가 그와 조금 더 닮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 척박한 곳에서의 고통을 피하려 애쓰지 않았던 탓일까? 질경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약재로 쓰인다. 봄의 부드러운 잎은 나물로도 먹고, 뿌리와 씨앗 그리고 씨앗 껍질까지 유용한 약재이다.

그래서 잡초지만 우리를 이롭게 하는 귀한 식물이다.

부디 지나는 길에 저의 친구 질경이가 보이거든 사뿐히 즈려밟아 인사 건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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