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으로 성공하는 비결?

걸으니 길이더라

by 이경아

성공하는 비결?

국제적으로 성공하는 비결?

어마어마 하지?

왜, 구미가 확! 당기니?

그럼, 한번 들어볼래?


그 시절이 이렇게 끝날 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좋은 때라 여겨 전심을 다해 부렸던 욕심이다. 어디까지 오르고 어디까지 뻗을 수 있을까? 내 세상 내 왕국 힘껏 펼치고 싶지만, 저무는 시간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몸뚱이들이 치렁치렁 지녔던 것을 망설임 없이 떨어내는 가을이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를 음미하듯 잎끝을 살짝 비틀어 말며, 휑한 밤 밝히는 하얀 달을 응시하는 한 줌의 그가 참으로 비장하다.

"이제는 저 달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인가?"

바싹 마른 낙엽이 소슬한 바람에 몸을 맡겨 땅을 긁는 소리를 내며 그의 주변을 뒹군다.

"너 홀로 갖었던 달빛 내게 주는구나.

햇빛 역시 내게 주겠지"

그가 웃었다. 그러자 품었던 꽃이 파르르 떨렸다.

벚나무 아래 낙엽들 사이 새포아풀이 자랐다. 황새냉이도 겨울 채비 중이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곁을 스칠 듯 가까이 늘어 선 벚나무들과 마주했다. 그들은 내게 꽃피는 봄 찾아 소풍 나서는 수고하지 않아도, 옅은 분홍색 살짝 찍어 바른 꽃잎이 봄날의 함박눈이 되어 날리는 꽃길을 내어주었다. 그 봄에 취하느라, 나무 아래 꽃 진 자리 꽃 무덤 속 다른 생명이 있을 줄은 몰랐다. 꽃지고 난 후에도 알알이 맺힌 초록 열매 버찌만을 바라보았고, 이윽고 까맣게 익어 떨어져 길바닥을 뒹굴면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걸었을 뿐이다. 묵직한 더위가 버거울 때는 햇빛이 투과되어 반쯤은 투명해진 맑고 보드라운 초록과, 뾰족뾰족 톱니가 재밌는 잎의 생김, 그리고 그 잎을 가르는 잎맥의 모양을 즐기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아니어도 빨갛게 물드는 재주가 있어 또 나는 홀리고 말았다. 그래서 숨죽여 때를 기다렸던 생명이 고개 드는 것을 여전히 몰랐다. 바스러지는 낙엽이 바닥을 뒹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았다. 그 생경한 초록을. 천지가 울긋불긋 여울지는 지금에는 억센 풀조차 한 마음으로 붉게 가을을 태운다. 그런데 한 줌 못 미치는 작은 풀 한 포기가 갓 태어난 것처럼 파릇파릇 어리다.

"풀, 잡초잖아. 아~ 혹시 잔디야?"

그를 아느냐 물으면 누구든 그렇게 답할 것이다. 주변의 누렇게 뜬 풀들과 사뭇 다른 모습에 갸우뚱하겠지만, 어디선가 잔디 씨앗이 날아와 자리 잡았구나 할 것이다. 며칠을 그 앞을 오며 가며 들여다보았다. 연한 초록색 말고 희끄무레한 뭔가가 흔들렸다.

뭐지?

눈을 비볐다. 노안이다.

다초점렌즈를 끼기는 했지만 도통 흐릿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확대해 보니 꽃인가 보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 모양이 좀 그랬으니까.

새포아풀02.jpg 2mm 남짓의 이삭 모양의 열매는 씨앗이 된다.

그의 이름은 "새포아풀"

이름이 참 앙증맞다.

학명은 "poa annua", 포아는 '초원의 풀, 목초'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앤누아는 라틴어로 '1년간'을 뜻한단다. 정리하면 '일 년생 초원풀'이라 하겠다. 한때 이른 봄, 가축의 고픈 배를 달래주었던 유럽에서 귀화한 식물이다. 새포아풀의 '새'는 작고 보잘것없다는 의미로 붙인 접두사라 한다. '개꾸레미풀', '새꿰미풀'이라는 우리말 별칭이 있기는 하지만, 식물도감 등에서 그를 찾으려면 '새포아풀'이라 불러야 한다. 포아라는 단어의 어감이 이뻐서 그렇지, 알고 보니 이름부터가 그를 업신여긴다. 누구든 '세포아풀'을 검색해 보면 그의 처지를 알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를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아니면 그가 얼마나 독한지를 온 세상에 알리려는 내용으로 빼곡하다. 그러니까 그는 잡초 중의 잡초인 거다. 못 되고 독한 놈, 온통 해악을 끼치는 놈이 벚나무 아래는 물론 고양이들 챙기러 가는 길목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저 놈하고는 친구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조막만 한 풀포기가 자꾸 눈에 밟혔다. 내 살아낸 시간이 있는데, 남 말만 듣고 덩달아 얕보면 안 되지 싶어 조금 더 그를 알아보자 했다.


꽃도 있는 것 같던데 그렇담 꽃말도 있을까?

허걱! 이렇게 거창할 필요가?

"성공하는 비결, 국제적으로 성공하는 비결"

그렇다. 그의 꽃말이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가슴이 웅장해지는 꽃말을 알게 되니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뭐가 성공이라는 거지?

비결은 또 뭐야?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새포아풀_web07.jpg
새포아풀_web06.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으로 그리고 루페로 확대한 꽃과 열매를 촬영해 합성함>

그는 농부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골프장 주인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골프장 주인은 언제쯤 그를 완전 박멸할 수 있을까, 오매불망 바라고 또 바란다지. 애지중지 가꾸는 잔디 사이사이 파고든 그를 골프장 주인은 눈치채지 못하다가 꽃 필 무렵에야 잔디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단다. 마치 뻐꾸기가 탁란 한 것을 모르고 제 알인양 밥 굶어가며 정성껏 품던 유모새의 심정이랄까? 심지어 주기적으로 잔디 깎는 것을 눈치채고 아예 깎이지 않을 만큼만 자란다니 잔디 보기에도 밉상이다. 여건이 되면 발아해서 꽃피고 씨앗 맺기까지 6주면 충분한 그가 퍼뜨리는 엄청난 씨앗의 수에 한껏 예민해진 잔디만 또 곤혹스럽다. 그러니 골프장 주인은 매일매일 칼춤을 추고 싶겠지. 저렇게까지 밉보여 살면 어쩌누 싶은데 이것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첫 번째 비결이다.

새포아풀_web05.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그렇게 헷갈릴 거면 공들여 가꿔야 하는 잔디 말고 새포아풀로 대신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럴 수 없다는데, 특히 새포아풀에게는 고온 다습한 여름이 쥐약인지라 여름병해균에 노출되면 뿌리도 잎도 다 썩어 문드러져 결국 잔디밭 전체를 해롭게 한다지. 드물게 새포아풀이 잔디를 대신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겨울이 되면 잔디는 누렇게 마른다.

그래서 겨울에 파릇파릇한 새포아풀이 아쉽다는데,

이것이 그에게 국제적인 성공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또 다른 비결이다.

새포아풀_web04.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늦가을에 싹을 내는 새포아풀은 푸른 상태로 겨울을 나고, 초봄 누구보다 빠르게 자라 여름보다 앞서 꽃을 피워 씨앗을 맺으면 한해살이로써의 운명을 다한다.

'왜 여름이 아니고 겨울일까? 다 같이 푸르지 않고 홀로 푸른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다.

서늘한 달빛에 파르르 떨던 그가 말했다.

"나는 말이지, 여름까지 살아남을 계획이 아예 없어. 어떻게 하면 죽기 전에 많은 씨앗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관심사야."

"그러기엔 여름이 더 낫지 않니? 다들 그렇게 살던데."

"그렇지, 다들 여름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모두가 여름에 몰리는 거야. 그런데 그게 문제야. 경쟁해야 하잖아."

"그렇지만 겨울은 너무 추운데..."

갸웃거리는 나를 보며 그가 배시시 웃었다.

마치, 요건 몰랐지? 하는 표정이다.

"잘 생각해 봐, 네 말처럼 겨울은 너무 추워. 그래서 아무도 없어. 설령 있다고 해도 아주 적어. 경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적다고."

"옳거니! 그거였구나."


겨울은 새포아풀 홀로 자라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햇빛을 가리는 나뭇잎이나 키 큰 풀도 없다.

뿌리내리려 비좁은 땅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나누기엔 부족하겠지만 모두 그의 차지니 양분도 그만하면 충분하다. 이른바 레드오션 대신에 블루오션을 택한 것이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도 춥다는 것, 자칫 그의 뿌리가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가 찾은 방법은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 것이다. 눈 밑에 숨어 있는 미세하지만 따뜻한 층을 찾아내고, 햇빛을 받은 지면의 열을 이용해 겨울을 버틴다. 또한 그 스스로 겨울이 가까워지면 탈수를 막아주는 단백질이나, 추위에 견디는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가 얼어 죽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성공하는 두 번째 비결은 치열한 경쟁을 피한 것이다. 물론 경쟁 없는 곳이라고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피 터지게 싸우느라 아예 싹조차 틔우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끼리끼리 싸우는 것보다 환경을 극복하는 쪽이 훨씬 나았던 거겠지.


게다가 그는 부지런해서 지독한 여름만 아니라면 일 년에 몇 번이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땅 위에 떨군다. 그래서 이제 막 싹을 올릴 참이던 늦가을, 내가 그의 꽃을 볼 수 있었던 거지. 한 해 살이 풀이지만 더러 4년을 거뜬히 살기도 한다. 이제 그 없는 나라는 없다. 세계 곳곳에 그가 퍼져있다.

새포아풀_고독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장자의 "도행지이성 (道行之而成)",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야 길이다.

장자의 깨달음을 그도 깨달았던 것일까? 살 길을 여름이 아닌 겨울에서 찾았던 그를 보며 생각했다.

걸으니 길이더라.


역시나 지독한 놈이었구나.

맞다. 그렇다고 마냥 밉지는 않다.

당장 우리가 그를 먹거나 할 수는 없지만 생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식물이다. 그가 남기는 수많은 씨앗은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그의 뿌리 주변에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저마다의 생태를 꾸리며 살아간다고 한다. 엄청나게 빨리 자랄 수 있는 그의 능력으로 벌거벗은 땅을 빠르게 덮어 흙의 유실을 막는다. 또한 토양의 건강을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지표 식물이기도 해서 질소 많은 토양, 습한 토양을 찾아내 알려준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전 세계의 골프장이며 운동장이며 사람들이 애써 가꾸는 녹지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며 식물생태, 잔디과학, 잡초학 분야의 둘째가라면 서러운 핵심 연구 대상 식물이 되었다.

새포아풀_web03.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 물감>

불량식품 같은 친구, 사람에게는 괘씸하지만 그는 아무 죄가 없다. 애초에 길이 아니었던 곳을 꾸준히 걸어 반질반질한 길을 낸 기특한 친구다. 영하 15도의 추위와 마주할 결심을 한 네 용기가 참 대단하다. 작은 몸으로 치열하게 살았구나.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슬며시 손 내밀어 본다.

"너도 나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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