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우기지 마오
옛날 옛날 어느 산골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대. 대장장이의 큰딸은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산으로 들로 쑥을 캐러 다녔다지. 그래서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쑥 캐러 다니는 불쟁이의 딸, 쑥부쟁이'라 불렸대.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쑥을 캐고 있었어. 그때 멀리 사냥꾼에게 쫓기는 가엾은 노루가 보이잖아.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어. 때마침 가을이라 무성해진 쑥 덤불 속에 노루를 숨겨 주었지. 물론 다친 상처도 살펴 주었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산짐승 잡으려 파 놓은 깊은 함정에 빠진 젊은 사냥꾼을 구하게 되었는데,
아 글쎄! 훤칠한 청년이었다지 뭐야. 서로가 한눈에 반했겠지? 그래서 사랑을 약속했어. 그런데 청년은 돌연, 내년 가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훌쩍 떠났대. 그 약속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디 그게 생각처럼 되나?
시간은 어째 그리 더디 가는 것일까? 멈춰버린 줄로만 알았던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여름 지나더니 드디어 가을이야. 콩닥콩닥 뛰는 가슴 두 손으로 부여잡고, 그가 올 길목을 매일매일 지켰어. 어제가 아니라면 오늘은 오겠지.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어. 그렇담 내일은 오겠지. 아니, 오지 않았어. 무슨 일이 생겼을까? 누구라도 그 대신 보내어 "좀 늦으니 기다려 주오." 하는 소식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반드시 돌아오마.' 굳게 약속했던 그 가을은 영영 가버렸고, 야속하게도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이 왔더래. 그때라도 마음을 접었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대.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내년 가을에는 꼭 올 거야." 부질없는 믿음에 의지한 채 또 기다렸지만 역시나 그는 오지 않았어. 다시 또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
뭐라도 해야겠구나 싶어서 쑥부쟁이는 매일 빌었다지. "제발 만나게 해 주세요." 오! 세상에, 정말로 산신령이 그녀 앞에 떡 하니 나타난 거야. 몇 해전 구해 주었던 노루, 알고 보니 그가 산신령이었대. 소원을 들어달라는 그녀에게 산신령은 구슬 세 개를 주더래. 다들 눈치챘겠지? 이 이야기의 끝을 말이야. 꼭 이런 식이야. 목숨 구해주었더니 들어 달라는 소원 즉시 들어주지 않고 수수께끼처럼 구슬 세 개가 뭐야? 말로는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하는데...
하지만 우리의 쑥부쟁이는 아무런 불평이 없어. 그저 하라는 대로 첫 번째 구슬을 입에 넣고 소원을 빌었어. "병든 우리 엄마 낫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야. 짜잔! 소원이 이루어졌지. 그리고 두 번째 구슬을 입에 넣고 간절하게 빌었대. "만나게 해 주세요." 말 끝나기가 무섭게 몇 해를 기다려도 오지 않던 그가 와 있더래. 이 정도의 효험이면 노루 열이 아니라 백이라도 구해주어야겠구나 하며 기뻐하는 것도 잠시, 세상에나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거야. 쑥부쟁이가 애 태우며 그만을 기다리던 때 그는 다른 여인을 품었고 아이를 낳아 잘 먹고 잘 살았더래. 나쁜 놈! 이를 어쩌나, 착하디 착한 쑥부쟁이는 세 번째 구슬을 입에 넣고 "아이고, 아이고..." 눈물 철철 흘리면서 마지막 소원을 빌었지. "저 사람을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려보내주세요."라고 말이야.
그렇게 그놈을 보냈어. 그럼 그때라도 정신 차렸어야지. 안타깝게도 휑 뚫린 가슴이 뭘 해도 채워지지 않더래. 안될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보고 싶은 거야. 차라리 그저 기다릴걸. 그리움일까? 원망일까? 혹시나 사냥꾼인 그를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을까? 가을이면 찬서리 맞으며 산속을 헤맸대. 그날도 그랬을 거야. 때 이른 폭설로 묻혀 버린 길을 헤치며 산으로 향하던 참이었을 거야. 잠시 고개 들어 어디로 가야 할까 살피던 그때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졌는데 하필 그곳이 절벽이야.
이듬해 가을, 절벽 아래 쑥부쟁이 죽은 자리에 꽃이 피었더래. 쑥부쟁이꽃, 가을 내내 연한 보라색 꽃잎을 활짝 펼쳐 흔들며 '오늘은 오려나?' 기다리겠지. 차가운 서리도 피하지 않고 가을 끝자락까지 버티는 꽃이야.
지난 11월 25일, 밤 새 차가운 비가 내렸다. 비 그치고 나니 추위가 급하게 밀려든다. 그래서 다음 날 옆 동 화단에 초대받지 않고도 스스로 군락을 이뤄 살고 있는 쑥부쟁이에게 가 보았다. 십여 일 전 살핀 이후로 처음이다. 꽃이 졌다. "그래, 이제는 춥다. 그만하거라. 내년 가을에 보자꾸나."하고 돌아섰다. 이미 글러먹은 사랑인데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슬피 울다 지는 꽃이다.
가을, 들판이며 산자락 여기저기 아련하게 손짓하는 들국화 쑥부쟁이꽃에 얽힌 이야기를 내 멋대로 한껏 부풀려 여기저기 소문내어 보련다. 험한 소리 못하는 쑥부쟁이를 대신에 '나쁜 놈, 발 병이나 나라'하고 욕도 해주련다. 보일 듯 말 듯 연한 보라색을 입은 이 꽃의 꽃말이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이 꽃을 보면서 나는 다소 억지스럽게도 데이지가 생각났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귀여운 데이지꽃은 유럽에서 유래된 곱게 가꿔 키워지는 국화이다. 스스로 살아내는 들국화 쑥부쟁이는 데이지보다 조금 작고 꽃잎의 색이 도드라지지 않는 부드러운 보라색이다. 사실 데이지꽃을 떠올린 데에는 꽃 그 자체와는 무관하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했던 것이다. 개츠비의 글러먹은 위대한 사랑의 대상이 바로 '데이지'였다. 피츠제럴드가 데이지 꽃을 염두에 둔 작명이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하지만 쑥부쟁이의 대책 없는 사랑과 게츠비의 처절한 사랑이 서로 닮아 보였다.
별 볼일 없는 집안의 개츠비가 제법 명문인 집안의 딸 데이지를 만나 불안한 약속을 한다. 미래를 함께 하자고. 흔히 그렇듯 게츠비는 그 약속을 믿었고 데이지는 영원히 풍요롭고 화려한 삶을 보장해 줄 새로운 사랑을 만나 떠났다. 어디 그뿐인가. 아예 잊었다.
이렇게 원망이나 하고 말 것을 꾸역꾸역 성공한 개츠비는 데이지네 집 잔교 끝 초록색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는 곳에 푸른 잔디를 펼치고, 데이지가 그토록 사랑하는 화려한 저택을 지어 그녀를 불렀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하며 흐느끼던 그녀. "너무 슬퍼, 한 번도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은 본 적이 없거든." 그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데이지가 사랑한 것의 실체를. 어쩌면 개츠비도 알았겠다. 그래서 자꾸만 화려한 파티, 화려한 저택, 멋진 자동차로 그녀를 불러들였는지도 모르지.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아비가 된 훤칠한 사냥꾼과의 빛바랜 약속을 사랑이라 믿어 반쯤 미친 채 산을 헤매는 쑥부쟁이나 허영 덩어리 데이지를 사랑하느라 인생의 모든 것을 건 개츠비, 그 둘 다 스스로 지어낸 허상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자신의 사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사랑이라 억지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느라 돌이킬 수 없는 수렁을 향해 제 발로 걷고 있음을 몰랐을 것이다.
비극이라 해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었더라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변절했더라도 다시 돌이킨 심순애와 그녀를 받아 준 이수일의 순애보였더라면 '아~ 눈물겨운 아름다운 사랑이야' 했을 테지만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아서라, 그래서는 안 되는 거란다.
혹시라도 살다가 이런 사랑을 하게 된다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내쳐버리고 다시는 돌아보지도 기다리지도 말기를...
이야기야 지어낸 것이겠지만 여러 해를 사는 들국화 쑥부쟁이는 가을의 마지막을 지키는 꽃임은 분명하다.
가을 깊어 소슬해진 들판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보랏빛 꽃을 보며 '들판이 밤을 무서워하지 않도록 남겨둔 등불'이라 했다지. 그래서 옛 농부들은 쑥부쟁이를 보며 계절을 읽었다고 한다. 꽃이 지면 '곧 겨울이구나, 그러니 수확을 서두르자' 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다. 현대인은 없는 것처럼 잊고 사는 자연을 그들은 매일 귀 기울여 살았구나.
바로 옆동에 군락을 이뤄 살 정도면 한 두 해를 산 것이 아닐 텐데, 올 가을에야 제대로 보았다. 개망초와 헷갈렸다 변명하기엔 꽃의 크기나 색깔이 달라 궁색하다. 헷갈린 것은 단 한순간도 실재한 적 없는 AI도 마찬가지였다. 벌개미취라고 했다가 구절초라고도 했다가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내어 놓는 답이 달랐다. 식물도감 여러 권을 펼쳐 생김에 관한 설명을 읽고 내가 찍어 온 사진과 비교했다. 잎이며 줄기를 만져 잔털이 있는지의 유무도 살폈다. 꽃잎의 개수도 세어볼까 하다가 이는 한 가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기에 그만두었다. 대단한 연구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요란스럽게 알아낸 것이 고작 풀이름 "쑥부쟁이"이다.
기어이 알아냈구나. 스스로 기특해하기에는 다소 부끄러웠다. 만약 동네 어르신께 여쭈었더라면 금세 답을 주셨을 터다. 학교 다니며 공부한 것도, 평생 배워야지 하며 글자 파 먹은 것도 별거 아니다. 글로 배우지 않아도 그분들은 몸으로 아는 것을 책 쌓아놓고도 어려웠다.
무식한 놈이로구나.
시인의 꾸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한 술 더 떠, 나는 구별은커녕 아예 몰랐으니 이를 어쩐담. 나의 무식을 반성한다.
풀, 그들의 시간이 길어봤자 여러 해이겠지만 우리와 다름없이 삶과 죽음이 분명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공들여 산다. 조용히 읊조리는 그들의 소리를 옛사람은 들으며 살았지만, 스스로 지성을 갖춘 현대인이라 우쭐하는 나는 귀를 닫고 없는 셈 치고 살았나 보다. 어르신들이 눈을 흘긴다.
"뭐 그리 대단하게 산다고 한 데 어울려 살지 외면하고 살아?"
동네 꼬마가 "저 풀이름은 뭐예요? 저 꽃은요?"하고 물으면 나도 거침없이 답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 전달자가 되어서 풀이 전하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다.
더는 늦가을이라고 우길 수 없는 오늘, 채 떨구지 못한 씨앗만 움켜쥐고 있는 쑥부쟁이에게 약속을 했다.
"내년에 꼭 너에게 갈 거야. 네가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잘 알고 있단다. 그러니 겨울이 너무 춥다 타박하지 마라. 스러진 땅 위 줄기는 잊고 땅 속 뿌리에 기대어 봄을 기다리렴. 내년 가을에 필 꽃은 물론이고 그 보다 먼저 봄을 맞아 돋아 날 새싹조차 반겨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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