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촌스런 이름 아니고

왕 큰 모성애

by 이경아

"퉤퉤, 못 먹을 것을 먹었군."

팥중이가 우거진 수풀에서 파닥파닥 튀어나오며 투덜거렸다.

"으웩, 귀띔이라도 해주면 좀 좋아."

뒤따르던 콩중이가 콩콩콩 팥중이와 반대쪽으로 뛰었다.

그 꼴을 보고 풀숲 밑에서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 나오며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이것을 먹으려 들다니. 다닥다닥 꽃핀 것을 보지도 못했나?"

등에 진 제 집에서 목을 쭈욱 뽑아내 키 큰 풀을 올려다보며 부르르 떤다.

"으으, 너무 끔찍했어."

그리고는 이내 더듬이를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사실 그도 진즉에 맛을 봤던 것이다. 키 큰 풀의 쓴맛을.

잠시 후 크게 숨을 몰아 쉬는 소리가 들렸다.

"휴우, 살았다. 초여름 가뭄만 아니었어도 좀 수월했을 텐데. 괜찮아,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야. 곧 다 끝날 거야. 내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뭐."


왕고들빼기01_web.jpg <2025년 10월 24일, 왕고들빼기의 크고 갈라진 밑잎, 줄기잎은 갈라짐이 약하다>


몇 해전, 거실 베란다 창밖 화단에 핀, 십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연한 노란색 작은 꽃을 보았다. 자귀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산수유나무가 차지하고 남은 자리에는 개망초꽃이 하얗게 떼 지어 피었더랬다. 그 틈을 비집고 솟은 딱 한 송이, 바나나우유 색깔의 꽃이어서 눈에 띄었다. 며칠을 집안에서 창을 사이로 두고 그 꽃을 살폈다. 무슨 꽃일까? 까불까불 발랄한 개망초와는 다르게 순하고 무던해 보였다. 안 되겠다. 직접 봐야지. 마음먹고 집밖으로 나갔다. 창문과 접한 화단이지만 창을 열고 바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일부러 그쪽으로 걸음해야 했다. 집 안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화단은 잡풀로 무성했다. 하긴 여름과 가을이 비킬 수 없다 서로 으름장을 놓던 때였으니까. 혹시라도 운동화 신은 발에 풀이 꺾일까 걱정되어 성긴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우리 집 창 밑까지 걷고서야 그 꽃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까탈 부릴 거 같지는 않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의 꽃이었다. 허... 이것 참... 잡초? 하지만 정갈한 매무새가 마음에 걸렸다. 들꽃인가? 퉁치기에는 성의 없는 것 같아 미안했다. 다행히 그때도 '꽃 검색'이라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틀려서 옳은 답을 얻기 위해 시간을 더 많이 들여야 했다. 그런데 웬 걸? 이 꽃은 단박에 알아맞히더라. 내어 놓은 답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확인 차 검색해 봐도 내 앞의 꽃과 다름없었다. "왕고들빼기" 생김과 다른 느낌의 이름이라 웃기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내심 고상한 이름을 기대했었나 보다. 고들빼기나물은 익히 알고 있다. 제법 쓴 나물인데 나는 그 쓴맛이 좋아 자주 즐겼다. 김치를 담가도 맛있다. 소금물로 쓴 맛을 일부 다독여 담근 칼칼한 아린 맛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꽃이 고들빼기 꽃일 줄이야. 그것도 왕고들빼기란다.

왕 촌스런 이름이다.


왕고들빼기02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그리고 얼마 전 10월, 우리 아파트의 풀들과 친구 맺기로 하고 살피던 중 그를 다시 만났다. 바로 알겠더라.

"너를 여기서 또 보는구나, 왕고들빼기." 놀리듯 그를 불렀다. 이미 그를 잘 알고 있다 여겼기에 사진만 찍었을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 저물어 갔다. 그의 바나나우유 색깔 꽃들도 볼 때마다 하나 둘 시들더니, 어느 날 꽃 저문 자리에 민들레 솜털 같은 폭신한 하얀 털이 보송보송 달렸다. "너도 바람에 씨앗을 날려 보내니?" 아뿔싸, 친구라더니 헛말이었네. 먹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너와 나의 첫날이야.


"고들빼기"라는 말은 '쓴맛 나는 뿌리 나물'이라는 '고돌채(苦葖菜)'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쓴 차를 품고 있다는 '고도(苦荼-씀바귀 도)박이'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왕고들빼기 역시 고들빼기와 다르지 않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종이다. 둘 다 '국화과'의 풀이지만 고들빼기는 '고들빼기속'의 식물이고 왕고들빼기는 '상추속'의 식물이다. 그러니까 왕고들빼기는 상추와 사촌이라 할 수 있겠다. 꽃 피는 시기도 달라서 고들빼기가 4월에서 7월 사이인 반면, 왕고들빼기는 대체로 7월부터 늦가을까지다. 그렇다고 닮은 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둘 다 월동을 하는 것도 비슷하고 쓴 맛조차 서로 닮았다. 오히려 고들빼기가 왕고들빼기보다 더 쓰단다. 굳이 '왕'자를 붙여 구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를 자주 찾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보송보송한 솜털에 까만 씨앗을 매달아 바람에 날리는 것에만 집중하던 그가 드디어 내게 말을 건넸다.

"다 끝났어. 다 이룬 거야."

내 키에 조금 못 미치게 껑충 키만 큰 그는 금방이라도 풀썩 쓰러질 것 같았다.

"내가 삶을 시작한 때가 작년 이맘때부터였을 거야. "

그가 크고 긴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홀가분하다. 가벼워. 하긴 내 속을 다 비웠으니까."

"무슨 일이야?"

"나에게는 기회가 딱 한 번뿐이거든. 여러 해를 사는 고들빼기는 올해가 여의치 않으면 내년을 기약할 수도 있을 테지만."

푸념하듯 말하는 그 옆에 앉았다.

"내가 고들빼기였으면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이토록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그에게는 사는 내내 기회가 있단 말이야. 사는 내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를 보면서 손수건 챙겨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 끝날 때가 되니까 독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스치는 것 같아."

휘청하는 그를 붙들었다. 그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서 꼭 그래야 한다.


왕고들빼기05_web.jpg <2025년 12월 13일의 그는 곧 쓰러질 것 같았다>


늦가을부터 삶을 시작하는 나는 시작부터 바빠. 부지런히 싹을 내야 곧 닥쳐 올 추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야. 운이 좋아 너른 들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면 모를까,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척박하거나 경쟁이 심한 곳이라면 더욱 마음이 급해. 얇고 길쭉한 잎을 방사형(로제트)으로 펼쳐 땅을 덮고 잔뜩 웅크려 겨울을 버틸 채비를 해야 하거든. 먹을 것 없는 겨울이라 내 몸뚱이를 탐내는 이들도 많아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쓴맛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아.


"뭐 하러 그렇게 서둘러? 따뜻한 봄부터 시작하지 그랬어?"


내 이야기를 잘 들어 봐. 고통스럽더라도 겨울을 잘 견딜 수 있다면 봄이 왔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나설 수 있어. 봄이구나 싶어 싹을 틔웠다가 봄 가뭄이라도 겪게 된다면 낭패거든. 뿌리가 약해서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가을부터 시작하는 거야.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했던 로제트 잎은 봄이 오자마자 미련 없이 떨궈낼 거야. 겨울을 살게 해 준 고마운 잎이지만 아직 헤쳐야 할 고난이 많기에 소용이 다 한 잎과 함께 할 수는 없어. 대신에 보다 크고 넓은 새로운 로제트 잎을 태양을 향해 활짝 펼쳐 올릴 거야. 뿌리는 더욱 크고 단단해지고 더 많은 양분을 비축할 수 있어. 그래서 봄 가뭄이 닥쳐도 끄떡없지. 봄볕이라고 서두르면 안 돼. 물론 한가해서도 안되고. 오로지 높은 도약을 위해 낮은 자세로 바쁘게 준비할 뿐이야.


"그러면 깊게 갈라진 큰 잎을 만드는 것도 그때 하는 일이야?"


그래, 맞아. 있잖아, 나는 제법 크게 자랄 수 있어. 어쩌면 너보다 더. 빽빽한 수풀 속에서는 빛을 받기도 어렵고 꿀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열매조차 맺지 못하겠지? 너무 슬픈 일이야. 그래서 가능한 하늘 높이 솟아야 해. 훗날 내 아이들을 안전하게 날려 보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만 해. 그렇다고 마냥 키를 키울 수만은 없어. 자칫 쓰러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높아질 나를 밑에서 안전하게 받쳐줄 무언가가 필요해. 그게 뾰족뾰족 깊게 갈라진 밑잎이야. 둥글넓적한 잎이 아니라 갈라진 잎은 여러모로 나에게 유용해. 바람에 쉽게 찢어지지도 않고, 빛을 혼자 독점하지도 않아. 갈라진 틈으로 다른 잎들도 빛이 주는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지. 또 빗물이 고이게 되는 일도 없어서 잎이 썩지 않아. 자연히 곰팡이로부터의 위험도 막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여러 갈래로 갈라진 탓에 밟혀도 상처를 덜 입어. 나를 많은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고마운 잎이야. 이 잎이 튼튼하게 나를 받쳐 주는 덕택에 나는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높고도 거침없이 솟구쳐 오를 수 있는 거야.


"너는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철 내내 준비만 하는구나?"


네 물음은 마치 내가 망설이기만 하는 소심한 겁쟁이라고 힐난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왕고들빼기03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우리가 지켜줄게, 넌 쉬어>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 하지만 일단 부딪혀 대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내 꽃말이 "모성애"라고 하더라.

딱 들어맞는 표현인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내 새끼들이야. 나는 내 아이들이 무사히 독립할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살아내지. 그 뒤에 남는 것이 나의 소멸이라 할지라도. 그러니 철저할 수밖에.

밤바람조차 훈훈한 때가 오면 본격적으로 줄기를 세울 거야. 나는 한낱 풀에 불과하지만 2m 가까이도 자랄 수 있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에너지 때문에 가능한 거지. 고들빼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게다가 나를 지킬 강력한 도구도 가지고 있어. 대롱처럼 텅 비어 있는 나의 줄기를 따라 하얀 유즙이 흘러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거든. 이 즙은 내 몸의 상처를 낫게 할 뿐 아니라 나를 해치려는 작은 곤충들에게는 기분 나쁜 끈적끈적한 독일 수도 있어. 그들이 내 잎을 한 입 베어 물면 쓴 맛에 놀랄 테고 끈적한 유즙의 아린 맛에 입과 턱이 마비되는 것 같을 거야. 다시는 먹으려 들지 않겠지. 하지만 세상에 거저는 없어. 대신에 나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하거든. 그래서 아무 때나 이 방법을 쓸 수는 없는 거야. 가뭄이 들어 궁핍한 곤충들이 극성일 때는 높이 자라는 것을 일부 포기하고서라도 더욱더 쓴 물질과 더 끈적한 유즙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해. 내가 살아야 내 자식들도 살게 될 테니까. 그리고 내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꽃이 필 때가 되면 절정에 다다르게 되지. 그래서 모든 힘을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위해 나의 든든한 버팀이었던 밑잎까지 떨궈 내.


왕고들빼기04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우리 아빠도 쓴맛이 날까?>


"그러다 꿀벌조차 너를 피하면 어쩌려고?"


아, 그건 걱정하지 마. 꿀벌이나 파리, 수분을 돕는 작은 곤충들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들을 위해 달콤한 꿀과 기분 좋은 향기를 항상 넉넉하게 준비하거든.


그가 또 휘청였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그의 마른 몸뚱이는 누워야 할 것만 같은데, 마저 보내지 못한 씨앗들이 못내 아쉬운가 보다. 12월, 밤은 빨리 찾아들고 오래 머문다. 그 사이 첫눈이었던 폭설에 덮이기도 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아래 수북이 쌓인 낙엽을 걷어내자, 멀리 가지 못한 그의 씨앗들이 어느새 삶을 꾸리고 있었다. 그의 어미가 그러했듯이 몸을 낮춰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얇고 부드러운, 설핏, 홍조를 띤 로제트 형태를 이루었더랬다. 돌아오는 길, 그가 보내지 못한 씨앗을 품고 있을 호리병 모양의 총포 두 개를 조심스럽게 따서 손에 쥐었다.


국화과의 왕고들빼기는 국화꽃의 특징을 그대로 빼었다. 한 송이라 여겼던 그 꽃은 스무 송이는 족히 되는 꽃다발이었다. 도감에 쓰인 '머리모양꽃차례' 또는 '두상꽃차례'는 이를 뜻하는 것이다. 꽃잎 하나와 암술대 주위를 원통형으로 둘러싼 5개의 수술이 한 송이 꽃이다. 이런 꽃이 자그마치 스무 송이 넘게 모여 내가 보았던 그 꽃 하나를 이룬다. 셈이 약았다. 작은 꽃보다 큰 꽃이 유리한 줄 알았던 것이다. 스무 개의 꽃이 모두 수분을 하게 된다면 스무 개의 열매를 맺는다. 그토록 원하던 열매가 잘 여물어 바람에 날려 보내야 하는 그때가 되면 그는 마지막 남은 것조차 자식들에게 내어 준다. 꽃받침이 변형된 관모가 그것이다. 처음의 그 모습은 그저 가늘고 길기만 할 뿐인데 이것이 민들레 솜털처럼 방사형으로 퍼진다. 그 끝에 매달린 열매가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제 어미로부터 멀리멀리 삶을 찾아 떠난다. 어미가 주는 날개인 셈이다. 거칠고 고된 삶이라 타박하지 않는다 했다. 그저 제 자식들을 품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무사히 떠나보낼 수 있어 기뻤다 했다. 하얗게 사위었던 그의 마른 몸뚱이를 떠올리니 숙연해졌다. '제깟 풀 따위가'라는 말을 하지 말자. 사람의 역사보다 오랜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또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버텼던 그들이다.


왕고들빼기10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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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들빼기09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한 송이가 한 다발이 되는 마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챙겼던 총포를 조심스레 헤쳤다. 역시나 부풀지 못한 관모와 그 아래 까만 열매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본 후에 사진을 찍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열매다. 그리고 우리 집 베란다의 화분에 뿌렸다. 어쩌면 그곳에서 그들이 삶을 꾸릴지도 모르겠다. 총포를 쥐었던 손에서 숲 내음이 났다. 하늘 높이 오른 그가 꽃봉오리 가득 매단 채 바람 따라 흔들리며 보았을 푸른 하늘처럼 상쾌하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한 방울의 진액마저 제 새끼들에게 향기로 남겨 주었나 보다.

네가 왜 왕고들빼기였는지 이제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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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들빼기07_web.jpg <코튼지에 연필과 수채화물감, 너의 사랑을 책으로 엮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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