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반란(브레멘 음악대)

모여라! 모두! 브레멘으로 가자!

by 꿈쟁이
그들이 연대했을 때의 힘은 대단했다. 우리도 축배를 나누자. 그리고 연대하자!

오늘 이곳에 반란을 꿈꾸는 루저들이 뭉쳤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농장에 사는 당나귀>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곡식 자루들을 농장에서 방앗간으로 날라 주는 일을 했다네. 모두가 그렇듯 나 역시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지. 힘이 달려 헉헉 거리자 주인은 나를 처분할 때가 되었다고 하더군. 나는 내 앞에 닥칠 운명을 알고 있었네.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좀 억울했네. 그래서 도망쳤지. 브레멘으로 가면 전속 음악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심하게 헐떡이는 늙은 사냥개>
나는 너무 늙었어. 그래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 기운도 없고. 나는 사냥개였어. 주인이 사냥을 할 땐 항상 나와 함께 했지. 나는 아주 빠르고 용감했거든. 그런데 이젠 다 틀렸어. 주인은 늙어서 숨 쉬는 것조차 헐떡이는 나를 그대로 놔두지 않기로 했거든. 쓸모없으니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했어.
그래서 무조건 도망쳤어. 하지만 어디로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내가 살 수 있을지 아득해.
<깊은 슬픔에 빠진 고양이>
세상에 기쁠 일이 하나 없어. 난 곧 죽게 될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니까. 늙어서 이빨이 빠지고 무뎌졌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쥐를 잡으러 다닐 수 있겠느냐고. 나의 여주인은 날 물에 빠뜨려 죽이고 싶어 해. 그래서 일단 도망쳐 나오긴 했는데...
<대문 위에 앉아 뼛속까지 울리도록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수탉>
나는 오늘 날씨가 좋을 거라고 알려주는 거야. 오늘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의 속옷을 빨아 말리는 날이거든. 그런데 우리 여주인은 자비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여자야. 여주인은 내일 손님이 올 거라면서 요리사에게 닭고기 수프를 해 달라고 하더라고. 오늘 밤 내 목을 칠 거야. 그러니 내가 악을 쓰며 울 수밖에. 실컷 악이라도 써야지.

모두가 누군가에게로부터 소용이 다했다는 이유로 버려질 운명이다. 당나귀는 다 같이 브레멘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자신은 류트(현악기)를 연주하고 사냥개는 드럼을 치고 고양이는 밤의 세레나데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목청 좋은 수탉은 노래를 부르면 되고.... 우린 근사한 브레멘의 음악대가 될 거야!


브레멘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그들이 쉬지 않고 걸어도 해 지기 전까지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룻밤 쉬어 갈 곳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밤이 되었을 때 그들이 다다른 곳은 숲 한가운데. 어쩔 수 없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쉬어 갈 수밖에. 당나귀와 개는 큰 나무 밑에서, 고양이와 수탉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잘 곳을 찾았다. 수탉은 가능한 높은 곳으로 올랐다. 그래야 안전할 테니까. 나무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수탉은 그때 반짝이는 뭔가를 발견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혹 그 근처에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 "숲 속에서 자는 것보다는 그 집이 안전할 거야." 당나귀의 제안에 모두들 그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도둑들의 소굴이었다. 도둑들은 불을 환하게 밝힌 채 신나게 먹고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당나귀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다. 그리고 그 좋은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 좋은 생각이란 이러했다.

당나귀가 몸을 곧추 세워 창턱에 두 앞발을 대고 있으면 개가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고양이가 다시 개 위에 올라타고, 수탉이 몸을 날려 고양이의 머리 위에 걸터앉는다.

그다음

당나귀는 히이잉 외쳐 댔고, 개는 짖어 댔으며, 고양이는 날카롭게 울어 댔고, 수탉은 악을 쓰며 꼬끼오 외쳤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한 밤중 갑작스러운 무시무시한 소리에 놀란 도둑들은 유령이 들어온 것이라 믿고 숲 속으로 줄행랑쳤다. 이제 이 집과 이곳의 모든 음식들은 브레멘으로 향하는 음악대를 꿈꾸는 그들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도둑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둑들의 두목은 자신의 부하 한 명을 보내서 정탐하게 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겁먹은 상태인 데다가 상대는 넷이다. 당나귀 일행은 그저 각자 편한 곳에서 잠을 잤을 뿐인데 잠자는 그들의 모습에 놀란 도둑은 온갖 고초를 당하고 도망쳐 두목에게 가서 이렇게 전한다.

"그 집에는 무시무시한 마녀가 살고 있어요." 물론 사실이 아니다. 그의 눈에는 공포가 만들어준 허깨비가 씌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였다. 그 후로 도둑들은 그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브레멘의 음악대는 브레멘으로 갔을까?
그래서 그들의 꿈대로 음악대가 되었을까?
아니다.
그들은 그 집이 매우 마음에 들었으므로
계속 그 집에서 살았다.


그림형제의 동화집에 수록되어 있는 "브레멘의 음악대"는 다섯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이야기이다. 한 글자 한 글자 꾹 꾹 눌러가며 읽다 보니 예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심장에 강하게 콕콕 박혔다.

쓸모가 다한 이들이 각기 처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박차고 나와 서로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연대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이야기가 끝난 지점이 브레멘이 아니었다라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아니 무엇인가에 꽝~ 하고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당연히 브레멘의 음악대가 된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서 해피엔딩이다 생각했었는데. 어라,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네.


그림은 독일의 대도시 브레멘으로 가길 원했으나 그곳에 닿지 않고도 이미 충분히 만족한 그들이 함께 음식을 먹고 나누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이 정착하기로 한 그 집에서 자신들을 위한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림 하단 기타를 들고 있는 소년과 고양이는 나의 아들과 나의 고양이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나는 나의 아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아들은 음악을 좋아했고 또 기타를 제법 잘 친다. 나름 재능도 있다. 20대의 아들은 사춘기 소년만큼이나 헷갈려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스스로도 그렇고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그렇다.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그래서 덜 힘들었으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충분히 겪어야 하고 아파야 한다. 실패도 할 것이고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겠지. 그런 아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으니 도전하기를 망설이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반드시 동맹을 맺으라고.... 고양이는 그런 아들을 응원하는 나의 시선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브레멘의 음악대"와 내가 그린 이 그림은 나를 응원하고 있다. 나야말로 나이 들어 사회적 효용이 다한 존재이다. 그래서 스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 그걸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에 맞추려 하지 않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그 끝이 어디일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여정에서 나는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 형제 동화집. 브레멘 음악대의 줄거리는 이 책들을 고루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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