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현실이야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할 수 있을까? 그때그때의 단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이야기가 이어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 해 보자. 하다가 안되면 그때 그만두더라도 시도는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단 덤벼들었다. 그렇담 어떤 이야기를 그릴까?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까? 또 고민이 이어진다. 가슴이 콱콱 막히는 느낌. 책장의 책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만큼 길지 않은 이야기면 좋겠다. 그리고,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면 더 좋겠지. 가능한 글보다는 그림으로 서사를 이끌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림형제"의 "암탉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나의 첫 그림책으로 그리기로 했다.
이야기의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혹시 그림책을 보지 못하신 분은 이전 글을 먼저 보세요.)
어느 날 암탉과 수탉이 호두나무가 있는 산으로 놀러 간다. 둘은 새끼손가락 걸고 이렇게 약속한다. 누구든 호두를 먼저 찾으면 사이좋게 나눠 먹기로.... 하지만 암탉이 그 약속을 어긴다. 하필 호두 알맹이는 매우 커서 목에 걸리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수탉을 애타게 부르며 도움을 요청한다. 수탉은 암탉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물 한 그릇 얻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마침내 물을 얻어 암탉에게로 갔지만 이미 암탉의 숨은 넘어갔다. 암탉을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어대는 모습에 숲 속 동물들도 함께 슬퍼했다. 여섯 마리의 생쥐는 암탉을 무덤까지 싣고 갈 마차를 만들었다. 마차가 완성되자 여섯 마리의 생쥐는 앞에서 끌고 수탉은 뒤에서 밀며 무덤으로 향한다. 그 길 도중에 만난 여우와 숲에 사는 온갖 동물들이 자신들도 함께 가겠다며 하나 둘 수레 위에 올라탔다. 수레를 끄는 것은 여전히 여섯 마리의 생쥐와 수탉뿐. 그들이 개울을 만났을 땐 지푸라기와 붉게 타는 숯이 개울 건너기를 돕겠다고 자신들을 희생했다. 이 과정에서 여섯 마리의 생쥐들도 희생된다. 마침내 돌덩이의 도움으로 마차가 개울을 건너나 싶은 찰나 마차는 뒤집어지고 만다. 마차 뒤에 올라탄 동물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마차가 우지끈 뒤집어진 것이다. 그렇게 나머지 동물들도 개울에 빠져 죽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은 암탉과 수탉뿐. 수탉은 암탉을 묻고 그 무덤 앞에 앉아서 한 없이 운다. 울다가 울다가 수탉도 죽었다.
그리하여 모두 죽고 말았다.
허탈하다 못해 웃음이 피식 나오는 이야기이다. 뭐 이래? 다 죽었네? 왜? 개그도 아니고....
짧은 이야기이니 여러 번 읽어보자. 그리고 이야기를 확장시켜보자.
우리 어디서 많이 봤다. 우리 주변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세상의 일들이 그다지 논리적인 전개를 따르지는 않는다.
인과 관계도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선악의 경계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선함이나 악함의 끝이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름도 종종 목격한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결말이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기인한 허구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끝이 암탉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암탉은 그저 많은 호두 중 딱 하나를 먼저 취했을 뿐이다.
호두는 곧 여기저기 발견될 것이고 그때 수탉을 불러도 늦지 않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저런 변명 다 필요 없고 그냥 호두 한 알 먼저 먹었다니까.
수탉은 암탉의 비명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네가 약속을 어겼잖아." 그런 소리 하지 않았다.
호두가 대수인가.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일단 살려야지.
그래서 물 한 잔 달라는데 뭔 요구들이 그리 많은지. 그래서 골든타임을 넘겨버린 암탉은 결국 죽고 만다.
큰 슬픔에 잠긴 수탉을 위로하겠다며 많은 동물들이 그의 곁에 몰려들었다.
그중 그 위로를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인 것은 여섯 마리의 생쥐들뿐이었다.
그들은 암탉을 싣고 갈 마차를 만들고는 마차를 끌고 무덤으로 향했다.
나머지 동물들은 마차에 올라탔다. 이때 수탉은 말렸어야 했다.
생쥐들이 견디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좋을 대로"라고 하면서 그들이 마차에 타는 것을 허락했다. 심지어 여섯 마리의 생쥐들을 "나의 말"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이후 전개될 사건들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그들은 끝내 개울을 무사히 건너지 못했다. 여러 도움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도움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인 탓에 수탉은 진정한 조력자였던 여섯 마리의 생쥐들을 모두 잃는다. 선한 이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다니, 믿을 수 없다. 그 순간에도 다른 동물들은 마차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말이다. 결국 수탉 혼자 죽은 암탉과 동물들을 태운 마차를 끌고 돌덩이의 도움으로 개울을 건너기를 시도한다. 다 되었다 하는 순간 마차는 뒤집어진다. 그래서 수탉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이 개울에 빠져 죽는다. 차라리 다행이다. 만일에 이들이 살아남아 쭈욱 잘 살았다고 했다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거 같다. 왜냐면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은 종종 이런 일이 생기니까.
이야기는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수탉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무엇을 슬퍼했을까?
암탉의 죽음? 여섯 마리 생쥐들의 죽음?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
그러니 이 모든 일이 암탉 때문이라 하지 말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
한 달 조금 더 걸린 모양이다. 그림형제의 글을 다시 편집하고 그림을 그리고 하느라.
잘 되었네 어쩌네 이런 평가는 뒤로 하고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끝을 내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물론 누가 시킨 일 아니다.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나의 시도였다.
p.s. 그림책 전체는 이전글에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