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그림 속에서라도 그렇게 살아보자

by 꿈쟁이
느낌대로 산다. 참 근사하지.
물론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삶의 아주 작은 부분만이라도 나의 느낌에 의지해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
언젠가는 가능할 거야. 비워내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보면 가능할거야라 하면서 나를 다독인다.
그렇게 오십을 넘겼다. 그리고 비겁하게, 다시 변명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럴싸한 변명으로 무참히 내 안의 소리를 뭉갠다.


서른의 끝자락일까 마흔의 초입이었을까, 그 무렵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만났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정기 구독했지만 내가 더 재미있어했던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접했다. 두 권의 책 모두 내겐 큰 울림이었고 동시에 위로였다. 아마도 그 무렵의 나는 구석에 몰린 생쥐마냥 도망칠 구멍이 필요했을 터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숨 막힘의 연속이었다.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도 않았다. 맞아! 어쩔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다.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때였다. 애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어쩌란 말인가? 그런 일들마저 나의 책임으로 할당되었을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그 일들은 시간 지나 절로 해결된 것도 있고, 차라리 그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딱지 앉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희미해진 것도 있다. 또 어떤 일들은 끝내 포기하기도 했을 거였다. 그때의 나는 불안했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지속되면 더더욱 불안했다. 이제 곧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지레 겁을 먹곤 했으니까.

그런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막아지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보니 나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살더라. 그때는 나를 객관화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산다는 것이 그러한 것임을 그때는 잘 몰랐다. 그렇게 억울해할 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 또한 지나온 시간이니 쉬이 말하는 것일 뿐 지금도 간간히 나는 겪한 감정의 풍랑에 굴복되곤 한다.)


아무튼 그때부터였다 "월든"과 "조화로운 삶"이 나의 로망이 된 것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끝나면 시골로 갈 거야. 내가 키워서 먹고, 내 집 직접 수선하면서 살 거야.

욕심부리지 않고 주변의 사물들과 벗하며 따끈한 차 한 잔에 감동하면서 살 거야.'

이게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닌 이유는 나는 꽤 부지런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집요해서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그럭저럭 좀 하네 하는 정도의 수준은 가능하다.

그것이 완전 낯선 분야라 하더라도...... 음... 비교적 잘 배우는 편이다.

또 타인의 시선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시골살이가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 같다.

그럼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막상 일을 벌이려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겁이 많은 나는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 그게 안된다.

때문에 발생 가능한 여러 문제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없는 지금 어쩔 수 없이 또 미뤄야만 한다.


대신 현재 내가 딛고 있는 이곳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보자며
자조 섞인 위로를 건넨다.
상상해보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껏 상상해보자.


한적한 곳에 집을 짓자. 집이 크거나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좋지만 재미있으면 좋겠다. 지붕도 알록달록 색을 입히자. 마당이 있어서 가꿀 수 있으면 좋겠다. 때가 되면 과일이 열리는 유실수도 심어야지.

그림 속의 나무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아주 커다란 복숭아나무다. 나무에 그네도 매달 거야. 신난다.


햇빛 잘 드는 곳에 텃밭을 만들 거야. 내가 좋아하는 채소들을 심어야지.

내가 가꾼 과일들과 채소들을 수확하는 날 파티를 할 거야. 케이크도 굽고 맛난 음식들 많이 많이 만들 거야.


진짜 진짜 나는 케이크를 구울 수 있다. 빵도 굽고 쿠키도 꽤 잘 굽는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에 아이의 과학 학습을 위해서 베이킹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함께 해주고픈 마음에서 시작된 베이킹은 얼마 안 가 나의 취미가 되었다. 일 하느라 아이 챙기느라 늘 바빴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이 난다 싶으면 베이킹을 했다. 때론 이른 새벽, 때론 늦은 밤의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밀가루, 버터, 설탕이 한데 어우러져 빨갛게 달아오른 오븐 속으로 들어가면 달큼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퍼졌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냄새다. 동화 속 세상에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쟁반 가득 쿠키와 빵이 쌓이면 아이의 친구들을 불렀고 나의 이웃을 불렀다. 몸은 조금 더 고되어졌지만 마음은 훨씬 평안해졌다. 가진 거 별로 없어도 몇 덩이의 빵 탓에 부유하다 생각되었다. 지금도 종종 쿠키를 굽고 케이크를 굽는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언제든 내키면 구울 수 있도록 항상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대부분의 날들이 조용한 나날이겠지만 어쩌다 한 번은 떠들썩한 시간을 보낼 거야.

이웃들도 올 거고, 그날은 내 아들도 기타 들고 오겠지.

내 고양이 아라와 옆집 고양이 반짝이도 함께 즐거울 거야. 반짝이는 진짜로 나의 꼬마 친구의 고양이이다.

우린 늘 만나면 고양이 이야기를 한다. 아이스크림 들고 팔짝팔짝 뛰노는 아이가 바로 그 꼬마다.

거봐! 즐겁지? 잘 익은 복숭아도 따서 나누어 먹고 다 같이 춤을 추자고.

그리고 그날 밤 우린 모두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예쁜 꿈을 꿀 거야.


이 그림들을 그릴 즈음 나는 꽤 혼란스러웠다. 나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다.

그림도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시도를 했더랬다. 상상력이 결핍된 나를 한탄스러워하기도 했었다.

기발한 뭔가가 떠오르기를 바랐는데...... 별거 없더라. 그래서 나의 욕망들을 날것으로 분출해보자 했다.

말이 되든 안되든 개의치 말자 했다. 개성이 있고 없고 여부를 따지지 말자 했다.

맘에 쏙 들지는 않지만 내 감정의 배설을 받아준 그림들이다. 형식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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