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그림책(9)
첫 번째 시간여행을 통해 죽어가는 바다를 보았던
하퍼 씨는 두 번째 시간여행에서는 죽어가는 숲을 보게 된다.
시간과 시간의 틈에서 밀쳐진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숲이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가득 찬 숲. 하지만 숲이 시작되는 그곳은 요란했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했고, 엄청난 굉음이 숲을 울렸다.
박쥐의 모습을 한 하퍼 씨가 숲 깊은 곳으로 가자 그곳엔 숲에 사는 동물들이 놀란 모습으로 이 소란을 응시한다.
숲의 마지막 나무가 쓰러졌을 때 숲의 생명들도 마지막을 맞이했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잘려나간 나무들은 커다란 트럭에 쉴 새 없이 실려갔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주관으로 6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세계 산림 총회.
15차 총회가 올해 5월 2일부터 6일까지 코엑스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44년 만에 아시아에서 개최된 총회에는 141개국 1만 5천 명이 대면 또는 비대면을 겸한 방식으로 참여했다.
이 총회에서 언급된 주요 이슈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470만 헥타르의 산림이 줄고 있다"라는 것.
이는 대한민국 서울의 80배에 달하는 크기라 했다. 줄어드는 이유는 당연 벌채 때문이다. 커피나 카카오 등의 농작물을 심기 위해 대대적인 벌채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이 회의의 주요 이슈였다. 산림이 사라지는 것이 뭐...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지구 온난화' 이 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전 지구적 목표가 있다.
‘지구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막아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있는데 그 양의 약 14%를 산림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산림은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생태계 서비스의 핵심이며 지구의 육상 생물 다양성의 절반 이상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2년 6월 7일 YTN 사이언스 참조)
악의 근원은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그런 것을 떠나 일단 모르면 나의 행위의 결과도 예측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누가 다치게 되는지도 모르게 된다.
적어도 알면 노력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물론 세상엔 뻔히 그 끝을 알면서도 그 짓을 저지르는 인간들도 있다. 어쩔 수 없다. 분탕질하는 그들에 떠밀려 전부를 위태롭게 둘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린 알려고 해야 한다.
돈이 세상의 전부이고 존재 이유인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이 부를 쌓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밤이 깊도록 베어낸 나무를 실어내는 트럭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멀리 숲을 잃은 박쥐들이 날아오른다.
세상 물정 몰랐을 어렸을 때는 인간이 참 약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치타처럼 빠르게 내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도 않고... 기타 등등....
그때의 나는 어리석게도 고통은 인간만 느끼는 고유한 감각이라 생각했다.
나이 들어 먹물의 힘도 빌리게 되고, 인간이 아닌 그들을 가까이하는 경험도 해보니 비로소 알겠더라.
인간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구나.
증폭되는 무질서 속에 어쩌다 생명이 있는 존재들이 생겨나고 그 생명들 중에 인간인 종으로 태어난 우리는 다른 생명들과 동등한 존재가 아닌 신이었구나. 그것도 파괴의 신이었구나.
수천 년 아니 어쩌면 수만 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산을 며칠의 짧은 시간에 들어내기도 하고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계속되는 바다에 흙을 부어 육지로 만들기도 하고...
죽어도 되는 생명체와 살릴 생명체를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
인간에게 밉보인 순간 그 종은 멸종을 피할 수 없다.
트럭에 몰래 매달려 이동하는 하퍼 씨는 생각한다.
인간들이 들어낸 숲은....
파괴한 숲은…
단순한 흙이나 나무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간을 들어낸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작은 산이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에는 작은 산이 있었다.
작년 시끄러운 공사가 이어졌다.
올해, 아파트 앞 산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물류센터가 들어섰다.
올해, 아파트 뒤 산이 있던 자리에는
높다란 아파트가 주변 산을 뚫고 솟아났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있던 산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
또, 내가 사는 아파트 뒤에 있던 산에 대한
기억도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따금 살 곳을 잃은 고라니가
인근 아파트로 뛰어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