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다섯 번째 그림책(10)

by 이경아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 편이 훨씬 더 나았다.

아니 만나면 안 되었다.

하퍼 씨는 나무를 실어 나르는 커다란 트레일러에 매달린 채였다.

그러다 한 농가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날아갔다.

일을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와 그를 반기는 가족들이 보인다.

어린 자녀들도 있다.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다.

하루의 고단함이 가족들의 환영으로 다 풀릴 것 같다.

헛간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로 박쥐들이 날아든다.

그들은 숲을 잃어버렸다.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그곳이 이제는 없다.

당연히 먹을 것도 없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본능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농가까지 내려온 것이다.


헛간의 2층에는 부지런한 농부가 갓 수확한 농작물이

광주리마다 가득 담겨있다. 살았다!

박쥐들은 맘껏 먹었다.


박쥐들이 있는 2층 그 아래에는 돼지 가족이 잠들어 있다.

농부가 정성껏 키우고 있는 가축들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걸로 보이는 아기돼지들도 있다.

후드득... 과일이 헛간 바닥으로 떨어진다.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는 것처럼.

박쥐들이 먹다 버린 부스러기들이다.



툭툭...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 소리에 돼지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밥 때는 되지 않았는데... 이게 웬 횡재?

신났다. 이런 날도 있구나.


이로써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 맞닥뜨린 적 없었던 박쥐와 인간의 가축이 서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과의 마주함도 피할 수 없다.

박쥐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살던 곳이 사라져

새로운 곳을 찾았을 뿐이다.


어쩌면 어쩌면 농부의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아플지 모르겠다.

숲을 파괴한 이가 농부는 아니다. 그의 가족도 아니다.

파괴적인 행위로 큰 이득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이곳에 살지 않는다.


헛간을 빠져나온 하퍼 씨는 빽빽한 나무가 있었던

아주 오랫동안 숲으로 존재했던 하지만 지금은 아닌 그곳을 날고 있다.


숲이다. 회색 숲이다.


그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우주

수천억 개의 은하중 하나

그 은하의 수천억 개의 별들 중 하나

지구별에는

우연히 아주 우연히 생명을 지닌 존재가 생겨났다

하나에서 시작했을 생명은 많은 수로 뻗어갔다


수많은 생명 중 하나

인간

그들은

수억 년의 시간을 거스르고

다른 생명들을 지워가고 있다

자연은 허락한 적 없지만

인간 스스로 자연이 되어 생명들을 지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홀로 불멸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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