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그림책(11)
갈수록 집이 좋다.
특별히 좋은 집이라서가 아니다.
지어진 지 5년 되었을 무렵 이 아파트에 들어왔다.
그리고 11년이 넘었다. 그 사이 아파트도 16살이 되었다.
11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으니 여기저기 묵은 먼지가 말도 못할터이다.
눈에 보이는 곳이야 시간 나는 대로 털어 내고 닦아 내지만
깊이 잠든 밤중에도 먼지들은 계속 내려앉을 것이다.
내 눈을 피해.
11년 동안 쌓인 짐도 많다.
세 식구 사는 집에 왠 짐이 이렇게 많은지.
아니 네 식구구나. 고양이도 있으니.
고양이의 짐도 만만치 않다.
보기에 지저분하다고 맘대로 덜어낼 수 있는 짐이 아니다.
어쩜 그렇게 자기 물건들에 대한 애착들이 많으신지.
애착인지 게으름인지 무덤덤한 것이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집이 좋다.
마치 내 체취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는 것 마냥
뭐든 집에서가 좋다.
밥을 먹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집이라야 편하다.
고양이랑 같이 살아서 그럴까?
긴 시간여행에서 돌아온 하퍼 씨 역시 누추한 자신의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