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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Jan 04. 2023

달콤 살벌한 그녀와의 첫 만남

피접 온 고양이(1)


 지난 연말이었다. 곳곳에서 들썩였던 "메리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26일 저녁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B였다.

"저기 까미 좀 임시보호 해 주실 수 있으세요?"



 8월 말. 습하고 지루한 여름이 그제야 조금씩 기세를 꺾을 참이었다. 모처럼 쾌청한 여름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수거통을 들고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얼마 못 가 영산홍 울타리 사이에서 검은 무언가가 훅 튀어나왔다. "앙!" 소리와 함께. "어머!" 깜짝 놀라 서너 걸음 뒷걸음질 쳤다. 까만 물체는 움직이고 있었고 내게로 다가와 매달렸다. 아뿔싸! 고양이었다. 마치 매복이라도 하 듯 어둑한 나무 울타리 사이에 숨어있다가 사람의 기척 소리가 들리자 "앙" 소리를 내며 뛰어든 것이다. "아가, 넌 왜 여기 있니? 뒤로 돌아가면 밥이 있을 텐데..." 나는 곧장 음식물 수거함으로 향했다. 밥이 있을 거란 말은 거짓이 아니다. 한적한 아파트 산책길 귀퉁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고양이들이 항상 밥과 물을 먹을 수 있도록 깨끗한 급식소를 마련해 두었다. 내가 매일 그곳의 물을 갈아주고, 깨끗한 그릇에 사료를 가득 채웠다. 그래서 내가 챙기는 고양이들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아이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 아파트 안의 차들이 다니는 도로 근처로 숨어든 것이다. 수거함에 음식물 쓰레기를 붓고 돌아오는 길, 그 아이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내게로 달려든다. 내 손에 들린 음식물 쓰레기 통에 뭔가 먹을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나 보다.

"아니, 여긴 없어. 기다려... 기다려 봐. 금방 올게." 나는 달려서 집으로 들어갔다. 황급히 파우치 하나와 츄르 1개, 건사료 통과 그릇을 들고 나왔다. 아이는 옆 라인에 있었다. 그새 그 아이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들었다. 어떤 이는 간식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이 아이에게 잡혔다 말했다.


첫 만남이었다.

나중에 까미라 이름 지어진 턱시도 냥이와의 첫 만남.

다음 날 재활용 분리수거를 위해 현관문을 나섰을 때...... 어쩜 이럴 수가.... 아예 대낮부터 길가에 누워 죽돌이를 하고 있다. 길을 오가는 어린아이들이 만지작거려도 피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몸을 비비고 난리다.

여학생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나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 여기저기에 아이에게 준 간식들이 흩어져 있다. '저러면 곤란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더구나 밥을 주는 행위로 주변 청결을 해친다면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집으로 가서 접시와 파우치를 하나 챙겨 나왔다. 먹을 것으로 아이를 아파트 뒤편 산책로로 유인할 계획이었다.  아이는 어려 보였다. 작은 체구, 모질도 꽤 괜찮았다. 항문 부분도 깨끗했다. 집을 잃었나? 처음 보는 고양이다. 주변에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참 순했다. 누구나 그 아이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B의 다급한 목소리에

“까미가 왜요? 얼마 전에 소식 들었는데 잘 있다고 하던대요." 라고 되물었다. 까미는 11월 중순 무렵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암컷이었고 새끼를 낳아 수유 중이었기에 좀 더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완전한 회복을 위해 돈을 더 들여 5일씩이나 입원을 시켰다. 고양이는 처음인 입양자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에서...



까미를 세 번째 만났을 때 나는 까미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워낙 체구가 작고 어려 보여서 설마 했지만 곧 확신했다. 다소 불룩한 배는 틀림없이 새끼를 품고 있으리라. 젖꼭지 주변의 털이 뽑혀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고양이의 출산 과정을 직접 본 적 없지만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보아 알고 있다. 새끼를 낳을 무렵이 되면 스스로 젖꼭지 주변의 털을 제 입으로 뽑는다는 것을. 그래야 새끼들이 어미의 젖을 잘 찾아 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툭 불거진 젖꼭지는 출산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는 8월 지나 9월 초. 아득했다. 이 아이는 어쩌면 올 겨울 마주할 혹한에 새끼 모두를 잃을 수도 있겠구나. 당장 어디에서 새끼를 낳는단 말인가. 나는 곧장 고양이들을 챙기다 마주쳤던 또 다른 캣맘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름도 모른다. 그저 어느 동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혹 필요할까 싶어 연락처만 공유했더랬다. 모두 자기 일이 있는 사람들이라 평소 동선이 마추 치는 경우도 드물다. 세상에나 이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종종거리며 사람들을 찾아다녔단 말인가.  A와 B도 뉴페이스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A와 시간을 맞출 수 있어 급한 대로 산실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타난 아이를 이동장에 넣어 산실을 설치한 곳으로 이동했다. 산실 안에 캣닢을 뿌리고 간식을 넣어주었다. 제발 이곳을 사용해 주렴. 간절히 바랐다.



"까미 내일 수술해요. 오늘 입원시키고 왔어요.

이번에 하면 세 번째입니다."

"네? 뭐라고요? 아니 왜요?"

B의 말에 의하면 5일 동안의 입원을 끝낸 까미는 다시 보호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거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날 함께 했으므로... 그 집엔 생후 3개월이 채 안된 까미의 새끼 한 마리도 함께 있다.

까미는 넥칼라를 하고 있었지만 아기가 복병이었다. 환묘복을 입지 않은 까미의 수술 부위를 새끼 고양이 보리가 그루밍했던 모양이다. 까미 입양자와  B는 나름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래서 입양자와 B가 평소 소통했더랬다. 그러나 새끼가 그루밍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던 까닭에 보호자는 그냥 두었고 까미의 수술 부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던 병원에 다시 데리고 가서 재봉합을 했단다. 물론 전신마취를 하고. 그런데 또 탈이 났다. 이번에는 염증이 아주 심해서 수술을 통해 복부의 염증을 모두 긁어내야 한다고 했다. 염증이 아주 깊을 것이고 고름을 빼내기 위한 삽관을 한 채 퇴원할 것이란다. 매일 약을 먹이고 매일 소독해주어야 하며 옆에서 그루밍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일을 나 보고 하라고 했다. 2주 정도. 부탁한다 말했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 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까미의 보호자가 그런 수고를 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나는 분노했다.

"그렇다면 파양 해야지요. 까미를 잘 돌볼 수 있는 곳으로 입양 보내야지요. 어떻게 보호자가 그 정도의 수고도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쁜 장난감이 아니잖아요. 생명이잖아요."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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