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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Jan 07. 2023

그녀는 이뻤다. 하지만...

피접 온 고양이(2)

그녀가 왔다. 달콤 살벌한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복부에 붕대를 칭칭 감고, 딱딱한 플라스틱 넥칼라를 한 채 병원 냄새 풍기며 우리 집에 왔다.

엄마는 안방에 그녀가 지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이를테면 질 좋은 벤토나이트를 부은 커다란 화장실,

숨숨집으로 쓸 수 있는 종이 집,

굵은 면실로 만든 바구니, 커다란 스크래쳐, 해먹,

그리고 캣타워까지.

사실 저 물건들은 모두 다 내 거였다.

엄마는 오늘 오후부터 내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꾸 안방으로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갔다.


까미는 우리가 만들어 준 산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산실을 만든 후 몇 번인가 아이를 산실 근처로 옮겨주었지만 끝내 그곳은 빈집으로 남았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는 어디에서도 까미를 볼 수 없었다.

작년 9월 초. 유난히 큰 비가 잦았다. 서울 경기에 집중된 큰 비에 사람들의 피해도 컸다. 까미는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디에서인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 수밖에. 첫 만남으로부터 흘러간 이십여 일의 시간과 함께 까미를 잊어내려 애썼다.


아마 9월 말 아니면 10월 초였을 것이다. 비가 많았던 9월이라 더운 날이 꽤 길어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날씨는 빨리 차가워졌다. A로부터 한통의 문자가 들어왔다. "혹시, 턱시도 고양이 소식 들었어요? 새끼를 낳았어요."

까미는 놀랍게도 아파트 지하 2층 주차장 계단실 모퉁이의 어두운 구석에서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A가 보낸 사진에는 새끼 한 마리를 보듬고 있는 까만 고양이가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챙겨준 사료 그릇과 물그릇도 보였다. A의 말에 의하면 지하 1층에 차를 주차하고 계단으로 올라오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란다. 설마 하면서 내려가 보니 역시나. 혹여 다른 사람들이 볼까 사진만 얼른 찍고 올라왔단다.

추측컨대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주차장으로 내려갔으리라. 그곳은 젖어 있지 않았을 테고 또 따스했을 것이다. 이 아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테고 그중 어떤 누군가는 아이에게 기꺼이 물과 먹을 것을 내주었으리라. 살아있다니 다행이다.

 A로부터 소식을 듣고 얼마 뒤 B도 까미를 발견해서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휴우.... 한숨이 나왔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는 기쁨과 '왜 하필 지하 주차장이니?' 하는 걱정에서.

비록 주차장이 아니라 계단실 구석이라고는 하지만 구간의 경계가 되는 문이 열려 있다면 이 아이들은 언제든 주차장 안팎을 오갈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이곳은 적절치 않다. 아이들에게도 위험하겠지만 혹 주차장의 여러 시설들과 주차된 차에 손상이라도 입힌다면 아찔하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와  B의 생각은 달랐다. 밖의 다른 고양이들과 영역을 공유할 수 없어 이곳까지 밀려온 것이고, 또 이곳이 새끼를 키우기에 따뜻하고 아늑하니 내년 봄까지만 어떻게 버티어보면 이 아이들도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배설물 처리 문제도 골치다. 얼마못가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누군가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어찌하겠는가. 분명 누군가가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해 준 것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생각했다. 가여운 마음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생각했다.

자칫 별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아파트 안의 다른 고양이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그러니 신중해야 했다.


천상 고양이인 내 고양이 아라. 선이 분명한 고양이다. 선 넘지 마라 그의 좌우명.  땅콩이 제거된 수컷이다.

 엄마는 그녀를 까미라 불렀다.  안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내내 '앙앙' 소리를 내며 시끄러웠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잔뜩 등을 구부리고 꼬리를 곧추 세운 채 엄마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자신의 체취를 엄마에게 묻히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살살 두들겨주었다. 한참을 불안하게 엄마의 주변을 맴돌던 그녀는 풀쩍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늘 사용하던 침대인 양 그녀는 배를 깔고 엎드렸다. "뭐지? 저 자연스러움은?". 잠시 후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엄마가 문을 여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간신히 내 머리만 안방으로 디밀 수 있었다. 엄마에게 딱 걸린 것이다. 그래도 안방이 보인다. 원래 저 공간도 나의 공간이었다. 안방의 장롱 위는 여름의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꽤 시원한 공간이다.

장롱 옆의 캣타워를 이용해 폴짝폴짝 올라갈 수 있었다.  그 공간에 들어가려는 나를 엄마가 막아선 것이다.

그래도 힘껏 고개를 휘저어 침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하-악!" 깜짝 놀란 나는 후다닥 거실로 도망쳐 나왔다. 뭐지? 그녀가 내게 하악질을 한 것이다. 나는 그저 궁금했을 뿐,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태연스레 얼굴 털을 부풀리고 "하악" 해 버린 것이다. 안방으로부터 멀찍이 도망쳐 나오긴 했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의 냄새가 가득한 공간을 차지했으면서 내게 인사도 하지 않다니 앞으로의 날들이 막막하다. 차르르 떨어지는 검은빛의 털과 눈처럼 하얀 그녀의 가슴털, 그리고 동글동글한 얼굴과 다소 작은 귀의 그녀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쉬이 다가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야기는 곧 이어집니다.)

현재 까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7박 8일의 피접 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네요.

2022년을 마무리할 즈음 갑작스럽게 이런 일이 생겨 그 흔한 연말 인사도 또 새해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넘어가면 한스러울 거 같아 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릴게요.

2023년에는 행복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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