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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Dec 26. 2022

가끔 동지가 그립다

힘들 때라서 서로 의지가 되었나 보다

허허실실 넉살이 좋은 편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낯설다.

특히 사적인 관계로 만나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는다.

딱히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는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 아이를 위해서

또래의 엄마들과 어떻게든 마주하려 애썼다.

아이에겐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또 고등학교에 그리고 대학엘 가니 자연히 멀어지더라. 어떤 이는 이사를 가고, 어떤 이는 일자리를 찾아가고...

기타 등등 여러 이유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게다가 나는 20년 넘게 혼자 일을 하고 있다.

혼자 계획하고 혼자 실행하고...

나의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었고,

또 관계의 버거움을 알기에 혼자 일하는 것이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관계에 의한 불편함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어서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고 속 편하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동지가 그립다.


회사에 다녔을 때 우리 팀의 직원들끼리는 꽤 사이가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속상관인 과장이 이른바 직원들을 갈구는 사람이었기에 우리끼리의 관계는 더욱 돈독했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 십여 명 안팎, 성은 나만 달랐다.

모두가 남자 직원.(회사 전체 정보 시스템부서 소속 인원은 200명이 넘었다. IBM을 비롯한 상주하는 협력업체 직원까지 더 하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일이 세분화되어 있어 전체가 모이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일의 특성상 외근과 야근도 잦았다. 꽤 먼 거리 출장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도 해야 했다.

입사해서 내내 남자 직원들하고만 일해왔기에 다른 성별이 문제 되지는 않았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일을 했으므로.

그때는 야근을 밥 먹듯이 했었다.

연장... 조금만 더 연장... 을 외치던 전산 시스템이

밤 11시 다 되어 끝내 죽게 되면 그제야 주섬주섬 퇴근이 가능하다.

지하철도 끊어졌다.

택시를 타고 일단 양재역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외곽으로 나가는 택시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총알택시'.

비싼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어 끝내 서울 입성을 포기하고 용인 변두리에서 출퇴근을 해야 했다.

불 꺼진 집 문을 따고 들어가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퇴근이 늦은 다음 날은 어김없이 일찍 출근해야 했다.

전날 마감되었던 메인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면 프로그램을 돌려 추출한 자료를 영업부서에 전달해 줄 것이다.

우리는 영업을 지원하는 부서이므로 그들에게 불편함 없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본부장과 지점장들은 오전 8시 30분에 우리가 제공해주는 자료를 가지고 회의를 시작한다.

이 때문에 밤 1시 다 되어 집에 들어왔지만 새벽 5시 40분쯤 다시 일어났다.

늦어도 6시엔 집을 나설 것이다. 오전 7시 30분 이전 도착을 목표로.

씻지도 못한 남편이 미적거리며 일어나 나를 태우고 용인 신갈 버스 정류장까지 내달린다.

(남편의 직장은 용인으로 옮겼기 때문에 나보다는 상황이 많이 여유로웠다.)

늦지 않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양재역 아니면 강변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다음은 지하철 안으로 도무지 피곤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몸을 꾸역꾸역 구겨 넣는다.

"왜 집엘 갔을까? 그냥 회사 근처에서 어디서라도 대충 자고 나올걸." 하는 생각을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니다.


한 번은 신입사원이 내 밑에서 연수를 받았다. 신입사원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다. 군대를 다녀왔으므로.

그는 S대 경영학과를 나왔고  S사에 입사했다가 퇴사 후 다시 우리 회사에 입사했다.

그에게 왜 우리 회사에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잠은 집에서 자고 싶다고.

풋...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퇴근이 늦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다닌 대부분의 날들을 여관이나 회사 사무실에서 지내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현장의 시스템 문제로 외근을 하게 되면 주로 늦은 밤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참을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는다. 한 팀원은 건물에 갇힌 적도 있었다.

회사 사옥이 아닌 임대해서 사용하는 사옥의 시스템 문제로 나갔다가 밤늦게까지 씨름하다 보니 건물이 밖에서 잠겼더란다. 별 수 없이 추운 건물 안에서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였을까? 우린 참 끈끈했다. 때론 가족보다 더....

어쩌다 우리 팀 전부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엔 어김없이 근처 짬뽕집엘 들렀다.

당연히 과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함께는 싫었으니까.

안주라고 해 봐야 짬뽕 한 그릇. 간단하게 소주 한 잔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끼린 참 많이 챙겨주고 보듬어주었다.

끈끈한 동지애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다.


혼자 일하는 지금.... 가끔은 그런 동지들이 그립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리움도 있지만 그때 어떻게 그 일을 했나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한다.

그렇게 야근을 밥 먹듯이 했지만 야근 수당 따위는 없었다. 대기업이었음에도...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나 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곤 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엔 회사 말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구조였으니까.


다들 잘 살고 있겠지. 회사를 그만두고 자연스레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혹여 괜한 오해라도 살까 염려되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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