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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Jan 15. 2023

말로만 사랑한다는 것은 가짜 사랑

피접 온 고양이(4)

 까미가 집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던 날(10월의 토요일) A와 B 그리고 나는 한껏 부풀었다.

까미가 하룻밤 임시로 머물렀던  A의 집으로 B도 나도 모였다. 양손 가득 축하의 선물을 들고서.

까미는 고양이 답지 않게 목욕도 이쁘게 잘했고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것도 싫어하지 않았다. 내친김에 발톱도 잘랐다. 이렇게 쉬울 수가...  부디 잘 살아라. 너의 아기도 함께 가니 이제는 길에서 헤매지 말고 사랑받고 살아라. 그렇게 사람을 유난히 따르던 턱시도 고양이는 제 새끼와 함께 60대 여성의 집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처음이지만 17년 동안 반려했던 개가 올봄에 떠났다고 했다. 개를 17년 동안 반려했으면 정성을 다했겠구나 하고 믿었다. 그 댁에 고양이 용품이라고는 아무런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생각보다 많은 가족들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17년 반려견을 키웠다는 말에  아쉬워 눈시울 붉힌 우리는 서로를 토닥였다.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차디 찬 바깥 신세를 면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자며 서로를 위로했다. 각종 필요한 물품들도 한아름 보냈으니 그걸 다 쓰면 그 이후엔 그들이 구입할 거라 생각했다. 덧붙여 이쁘게 키우시라는 선물로 중성화 수술을 우리 비용으로 해드리겠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그 고양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아니지만 선한 마음으로 입양해 준 그 댁이 고마웠기에 우리도 기꺼이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호의가 사달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호의를 자신들의 마땅한 권리로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약속대로 까미가 새끼에게 물리던 젖을 뗄 무렵 까미의 중성화 수술을 도왔다. B는 60대인 까미의 보호자가 혹여 병원에 오가는 것이 불편할까 염려되어 직접 까미를 데려다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그리고 통상의 입원기간보다 긴 5일이나 입원을 시켜 회복을 도왔다. 보호자의 어려움을 덜고자 하는 B의 제안이었다. 퇴원 후 당분간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지만 별일 없겠지 하는 안일함에 까미의 수술부위에 문제가 생겼다. B는 다시 까미를 병원에 데려가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고도 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주 심각하게... 서혜부 깊숙한 곳까지 염증이 진행되어 하마터면 복막 전체로 퍼질뻔했단다. 이 모든 사실을 나는 12월 26일 밤 처음 들었다. B는 다짜고짜 내게 까미를 2주 동안 임시보호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왜냐고 물었을 때 그는 위의 사실들을 내게 들려주었다. 알고 보니 까미의 보호자와 B는 예전부터 안면이 있었던 사이였다(일 때문에).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A와 내가 아닌 B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B는 그의 고객이었기에 그의 부탁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고 했다.(이 사실은 내가 임시보호를 하고 며칠 뒤에 알았다.)


 갑작스러운 임시보호 부탁에 꽤 난감했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마구 흐트러질게 뻔했다. 나의 고양이 아라에게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아라는 작년 2월 특발성방광염을 앓았던 전적이 있다. 군에서 제대한 아들과 합사과 안되어 결국 특발성방광염이 왔다. 다행히 평소 아라의 대소변을 세심하게 살폈던 까닭에 비교적 일찍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기에 큰 어려움은 막을 수 있었다. 수컷 고양이가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가장 흔하게 발병하는 병이 특발성방광염이다. 자칫 급성 신부전으로 진행될 수 있어 급히 서둘러야 한다.(혹 혈뇨를 본다면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야 한다.) 물론 병원비도 상당하다.


 사람과의 합사도 스트레스였는데 새로운 고양이라니. 영역동물인 고양이에게 낯선 고양이의 등장은 거의 대부분 스트레스 상황이다. 더욱이 까미처럼 사람을 좋아라 하는 흔히 말하는 개냥이들은 고양이들과 친화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남편과 상의 끝에 결정을 내렸다. 2주 동안 우리가 돌보기로. 2주의 시간을 내어주어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아깝지만은 않다고. 그리고 까미는 남편이 안방에서 데리고 자기로 했다. 거실은 아라의 핵심 영역이니 그 보다 순위에서 밀리는 안방에서 임시보호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라의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내가 시도했던 것들...
1. 거실과 안방에 펠리웨이 훈증기를 꽂아 놓았다(합성 페로몬이다. 사람은 맡을 수 없는 냄새)
    까미가 들어오고 3일째 되는 날부터 꽂아놓았다. 혹시나 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첫째 둘째 날은 아라가 밥도 간식도 거부했다. 잠자는 것도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걸 꽂아 놓고 몇 시간이 지나자 밥도 잘 먹고 잠도 두 다리 쭈욱 뻗고 잘 잤다.
   까미 역시 내내 불안함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데 이걸 꽂아 놓고 나니 밥도 먹고 잠도 잘 잤다.
2. 방광염 보조제인 시스테이드 먹이기(예방적 차원에서)
3. 방광염 처방식으로 바꿔서 밥 먹이기 (꽤 비싸다. 요즘은 캔 하나에 5천 원씩 팔더라)
4.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츄르 먹이기
5. 종전의 규칙을 가능한 그대로 지키기(사냥놀이, 먹이 퍼즐 사용, 밥과 간식 주는 시간 지키기 등등)

 까미는 예상대로 사람을 무척이나 의지하는 고양이었다. 첫날 밤부터 남편의 배에 올라가서 잠을 잤다.

사실, 남편과 내가 서로 다른 방에서 잠을 자게 된 까닭은 내가 불면증이 있어서 혼자 자는 것을 선호한 까닭도 있었지만 아라 때문이기도 했다. 아라가 아가였을 때는 꼭 내 품에서 잠을 잤다. 당연히 이불속을 부스럭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남편은 그게 싫었다. 잠자다 깜짝 놀라기 일쑤였으니까. 그래서 남편과 나는 따로 잔다. 여전히 아라는 내 옆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이불속은 아니다. 병원에 데려가기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이동장 교육을 했었는데 그 교육을 주로 잠자기 전에 해서인지 아라는 잠을 이동장에서 잔다. 대신 낮에는 절대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영리한 녀석에 낮에 이동장에 들어가면 병원에 끌려가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남편이 배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자야 한다. 당연히 불편했겠지. 새벽녘에 붕대로 풀려서 두 번이나 다시 감았다고 했다. 아라는 꽤 시크한 고양이다. 나의 손길을 제외한 다른 이의 손길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라가 1살이 된 이후부터는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안기지 않는다. 브러시도 나만, 양치질도 나만 가능하다. 그런데 까미는 남편이 안을 수 있다. 나의 도움 없이 풀린 붕대를 두 번씩이나 감아주었다고 자랑했다. 아침에 모닝 뽀뽀도 하는 아이다.

까미를 위해 내가 했었던 것들...
1. 첫째 둘째 날은 도무지 먹으려 하지 않았다. 건사료도 습식 사료도.
    개와 달리 고양이는 3일 이상 먹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래서 하루 여섯 번 습식을 종류별로 제공했다. 아예 숟가락으로 떠 먹였다.
    그래도 거부하면 주사기로 강제급여라도 해야 하나 생각했다.
2. 먹지 않으니 똥을 누지 않는다.
    처음 병원에 입원한 날 똥을 누고 5일이 다 되어가는데 소식이 없다.
    애가 탄다. 습식을 먹을 때마다 유산균과 식이섬유(파이보)를 조금씩 넣어 먹였다.
    마침내 똥을 눈다. 밤 11시가 넘어서.... 딱딱한 변비끼 있는 똥이 아니라 적당히 무른 똥.
    어찌나 기쁘던지.
3. 플라스틱 넥칼라가 너무 불편하다. 게다가 붕대가 풀린다 말했더니 B가 가져다준 환묘복은
    크기도 너무 작고 역시나 불편하다. 이 불편함이 까미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았다.
    안전한 환묘복을 새로 구입했다. 뭐가 좋을지 몰라 2가지 종류로... 둘 다 너무 잘 맞는다.
    낮에는 환묘복만 입히고 밤에는 넥칼라도 해주었다. 안전하게....
    새로 구입한 환묘복을 까미도 좋아했다.
4.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수시로 사냥놀이 해주기.
5. 하루  두 번 약 먹이고, 하루 한 번 수술 부위 소독해 주기.
까미는 이따금 아라의 핵심 영역을 침범했다. 그런 까미를 아라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카테터를 배에 달고 퇴원했다. 남아 있는 고름을 배출시키기 위함이다.

 까미가 우리 집에 온 지 4일째 되는 날 아침, 갑자기 현타가 왔다. 4일 내내 까미와 아라에게 매달려 있었다. 밥 챙겨 먹을 시간이 없었을 정도니 다른 일은 말해 뭣하랴. 까미는 수시로 거실로 나올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 아라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라에게 하악질을 해대며 쥐를 쫓듯 쫓았다. 아라는 화들짝 놀라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기 일쑤였다. 뻔뻔하게 아라의 핵심 영역을 하나하나 정복했다. 심지어 안방에 있는 자기 화장실 놔두고 거실 끝에 있는 아라의 화장실에 오줌도 누고 똥도 누었다. 합사를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2주 정도 있는 듯 없는 듯 서로 모른 채 지내기를 바랐다.

 내가 그야말로 이렇게 고군분투하는데 까미의 보호자는 뭐 하고 있을까?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면서 마치 고장 난 물건 A/S 보내는 양 한단 말인가?

B에게 문자를 보냈다.

"까미 보호자는 까미 궁금해하지 않나요? 수술받은 거 알잖아요. 궁금하지 않대요?"

B에게서 답이 왔다.

"물어보시죠, 제가 수술 잘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보러 간다고 하시면 불편해하실까 봐서요."

나는 곧바로 B에게 전화했다.

"당연히 보러 와야지요. 제 새끼 수술하고 퇴원하자마자 남의 집에 있는데.

제 새끼 돌보는 것 때문에 다른 집에서 온 가족이 고생하는데 그 모습 와서 봐야지요.

모르면 배워서 돌봐야 하는 거잖아요. 공산품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맘 편히 남의 집에 맡겨요?

예뻐한다면서요. 그러면 책임도 져야지요. 부담도 느껴야 하고요. 때론 아프기도 하고요.

그게 사랑이지요. 어떻게 단물만 쪽쪽 빨아먹으려 해요? 오늘 당장 오게 하세요.

봐야겠어요. 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아니면 더 좋은 집으로 입양 보내야지요."

나는 버럭버럭 불 같이 화를 냈다.  B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만난 일 없으니까.

하지만 상당히 불쾌하고 무례하다 생각되었다. 그 의도가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그의 고객이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을 나에게 전가시킨 셈이었다.

진짜 사랑한다면 그를 위한 시간과 돈도 아끼지 않끼지 않는다. 사랑은 짐이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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