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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May 16. 2018

까무잡잡에서 골든으로 변하기까지, 나의 자존감 변천사

학교폭력, 컬러리즘 피해자에서 '나'를 찾기까지 걸린 10년이라는 여정

 어렸을 때부터 나는 까무잡잡했다. 저 ‘까무잡잡’하다는 말의 어투 자체에서 이미 부정적인 어감이 잔뜩 묻어 나는 것을 초등학생이 되어서부터 본능적으로 느꼈다. 

 짓궂은 초등학교 동급생들은 내게 깜둥이, 까만 콩, 흑미 등등 별명을 지어줬다. 엄마와 백화점 쇼핑이라도 갈라치면, 점원은 으레 따님이 까무잡잡한 편이시니 이 색보다는, 저 색이 어떠세요? 라고 추천했다. 중학생이 되자, 일찍부터 화장에 관심을 가졌던 친구는 나에게 ‘팩트’를 추천하며 하얘질 수 있을 거라고 말을 붙였다. ‘팩트’는 뭐고 ‘파우더’는 또 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 애가 건네주는 것을 받으며 얼떨결에 고맙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의 장난은 도를 지나쳐서, 매일 피부색이 까맣다는 트집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뒤에서 흉을 보기 시작했다. 피부도 까맣고, 곱슬거리는 머리와 깡마른 몸매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애로 통했다. 여자아이들도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한 때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남자아이도, 반 아이들 전체가 나를 욕보이고 장난을 거는 분위기에 맞춰 더욱 심하게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자 당연히 나는 어렸을 적 뽀얗던 사진을 보며, 왜 바닷가에 어린 나를 데려가서 이렇게 피부를 까맣게 태웠냐고 부모님에게 투정을 부려댔다. 다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싶다고, 어렸을 때는 우유 같이 청순한 피부색이었는데 왜 쓸데없이 바깥에서 놀게 놔두었냐고 속상한 마음에 말도 안 되는 넋두리를 늘어놨다. 안경을 써서 못생겼다는 욕을 듣는 구나, 싶은 마음에 부모님에게 하드렌즈를 사달라고 울기까지 했다. 화장품을 샀다가도, ‘너는 화장했는데도 얼굴이 그 모양이냐?’라는 말을 듣기 무서워 그냥 집에 두고 다녔다.  

 아프다는 거짓말,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감추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 하루는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니 화장실에서 먹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다시 거짓말을 쳤다. 아프다고 했다. 조퇴를 하겠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선생님의 차가운 눈빛. 선생님은 아무 것도 몰랐을 테지만,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얘, 너는 왜 맨날 아프니?” 

 나는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오래오래 아프고 싶었다. 


 중학교와 꽤 떨어진 고등학교로 가자,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10년 째 우정을 지키고, 지금도 싱가포르에 놀러 올 정도로 좋은 친구들을 얻었다. 다정한 선생님, 즐거운 학교 생활, 완벽한 친구들. 부러울 것이 없었다.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펴고, 살을 찌우고, 안경을 벗었다. 피부색을 하얗게 만들기 위해 화이트닝 크림, 세럼을 썼고 선크림은 항상 ‘하얘지는’ 제품을 택했다. 처음으로 남자친구도 생겼고, 길에서 연락처를 물어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갈망하고 또 원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집착했다. 무서운 마음에 성형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살을 빼고 또 찌우는 데에 집착했다. 하얀 피부를 위해 바닷가에 가도 잘 놀지 않고 그늘에만 있었다. 살이 타는 게 싫어 더운 날에도 긴 팔 차림을 했고, 래쉬가드를 입고 수영을 하느라 굽이치는 파도와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 백옥 주사를 알아보고, 머리 염색을 하는 데 매달 고정적으로 비용을 지불했고, 요즘 트렌드라는 패션에 열광하고 소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의 외모 지적을 오래오래 담아뒀다.  

“너는 코 끝이 휘었구나. 매부리코 같이. 필러를 맞거나 하는 게 어때?” 

“눈이 짝눈이구나? 쌍꺼풀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밑에 다크서클이 너무 심하다. 피곤해 보여. 뭐라도 좀 해봐. 화장을 해서 가리던지, 시술을 받던지, 팩을 하던지.” 

“예전보다 살 찐 것 같은데? 그러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딱 달라붙는 치마를 입었어?”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집에 와서 네이버를 통해 코 필러를 검색해보는데 여념이 없었고, 짝눈 교정을 알아보았으며, 눈밑지방 재배치 수술 가격을 찾아봤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점 많고 완벽하지 않은 내 외모를 원망하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눈, 코, 입, 몸매 뭐하나 제대로 완벽한 부분이 없었다. 눈은 짝눈이어서 사진 찍을 때마다 이상하고, 코는 휘었고, 입은 약간 튀어나왔고, 뱃살은 쪄가고,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생긴 긴 흉터 등등. 나는 다른 사람의 외모를 사랑했지 나를 사랑하진 않았다. 나를 사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커 왔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배낭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전혀 다른 각 문화 별 미의 기준을 접하고,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마침내 해외에서 일을 하며 점점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하기 시작했다. 매일 낮은 자존감에 괴로워하고 나를 폄하하던 내가, 좋은 사람들의 영향과 선한 말로 인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의 짝짝이 눈이 고민이라는 말에, 싱가폴 친구는 ‘그건 너의 유니크함이야. 그걸 지켜. 남들을 따라 똑 같은 눈이 되지 마.’ 라고 했다. 

 살짝 처진 코 때문에 콤플렉스라는 이야기에, 독일 친구는 ‘너의 코는 이미 오똑하고 예쁘니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다, 아시아 인들의 코가 정말 부럽다.’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나이가 들며 점점 뱃살이 붙고 팔도 오동통해진다고 한숨을 쉬는 내게, 남자친구는 연신 귀엽다며 칭찬을 했고, 건강을 위해 운동으로 살을 빼는 건 좋지만 식단 조절을 무리하게 하며 다이어트하는 것은 전혀 매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이대로가 완벽하다는 입에 발린(?) 소리와 함께. 

 어렸을 적부터 트라우마였던 까만 피부는, 어느새  눈에 띄는 나만의 매력이 되었다. 미국인인 남자친구는 물론, 영국에서 온 친구도 내 피부를 쓸어보며 ‘Your skin color is golden.’ 이라고 찬사를 늘어놓아 어리둥절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내 피부가? 내 피부 너무 꺼먼데. 나는 하얗게 되고 싶어. 백설 공주나, 한국 아이돌처럼! 일단 피부가 하얗잖아? 그럼 무슨 옷이든 잘 어울리고 어떤 색이든 잘 받거든. 너무 부러워.” 

“그러지마. 이런 태닝한 듯한 피부가 얼마나 건강해 보이고 매력 있는지 너는 모르지? 이런 피부색을 Golden이라고 해. 골든. 골든………네 피부색은 지금 이 자체로 특별해. 난 너무 부러운데.” 


 큰 숙제였던 다크서클이라는 콤플렉스를 단번에 파괴시킨 프랑스 배우 ‘레아 세이두’의 말도, 내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라는 충격까지 받았다. 

‘피곤해 보이고,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는’ 다크서클은 그녀의 얼굴 위에서 ‘본인의 멜랑꼴리함을 드러내는, 얼굴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단번에 포지션을 바꿨다. 우연히 그녀의 소신을 접한 후, 나는 단 시간 내에 나의 다크서클을 미워하는 소모적인 행동을 그만둘 수 있었다. 


부모님은 흉터를 지우는 레이저 수술을 꼭 해주시겠다고 부산히 움직이셨다. 여자애 몸에 그런 흉터는 정말 보기 안 좋다고. 보기 흉한 건 돈이 얼마나 들건 간에 레이저로 지우는 게 맞다고. 그러나 미국에 갔을 때, 내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사촌누나, 남자친구의 친누나는 내 흉터를 보자마자 너무 아름답다고 했다. 

“아름답다고? 흉터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귀를 의심하며 계속 되물었다.  

“응. 우리 가족은 흉터를 좋아해. 이 흉터는 이 세상에 너 하나 밖에 갖고 있지 않잖아. 딱 하나 밖에 없는 거잖아. 마치 문신처럼. 그래서 아름다워.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남겨져 있어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그래서 더 흥미롭고, 궁금하고. 한국은 흉터를 싫어해?” 

 그냥 얼버무리며 웃었다.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난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나 또한 그 자체로 존중 받을 인격체였고, 누군가의 눈에는 이 세상을 다 줘도 바꾸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존재였다. 겉모습은 결국 사회에 의해 재단된 ‘미의 기준’에 따라 평가된다. 우스울 정도로 각기 다른 ‘미의 기준이라는 것’을 거부해버리면, 그 문을 열고 박차고 나와버리면 어떤 것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존감이 없다시피 했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어느덧 ‘나 자체를 존중’할 수 있는 여자가 되었다. 더 이상 성형 광고에, 프로모션에, 전후 사진에 눈길을 주고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게 되었고 남들의 평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 사진이 못 나오건, 잘 나오건 모두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남들 눈에 매력적이건 아니건 간에 죽을 때까지 이 몸에 갇힌 셈이니, 내가 가진 장점들, 나만이 아는 매력 포인트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새까만 머리카락, 웃을 때마다 깊이 파이는 보조개, 건강하고 독특한 까만 피부색, 쌍꺼풀 없이 큰 눈, 두 뺨의 주근깨. 


 더는 바닷가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자연 태닝을 즐겨할 정도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강한 햇살의 입맞춤을 온 몸으로 받는다. 살갗이 벗겨져 따가울 정도로 현재를 즐기고 지금을 살아낸다. 서핑과 수영의 즐거움, 맨 살결로 느끼는 파도의 짜릿함과 바닷바람의 소금기, 햇살이 남기고 간 흔적을 사랑한다. 화장을 안 하면 집에서 안 나가고 싶었던 못난 맨 얼굴도 개의치 않고, 가끔 화장 안 한 채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남자친구와도 데이트를 한다. 어차피 남자친구는 화장 안 한 얼굴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유행하는 옷을 따라 사며 유행에서 뒤쳐질까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내 몸의 장점을 잘 살리고 유행을 덜 탈만한 아이템 위주로 구매한다. 아무리 트렌드라고 해도 내 이미지와 몸매에 맞지 않으면 절대 사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다가 언덕에서 굴러 응급실에 실려갔고, 그로 인해 10cm 정도의 흉터가 남았어도 나는 그 상처까지, 그 시간들까지 모두 내가 고스란히 안아주기로 했다. 여자애 몸에 난 흉터가 보기 안 좋으니 꼭 레이저로 지우자고 말씀하시며 안타까워하는 부모님에게도 레이저 시술을 받을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선크림을 온 몸에 바르고 또 덧바르고, 그늘에서 나가길 무서워하고, 온 시간과 순간을 다 바쳐 놀지 않고 휴가를 아주 조심스럽게 보내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나는 한 겹 더 못생겨지기로 했다. 매일 놀림 받고 서러워 울던 까무잡잡한 여자애가 아닌, 내 자체로 완벽한 황금빛 피부를 가진 한 ‘인격체’이니까. 이제 나는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 나를 옭아매고 갉아먹고 짓누르던 고정관념에서 한 발 물러나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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