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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18. 2024

모란원(浦东牡丹园)

중국의 국화 '모란'을 닮은 곳

두 손을 모아야 한 송이가 겨우 담기는 풍만함이 화려한 중국의 모습과 닮았다. 매년 4-5월, 봄이 오면 색색의 둥근 모란 얼굴이 수풀 속 야간 조명처럼 낮을 더 환하게 빛낸다. 공원의 이름은 꽃의 이름에서 왔지만 봄뿐 아니라 사철 어느 때에도 공원은 정갈하고 예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화려함을 과시하지 않으면서 은은한 존재감으로 조용한 산책러를 반기는 공원, 푸동모란원(浦东牡丹园)을 소개한다.


모란원(浦东牡丹园)
가는 법: 상하이 지하철 6호선 South Waigaoqiao Free Trade Zone역 1번 출구 도보 987M
입장료: 무료


모란꽃

분주한 하루, 바쁜 한 주가 시작되어도 이곳의 하루는 온종일 평온하기만 하다. 느긋한 공기 안의 은은한 꽃향이 후각의 모서리를 붙잡아 곳곳에 매어두었다. 덩달아 느긋해진 걸음은 재촉하는 이 없이 다시 빨라질 이유도 없다. 도처에 떨어진 둥근 열매와 둥근 나뭇잎,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지붕의 곡선미가 어느 한 곳 찌르는 곳 없이 시선 안에서 유유했다. 초록을 잃지 않은 잔디는 눈을 시원하게 했고, 곳곳에 보존되어 있는 옛 가옥이 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옛 가옥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면 흑백의 가옥과 갈색 벽돌의 가옥을 만날 수 있다. 오래전 이 지역 주민이 살던 실제 가옥인데 대문 입구에는 성씨가 쓰인 문패가 집의 소유를 알린다. 한 성씨를 가진 대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냈을 생활의 소리를 지금의 고요함 저편으로 상상해본다. 밖으로 난 여러개의 창문이 그 개수만으로도 가족의 크기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사면을 벽으로 둘러싼 가옥 안쪽에는 작은 정원이 자리했다. 정원을 집 밖에 조성하여 남에게 보여주는 서양의 정원 형태와는 달리, 중국의 정원은 꽤나 사적인 공간이다. 정원은 밖이 아닌 안쪽에 비밀스럽게 자리한다. 그 당시 오목조목 꾸며둔 개인 정원에 봄이면 만발했을 모란꽃을 가족만 감상했을 것을 생각하면 중국인은 여간 욕심쟁이가 아니었는 듯하다. 

아쉽게도 가옥 안쪽은 방문객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조금 열린 대문 틈새로 보이는 종이가 발린 문, 툇마루, 그리고 정원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씨네, 유씨네, 장씨네 집들은 적당한 물리적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서 있었다. 각자의 사적인 울타리와 거리를 유지한 채 그들 사이에 오가던 옛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철마다 다르게 피는 꽃을 감상하며 굽이진 다리도 건너보고 정자에 앉아 다리를 쉬어본다. 호숫물이 갈라져 생긴 작은 시내 끝에 예상치 못한 거위 가족의 터전을 보게 되었다. 찢어지는 듯한 거위의 음성이 자기들만의 신호로 이미 나의 접근을 무리에 알린 것 같았다. 곧이어 내는 떼창 소리에 나는 환영받기보단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장담했다. 소리로, 눈치로, 걸음으로 소통하는 이들의 비상연락망 고리에는 한치의 틈도 없다. 외부인에 대한 반응이 매우 영민한 거위들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마주치는 조약돌이나 꽃송이 같은 것들이 어디 하나 허투루 놓이거나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나의 빛나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노력과 분투의 조화가 아름답다. 


"참 좋네."

둘 중 한 사람이 생각만 하던 걸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는다. 다른 한 명이 말한다. 

"그러게, 좋네." 



옛 가옥 안 쪽으로 자리 잡은 그 사적인 정원에 대한 콘셉트는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옮아갔다. 상하이 곳곳에 경치 좋고 풍경 좋은 자리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이 음식점은 이 곳 심장부에 가장 잘 어울리는 태도로 앉아 있었다. 이름하여 一尺花园(One Step Garden)이다. 


一尺花园(One Step Garden) - 모란원점


옛 가옥을 닮은 음식점 건물은 호수를 마주하고 있으니 어디에 앉아도 그림이 된다. 건물은 옛것 그대로를 모방한 채, 그 중심에 1척 평방미터 크기의 화원을 품고 있다. 이쯤되면 음식점의 이름이 어디서 온 줄 짐작이 가능하다. 볕이 좋은 날은 접이식 창문을 모두 열어 옛날의 그 사적인 공간을 공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합당한 뷰를 허락한다. 


이 곳이 다른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각 지점마다 장소의 특색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건축 형태로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바다만큼 넓은 호숫가에 자리한 한 지점은 파도의 상상력을 가진 건물의 모습으로, 공장지대에는 공장을 개조하고 굴뚝을 살린 건물로 지어져 있다. 지점들만 찾아다녀도 상하이 안의 숨은 보물같은 경치를 웬만큼 구경할 수 있다. 


평일 낮의 一尺花园(One Step Garden)은 예상한대로 한적하고 고즈넉했다. 옛 모습이 주는 운치를 느끼며 현재를 안고 과거에 들어왔다. 사적인 밀폐 공간이 현대의 재해석 안에서 대범하게 창문을 열어 올렸다. 섞이는 안 공기와 바깥 공기가 주객의 경계를 허물어 비밀 화원은 손님이 반갑다. 먼걸음한 본전생각은 애저녁에 잊었다. 화원의 수줍은 미소에 기분이 좋을 뿐이다.





<함께 보면 좋은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웁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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