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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21. 2024

사람들은 어쩌면...

성공의 결

아이가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오기 전 중국 로컬 학교에서 유치원 3년과 초등 1년을 보냈다. 외국인이 드문 푸동 외곽 로컬 학교에 외국인 학생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곳에까지 들어와 사는 우리 세 식구의 삶은 그야말로 마늘로 대표되는 한국 냄새를 쫙 빼내고 각종 중국 향신료의 향으로 채워졌다. 머리 까맣고 피부 노란 동일한 아시아 인 속에서 구분 없이 살다가도, 한국어라는 이질감 가득한 언어가 그들 귀에 들리는 순간 의아한 시선은 어김없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중국에 살면 중국학교에 다녀봐야지." 하던 남편의 의견에 내 의견도 결을 같이 했다. 아이는 다행히 그들 틈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하얗게 잊을 만큼(?) 적응을 잘해줬다. 덩달아 나도 없는 시간을 일부러 낼만큼, 학부모들과 튼튼한 고리를 형성했다. 


그중 한 가정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방과 후 아이들끼리 함께 숙제도 하며 우린 가깝게 오갔다.

10월 초 국경절이면 상해의 도로 어느 곳에서도 잼 같던 평소의 교통 정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긴 연휴를 이용하여 중국 곳곳, 세계 곳곳으로 떠나는 여행객들에 공항은 매년 이맘때가 대목이다. 사람이 부쩍 적어진 도시의 널찍한 공간이 좋아 우리 세 가족은 의기투합하여 절대 상해를 떠나지 않는다. 


그 해에도 별일 없이 지나가던 국경절은 아이 친구 엄마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그들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중국 사람들은 생활 중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인맥에 의존한다. 이것은 중국의 전형적인 문화 특성, 즉 꽌시(关系)라고 일컫는 것이다. 주변에 유능한 의사나 경찰이나 교육자와 같이 어려움에 부딪힐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곳곳의 인맥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인맥은 그들의 재산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에 한번 이어진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재산에 내는 재산세처럼 당연한 것이 된다. 그날의 모임은 그 가정의 인맥을 끌어모아 소개하고 접대하는 자리였다. 


상해 외곽의 호수를 둘러싼 공무원 전용 리조트에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들의 번쩍번쩍하는 고급차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집엔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던 한국산 경차가 있었다. 모처럼 세 식구가 탑승한 중량에 버거운지 힘겨운 엔진 소리를 내는 차를 우린 애써 모른 척하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약속 지점에 도착한 우리 차는 고급차들 사이에 가려져 주차장 한구석을 차지했고, 초면의 사람들과 만나고 악수하며 사람들의 시선은 사람과 차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날 저녁 맥주 한잔에 나른하게 앉은 대화의 자리. 

유일한 외국인인 우리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우리를 그들 속에 속하지 못하게 한채 계속 표면에 머물러 있게 했다. 

중국 온 지 얼마나 됐어? 무슨 일해? 어디 살아? 집은 월세야, 자가야? 

이들의 질문은 어떤 관문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를 통과해야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깊이 교제할 수 있다는 면접이고 허락이기도 한 듯했다. 


아이 친구 엄마가 내미는 과일에 우리는 마주 보며 앉았다. 그녀가 우리 사이에 대화의 주제로 꺼낸 이야기는 난데없는 우리 차에 관한 것이었다. 속에만 머무르고 입으로는 나올 법하지 않은 말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와 소리가 되었다.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어 이 세상 말이 맞는지 나는 잠깐 의심했다.  

"남편 체면도 있는데 차 좀 바꾸지 그래."


이튿날, 안전하게 집으로 향하는 남편의 운전대 잡은 손이 멋지게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고급차들 사이에서 힘 있고 날쌔게 주차하고 출차하는 그이의 당당한 표정은 반할 만큼 단단했다. 받아칠 의미를 찾지 못한 그녀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하지 못한 대답을 오래 고민했다. 

그들과 그녀는 질문과 대화 속에서 무엇을 나에게 유추해 냈을까. 우리가 자신들과 어울리기 합당한 수준인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과연 그런 것들일까. 삶과 인맥의 그릇 안에 그들은 무엇을 담고 사는가. 필요, 과시, 체면.. 혹시 이런 것들일까.

많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아이 친구의 가족은 이듬해 근처에 새로 지어진 으리으리한 별장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소식을 듣고 끊어진 우리의 실 같은 인연을 씁쓸하게 돌이키며 나의 겸손한 남편과 나의 소박한 딸이 밤 산책을 동행해 주었다. 

"아빠, 우리는 부자야?"

딸의 느닷없는 질문에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부자가 뭔데?

"아빠, 우린 부자 같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어쩌면 성공하는 것보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탈 때 행복이 저절로 따라오고 귀한 인맥도 생겨난다는 믿음의 체인이 그들을 꽁꽁 묶고 있다. 그들의 생각에 딴지를 놓을 생각은 없으나, 나의 행복은 거기에서 있지 않다는 말로 그녀의 말에 뒤늦은 답변을 하고 싶다. 

행복과 성공감의 행방은 매번 달라서 우리는 일평생을 거쳐 찾고 또 찾아야 한다. 확실한 건 나의 행복이 겉에 있지 않기에, 겉을 제외하고 찾기 시작하면 꽤 빨리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입가의 작은 미소에 있고, 책 속의 감동에 있으며, 흡족한 대화와 일에 대한 만족으로부터 온다. 얕고도 얇은 인연으로 오는 피로감은 몇몇의 좋은 사람들과 나눌 때 자주 회복된다. 회복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행복과 성공감이 주저없이 내 쪽으로 방향을 튼다. 

대면하고 나눌 때와 비슷하게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요즘 또 있다. 매일을 필터처럼 거르고 거르며 백지를 마주해 뱉어낼 때에도 회복은 종종 일어난다. 고쳐쓸 수 있는 덕분에 내 생각을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어 문제는 해결이 되고 만족감이 되어 하루의 충만하게 채운다.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살면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맡겨도 무방하다. 내가 원하는 성공은 다 이렇게 기인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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