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의 결심은 대개 현재 먹고사는 일과 크게 관계가 없다. 밤새 노느라 피곤해서 운동을 빠지고, 바깥 날씨가 추워서 영어학원에 결석한다. 작심삼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마치 화병에 시든 꽃과 같이 연초에 했던 결심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핑계 찾기에 지쳐버린 나는 어쩌면 이 시점은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초의 뜨거웠던 계획은 곧 미루고 싶은 일이 되고, 결국 미뤄도 되는 일로 변질되어 버린다. 매년의 계획은 매년 미완성의 모습으로, 모자이크는 처음의 몇 조각만으로 전체의 의미를 상상해 낼 수 없게 된다. 인간은 미래의 나를 다른 사람으로 인지하곤 한다. 매일의 유혹에 대한 습관적 굴복상태를 YOLO라는 화려한 말로 포장할 때, 훗날의 빚으로 남아있을 지금을 지금은 모른다. 때문에 오래된 버킷리스트 속의 나는 점점 멀어지는 연기처럼 잡을 수 없는 허무와 가까워진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계획이 먼저인 사람과 실행이 먼저인 사람. 각 부류가 가지는 일장일단에 백 점짜리 해결책은 애초부터 없다. 하나 확실한 건, 계획으로 시작한 사람은 계획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실행으로 시작한 사람은 최소한 시작은 이룬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실행이 앞서는 사람은 음악분수 앞에 서 있는 아이와 같다. 반짝이는 물줄기를 향해 다가가는 아이가 신발을 벗어 던지며, 그 뒤에 서 있는 부모님은 한숨을 쉬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치지만, 소리는 아이의 귀에 닿지 않는다. 아이는 맨발에 닿는 물의 촉감을 기억하고, 익숙해진 촉감은 안정감이 되어 남은 두려움을 마저 쫓아낸다. 발가락 사이를 드나드는 물결과 돌바닥의 감촉이 아이의 발바닥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다. 젖은 돌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서는 법을 익힌 아이는 곧 물줄기 사이로 걷는 아이가 된다. 허리를 숙여 손가락으로 수도꼭지를 막기도 해 보고 한 줌의 물을 쥐어 공중에 뿌려보기도 한다. 흩뿌려진 물방울과 같이 뿜어진 도파민의 비명이 즐겁기만 하다.
유모차 안에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앉아 있는 다른 아이의 시선이 젖은 아이의 몸에 와 꽂힌다. 아이의 막연한 시선이 물줄기 안의 느낌을 상상하고 있다. 상상은 못내 이미 해봤다는 착각이 되어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내고 만다. 그리고 뒷날 다시 만난 음악분수의 물줄기가 뿜어내는 소리에 '그거 별거 없어.' 아는 척한다.
삶의 터닝포인트를 어느 순간에 마주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무심코 듣게 된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에서, 길에서 만난 이웃의 한 마디로부터, 혹은 챗바퀴를 돌다가 잠시 멈춰 선 햄스터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삶의 전환을 맞기도 한다. 그 순간은 예상과 다르게 찾아오고, 그것은 계획보다 실행을 앞세울 때 대부분 이루어진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대신 이뤄가고 있는 한 사람을 우연히 발견할 때가 있다. 평상시 의미 없게 하는 행동들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했던 여타 사람들과 달리 나의 쓸모없는 일을 알아주는 그와의 소통에서 내 일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가치 없고 쓸모없는 일은 지독한 자기 검열을 물리치게 된다. 어느 시절 얻어맞듯 깨달은 방향이라는 것이 좌충우돌을 통과하며 다듬어지고 정해지니 인생은 그 마음의 길을 나침반 삼아 걸어가게 된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은 평소같은 보통의 날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다 물에 빠져 수선화가 되어버린 신화 속 *그가 수영을 할 수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빠져 죽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인생은 결국 스스로를 구해야 하는 시점을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허우적대는 내가 로봇 팔을 뻗어 수풀을 잡고, 최강 폐활량을 뽐내며 잠수로 도강(渡江)을 하거나, 복어처럼 볼을 부풀려 튜브 삼아 몸을 띄웠다면 가만히 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구하지 못하고 뽀글뽀글 기포만 남긴 잔잔한 물과 같은 인생은 참혹하다.
굳이 마음먹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삶은 결국 실력보다는 실행력에 관심이 있다. 시작한 일이 있다면 그 쓸모와 관계없이 끝까지 잡고 매달려 본다. 결국에 남는 사람과 이기는 사람은 '계속한 사람'뿐일 테니 말이다.
시작 시점과 같은 중요하지 않은 구색은 접어두고 몸을 가볍게 준비하자. 수시로 찾아오는 찌릿한 자극과 기폭제에 바로 튀어 오를 수 있는 탄력성과 유연성으로 심신을 실전 상황에 배치한다. 그리고 중대한 때를 기다리는 짓은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진짜로 시작하는 사람은 시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작하는 모습으로 의지를 알려주죠. 그리고 매일 반복하며 그 가치를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