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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Oct 06. 2024

조화로운 공존

동물복지에 대한 단상

집에서 기른 닭만 먹었다. 집닭은 털을 벗기면 살이 노랗고 발이 까맣다. 통마늘을 넣고 찜통에 삶아주면 나는 닭발이 그리 좋았다. 부드럽고 쫄깃한 살을 한 꺼풀 벗겨내면 탄력 있게 튀어나오는 잡채 같은 힘줄의 식감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들른 대형 마트 냉장실 매대에 놓여있는 하얀 닭을 보고 사뭇 놀랐다. 어른들은 닭이 사료 먹고 양계장에서 자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부터 닭과의 데면데면한 사이는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알던 것과 보는 것의 차이가 우리 사이의 생소한 어색함을 만들었다.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주 큰 규모의 닭공장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 닭 브랜드는 이미 오랜 시간 닭 시장을 재패해 왔다.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한 홍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특히 공장 견학 프로그램은 입소문을 타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대절 차량을 이용하여 참여하고 있었다. 그간 멀어진 닭과의 관계를 이참에 회복해 볼 아량으로 견학 신청 버튼을 꾹 눌렀다.


공장 입구의 주차 요원부터 견학을 진행하는 홍보팀 직원, 그리고 발골쇼를 보여주시는 하얀 위생복의 여사님까지 일선에서 회사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이들의 프로페셔널함에 적잖이 감동했다.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철두철미하게 기획된 1시간 반가량의 치킨로드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무심결에 귀에 들어와 꽂히는 온갖 광고와 홍보의 동굴을 빠져나오니 브랜드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이미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1위 닭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견학 중 제일 빈번하게 들은 단어는 '동물복지'라는 용어였다. 

전용 케이지 안에 담아 닭을 다치지 않게 운반하는 것.

전기 충격이 아닌 CO2로 잠재워 도축의 고통을 모르게 하는 것.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동물복지'였다. 삶의 지속적인 개선의 의미를 담은 복지라는 용어가 죽음과 연결되어 어색하게 들렸다. (안락사는 그럼 인간복지의 틀에 해당하는가.)


닭은 본래 수명이 7-13년이다. 인류가 농업혁명을 거치며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하며 닭의 수명은 '엿장수 맘대로'가 되었다. 몇 개월이면 성체로 자라는 닭을 생이 다할 때까지 먹이고 키울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보통 육계 정도의 크기가 되면 인간은 더 기다려주지 않는다. 알을 목적으로 한 양계업에서는 알을 더 이상 낳지 못하는 닭을 폐계, 혹은 노계라 부른다. 그 기간은 기껏해야 도합 1년 안짝이다.

 

진정 동물 복지는 무엇일까.

대형 마트에서 구입한 난각 번호 1번 계란(자연 방사란)의 패키지에 명시된 '동물의 5대 자유'가 눈에 띈다.

뭔가 맞는 것 같으면서도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산업적 육류 농장의 송아지는 어떠한가. 출생 직후부터 어미와 분리되어 자기 몸집만 한 우리에서 평생을 가둬진다. 나가 놀지 못하고 걸을 수도 없다. 이 모두가 근육이 강해지는 것을 막아 즙이 많은 스테이크가 되기 위함이다. 식감을 위해 수소는 거세되고, 모돈(母豚)은 평생을 누워 새끼를 낳는다. 송아지를 비롯한 가축이 처음으로 걷고 근육을 뻗으며 다른 개체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일 터다. 동물 5대 자유 중 끼워 맞추면 억지로 맞는 것도 있겠지만, 정상적 행동을 표현할 자유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관적 기준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들 축사와 양계장의 상태를 단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곳이 얼마나 불결하고 좁은지.

"동물복지"라는 단어가 내게 아직은 어색한 이유다.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할 것이다.  
<p.147,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마트 매대에 위생적으로 조각 포장되어 있는 동물 사체를 본다. 선홍빛의 얼굴로 소비자에게 보내는 손짓을 본다. 동물의 일생이 담긴 테이프를 머릿속에 거꾸로 재생해 본다. 고기는 도축장에 걸려있는 몸통이고, 몸통은 방금 저리로 걸어 들어온 동물, 그 동물은 방금 우리 축사에서 오늘도 내가 준 밥을 먹었던 누렁이다.  

동물과 고기 사이에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본다. 무엇을 위한 생명이며, 생명을 위한 생명의 모순에 대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의 기내식에 특별메뉴가 추가되었다. 한국식 비건 메뉴다.

고기를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는 오랜 생각을 잠시 접어놓고 신메뉴를 신청해 본다. 된장과 들깻가루에 볶은 시래기가 기내식으로 나오니 엄마 생각도 나고 정겹다. 된장의 짭짤하고 구수한 맛과 들깨 향의 조합이 침샘을 자극한다. 부드러운 시래기를 밥 위에 척하고 얹으니 목구멍이 부른다. 고기반찬이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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