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믿으면 다 괜찮아져
개 한 마리가 있다. 사람이 그리운지, 아니면 사람에게 얻어먹은 먹을거리가 아쉬운지, 공원 화장실 근처를 종일 서성인다. 바지춤을 움켜잡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남자를 보며 흠칫 놀라 뒷걸음치는 누런 개. 보통 크기의 보통 외모를 하고 마을이나 시장통에서 어슬렁거리면 마주칠 법한 그런 개다. 굶은 날이 오래인지 얼굴은 각이 지고 눈은 돌출되어 눈동자가 유난히 까맣고 크다.
공원 구석은 여태 공사 중이다. 공원과 지하철을 잇고 있는 공사가 언제쯤 마무리될는지 몇 년째 진전도 없이 소리만 요란하다. 곳곳에 지반이 꺼져 울툭불툭해진 아스팔트 위로 트럭이 드나들고 자재가 들어온다. 포클레인은 한 때는 건물의 한 지축이었을 조각조각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아슬아슬하게 떠서 트럭에 담는다. 건더기 크기가 제멋대로라 한 국자에 뜨기 어려운 해신탕처럼 대충 떠 올린 한 손에는 떨어지는 게 더 많다. 물먼지와 쿵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또 한 번의 쿵 소리에 누런 개가 놀라 달아난다. 이미 아까부터 시선을 개에 고정시키고 있던 나는 행여 멀리 가버릴까 개의 방향을 쫒고 있었다. 잠시 숲으로 숨은 듯하더니 다시 내 시야로 들어온 개를 보며 와이파이 유목민이 무료 데이터존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다. 시선이 닿는 느낌을 의식했는지 개는 걸어오다 바라보다 걸어오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몸을 낮춰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며 계속 가까이 오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개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멀리서 흐릿하게 걸어오며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던 모습이 그제야 시야에 또렷하게 비쳤다.
세 발이었다.
개는 내 주변을 배회하며 쉼 없이 코를 땅에 박아 숨을 들이켰다. 숨을 쉬는 동시에 냄새도 맡으며 누가 다녀갔는지, 누구의 영역인지 끝없는 정보가 뇌로 입력됐다. 근처에 먹을 것이 있는지, 음식이 있다면 먹어도 좋은지, 똥은 먹지 않는다는 굳건한 자존심을 지키며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개는 영양이 필요했다. 개는 진정 먹을 것이 필요했다. 바닥까지 쳐진 젖이 텅 비어 헐렁했다.
인부들이 먹고 버린 도시락 더미를 발견했다. 횡재를 만나 도파민이 솟구친 눈빛의 반짝임을 내게는 감출 수 없었다.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라.'
양을 채운 개는 잔디에 앉은 비둘기와 후투티를 쫒으며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그 사이 젖이 찌르르 차오르고 개는 이내 내 시야를 벗어났다. 곧 어미의 젖냄새를 맡을 새끼를 떠올리니 안도가 밀려왔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신체가 아니다. 신체적인 한계를 믿는 사고방식이다.
<늙는다는 착각, 엘렌 랭어>
개는 차갑고 딱딱한 길을 날듯이 걸었다. 아픈 다리를 핑계 삼아 느리게 걷지도, 아무렇지 않은 척 빠르게 걷지도 않았다. 세 발을 한계로 보지 않으니 아픈 발에도 별 의미가 없다. 뒷발 두 개가 걸으면 앞발 한 개는 뛰어야 한다. 보는 이의 마음은 위태위태하지만 정작 개의 발걸음에는 일정한 박자감이 있었다. 두 번 걷고, 한 번 뛰면서 끄덕하고, 재빨리 숨 한번 고른다. 4/4박자를 3/4로 연주하면서 생기는 엇박을 휴식 1박을 추가하여 완벽한 4박으로 만들어낸다. 불균형 속의 빛나는 조화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