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가을 소풍 계절이다. 공원에, 관광지에, 산과 바다에 이 빛나는 가을을 아낌없이 살고 있는 남녀노소가 있다. 사진 한 장 남기려 무심코 밟고 짓이긴 통에 갓 피기 시작한 핑크뮬리가 다 스러져 누웠다. 누워버린 핑크뮬리 위에 덩달아 같이 누워 사진의 각도를 조정한다. 한껏 멋 부린 큰 아줌마들의 열정을 아직 이 작은 아줌마는 엄두가 안나 멀찌기서 바라보기만 한다. 누구의 순간도 아닌 온전한 나의 순간을 대하는 그들의 에너지가가 보는 이에게도 전달된다.
소풍 장소가 천문관으로 결정되고나서부터 은유가 소풍에 무심하다. 김밥 싸줄까 묻는 말에 가라앉은 눈동자가 순간 내쪽을 향한다. 김밥은 먹고 싶은 눈치다. 색소와 온갖 첨가물이 가득한 단무지는 이번에도 손이 안 갔다. 단무지 없는 김밥을 궁리하다가 계란을 풀고 각종 채소를 다져서 한 데 섞어버린다. 노릇노릇하게 말아낸 계란말이 10줄. 이제 계란말이를 김에 밥을 얹어 말아버리면 끝이다. 간단한 계란말이 김밥이지만 썰고, 부치고, 마느라 손이 바쁘고 덩달아 싱크대가 바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설거지통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돌아서면 쌓이고 눈 깜빡하면 늘어나는 설거지감이다. 동화 속 우렁각시가 내게도 간절하다.
세상이 달라 보여요!
식기세척기를 집에 들인 한국 엄마의 목소리에 내 눈이 덩달아 반짝였다. 정말 그렇게 좋아요?
크지 않은 주방에 불편하리만큼 많은 물건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조금이라도 가치 있다고 여겨 놔둔 물건이기에 다른 것을 들이기 위해 버릴 수 있는 것도 없다. 공유받은 제품 링크를 열어볼 생각일랑 진즉에 접었고 식세기는 즉시 단념했다. 다시 팔 걷고 뛰어든 설거지에 한숨이 섞인다.
누구나 원하는 일만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
나는 뭘 원하고, 뭘 좋아하는가.
원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구분하면 상황은 보다 단순해진다.
운동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운동 후의 그 상쾌하고 충만한 기분은 좋아한다.
오늘은 피곤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쓰고 난 후의 성취감은 좋아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 주는 잔잔하고 고요한 평온을 좋아한다.
장 봐와서 무엇 좀 해 먹고 나면 금세 쓰레기가 한 무더기다. 서로 미루다 결국 양손 가득히 보듬고 나간 엘리베이터에서 쓰레기를 든 다른 손들을 만난다. 흐읍하며 숨을 참고 날숨과 함께 1층에 도착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같이 쓰레기장까지 빠른 걸음이다. 선크림의 통과 마개를 나누고, 병과 라벨을 구분한다. 기계적이어서 무서우리만큼 정확한 분리수거를 마치고 빈 손으로 돌아오는 가벼운 양손에, 두 다리가 느긋하다. 나온 김에 걸어지는 이 산책의 시간이 좋다.
산책에서 돌아와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오늘 처음 보는 얼굴처럼 또 만난다.
(누군가 그랬다.... 목표가 싫으면 곁다리를 목표로 해보라고. 그렇게 은연중에 원래 목표를 이뤄버리라고.)
핸드폰에 '연애의 참견'을 켰다. 싱크대에서 보일만한 주방 구석 건조한 곳에 핸드폰을 고정해 두고 세제병을 수세미에 펌프질 한다. 눈은 티브이에, 손은 그릇에, 각자의 일이 바쁘다. 설거지하는 게 아니라 티브이 보는 거라고.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도 내 맘 편하자고 그런다. 남의 연애에 진심이라 티브이에 푹 빠진 사이, 씻어내고 쓸려보내며 그릇들은 자신의 자리를 잘도 찾아간다. 날랜 손놀림이 제법 프로페셔널하다. 싱크대 주변의 물기를 훔치고, 수세미를 헹궈 걸고, 고무장갑을 뒤집어 말리면 그 순간이 주는 개운함이 있다. 오다가다 보이는 반짝이는 싱크대가 다음 식사까지 내 기분을 좌우한다. 내가 이 기분을 좋아했지.
설거지옥에 우렁각시 말고 나를 보내니 우렁각시가 얻어갈 기쁨은 내 것이 되었다.
원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전의 마음속 욕구.
Wanting is the desire you feel before doing something
좋아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
Liking is the satisfaction you feel after doing some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