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톡방에는 몇 호의 피해가 더 심한지 겨루기라도 하듯 창문 틈, 벽사이를 적신 비의 사진이 올라온다. 다른 아파트의 사정을 퍼다 나르는 사람도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가 고층에서 떨어지고, 하수도가 넘쳐 인도가 다 물에 잠기는... 볼수록 공포스러운 톡방 소식에 눈을 떼고 주의를 다른 곳에 돌려본다. 거실의 샹들리에가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글을 쓰던 탁자의 무게 중심이 바뀌는 미세한 느낌도 무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때다 싶어 욕실 대청소를 시작했다. 청소하기 좋은 날이다. 묵은 때를 벗겨낸 욕실은 쿰쿰한 냄새를 벗고 산뜻한 향내를 입었다. 빨간색 티라이트도 켜놓으니 오며 가며 보는 기분이 따뜻하고 아늑하다. 먼지탄 커튼도 세탁기에 돌려 다시 걸었다. 향긋한 세재 냄새에 온 집안이 꽃밭이다.
최근 재독을 시작한 사피엔스를 읽었다.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 살아온 역사에 대해 격하게 공감하며 아파트와 같이 밀집가구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본다.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을 찬양하고 인간에게는 유목의 생활 방식이 적합하다는 작가의 주장에 반감이 들었다. 태풍 기후에 내가 안락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집이 있는 덕분이며, 우리가 이어온 농경 생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견에 수긍과 반감을 동시에 가지며 오랜만에 느긋한 독서를 했다. 나무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와 문틈에서 불어오는 휘파람 소리는 배경음악이 되었다.
아차, 문밖에 전기 충전기를 꽂아 놓고 들여놓지 않은 차를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남편은 차량을 충전기와 분리하고 지하로 옮겨놓겠다며 호기롭게 빗속으로 나갔다.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나는 금세 유발하라리의 매력적인 문체에 빠져들어 버렸다.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무슨 일인가 묻는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가 답한다.
"누가 키우던 개를 버렸나 봐. 내가 로비로 데려왔어. 먹을 것 좀 있을까?"
태풍 속에서 주인을 잃고 황망하게 떠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를 지나치지 못한 남편은 본인도 흠뻑 젖었음에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목줄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주인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연유를 모르니 답답할 뿐이다. 급한 마음에 찬밥에 물을 넣어 끓이고 목살 한 조각을 삶아 잘게 썰었다. 한 김 식힌 밥을 들고나갔다. 그리고 마주친 개의 몸집에 크게 놀랐다. 송아지 만한 개는 그 사이 남편과 친해졌는지 남편만 졸래졸래 따라다닌다. 구석구석마다 영역표시를 하며 마음을 좀 안정시킨 듯 보였다. 되는대로 준비한 밥이 녀석의 입맛에 맞았는지 녀석은 순식간에 빈 그릇을 내밀었다.
고층 건물이 많은 지역이라 행여 낙하하는 물건이 있을까 걱정이 됐다. 남편을 계속 밖에 둘 수가 없었다. 남편은 개를 두고 올 수 없었고, 나는 남편을 두고 올 수 없었다.한참의 실랑이 끝에 개를 놓고 들어왔다. 떠나는 남편을 바라보는 개의 눈빛을 남편은 내게 보여줬다.
무슨 연유로 녀석이 떠돌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우리가 그의 말을, 그가 우리의 말을 이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인간으로부터 기인한 환경 파괴와 기후 온난화는 물론이고 동물 식용, 학대 등 동물권의 관점에서 그 많은 동물들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분노일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태풍은 지나갔다. 성난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부러진 나무, 떨어진 창틀, 깨진 유리... 우수수 옷을 떨궈버린 땅 위의 젖은 잎사귀는 어지간한 비질로는 쓸리지 않는다. 비질하는 여인의 등에 다시 비가 내린다.
개가 자못 걱정되었던 남편은 비가 멈추자마자 다시 로비로 내려간다.
개가 없다.
개가 갔다.
가지 않고 여기 있었다면 고민거리였을 녀석이 제 발로 사라지니 다행인 건지 아쉬운 건지 모르겠다. 부디 그 사이,주인이 와서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갔기를 바란다. 주인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그 순수한 마음에 조금의 상처도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