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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14. 2024

배운 지 모르게 배운다.

습관이 유전이 되지 않게

우리 아빠 손은 축축했다. 

태어난 기질이 비슷한 우리 부녀는 다소 쉽게 긴장하고, 예민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다


시간은 30년 전 초등학교 2학년. 

아빠는 그토록 원했던 애마를 구입했다. 더러움이 덜 타는 은색 바디에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한 투도어 프라이드. 아빠의 프라이드는 우리 가족의 자존심이었다. 


어느 날 그 자존심을 정말 구긴 날이 있었다. 

우리 오누이를 뒤에 태운 아빠는 호기롭게 시내 운행 연습을 떠났다. 초보들이 이례 그렇듯이 문제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긴다.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일방통행 도로에 진입한 것이다. 한 참을 지나 알게 된 사실은 우리 프라이드가 앞에서 오는 차들과 뽀뽀하게 된 상황이라는 것. 


그 당시 내비게이션이 어딨나. 아빠는 급한대로 옆 길에 차를 대고 유턴을 할 기회만 보고 있는데 야속한 차들은 꼬리 지어 온다. 비좁은 도로에서 이 초보운전자는 옆 상가 신경 쓰랴, 오는 차 신경 쓰랴, 한 번에 돌지 못하는 길 너비 생각하랴, 그야말로 진땀을 뺀다. 지나가는 숙련공들은 창을 열고 아빠에게 한 마디씩 던진다. 그 당시 한국사회는 왜 이리 톨러런스가 부족한지. 누가 잘못하기만 기다린 듯 한 마디씩 던지고 간다.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실수 한 번 저지르지 않은 듯하다.

자식들이 뒤에 있는데 욕을 배부르게 얻어드신 아빠는 이마와 손에 땀이 흥건했고, 서투른 솜씨로 운전대를 이리 틀고 저리 틀고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다.  


본래 땀이 많은 손이다. 아빠 딸 맞다.

핑크색 미끄럼방지 면장갑을 준비했다. 빠릿빠릿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 옷도 날래고 스포티하게 입었다. 

약속한 시간, 집 앞으로 찾아온 그는 첫 대면의 자리에서 나에게 자기의 자리를 양보했다. 

"선생님, 저 운전면허시험 이후로 한 번도 운전대 잡아 본 적 없어요." 주눅 든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어허, 그럼 언제부터 하려고? 안전띠 매세요." 

나도 나를 못 믿는데 당신이 나를?


첫날부터 차들이 쌩쌩 달리는 시속 80km/h제한 고가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이곳은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2시간 후, 거북이 속도로 넋이 반쯤 나간 채 나는 집에 돌아왔다. 

'이거 내일도 할 수 있을까?'

우선 놀랜 가슴 눈을 붙여 달래 본다. 


꿈속에는 운전 10년 차의 젊은 우리 아빠가 제법 숙련된 솜씨로 운전을 하고 있다. 

아빠는 앞차가 조금만 차선을 넘어가도 경적을 빵빵,

앞차가 조금만 천천히 가도 헤드라이트를 깜빡깜빡,

누가 급정차라도 하면 "이 XX 저 XX!"

옆자리의 엄마, 그리고 뒷자리의 우리는 안중에 없다. 아빠가 그리 날쌔고, 자신감이 넘치고, 욕을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뒷자리의 어린 나는 그 욕이 듣기 싫었다.

옆자리의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화가 나있었다. 

아빠는 차 안에서 다른 운전자를 힐난하는 소리를 습관적으로 해댔다. 차 밖에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시간은 이튿날도 지나고 약속한 10시간의 도로주행이 끝났다. 좁은 길과 비 오는 밤길을 나의 숙제로 남겨둔 채. 모든 수업이 마찬가지듯이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은 학생이 스스로 배워야 한다. 

그렇게 다들 숙련공이 된다. 

너도 될 수 있어 베스트 드라이버

나와는 정반대로, 내 남편은 담이 크다. 

손이 보송하다. 

도로주행 10시간을 마친 내게 아이의 픽업을 맡긴다. 삥삥 돌아서 1시간 반이 되어서야 겨우 학교에 도착하는 스쿨버스의 1번 탑승자로서의 내 아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베스트 드라이버로의 성장 과정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아침저녁 등하교 왕복 총 3시간의 시간은 내게 더없는 운전 연습의 기회가 되었다. 아이는 그 덕에 차에서 게임도 하고 숙제도 하고 모자란 잠도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운전할 때 그 사람의 숨은 인격이 드러난다. 

운전자들의 공통된 속성 중 하나는 다른이 보다 단 1분 1초라도 늦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미운 말이 나왔고, 나 또한 들리지는 않지만 사이드 미러로 확인할 수 있던 번쩍번쩍하던 그들의 언어를 들었다.


엄마가 미운 말을 할 때면 아이는 게임을 잠시 내려놓고 의식을 내게 집중한다.

그날따라 순간 내 입이 부끄러웠다. 

예쁜 말, 고운 말을 강요하고 존댓말 교육을 해오던 나였다. 

내 말은 차 유리에 부딪혀 상대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내 아이가 듣는 메아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친구와 놀다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이며 "반사!" 하며 놀았다. 

지금의 타 운전자들은 나에게 무언의 반사를 외치고 있다. 

결국 내 입이 추해지고, 중요한 건 내 아이가 듣는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길은 운전의 숙련이 아니라 마음의 숙련이자 마음공부의 일환으로 생각해야 한다. 

도로에 나가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매번 싸우기만 하고 지낼 수 없잖은가.

싫으면 피해 가고, 급할수록 돌아가면 된다. 

먼저 양보하고, 안전거리 지키며, 남에게 기대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여기는 빠르고, 위협하고, 화내는 운전자들이 쉽게 교통경찰에게 붙잡힌다.

화내면 결국 내가 손해다. 웃으며 운전하자.

배운 지 모르게 배우는 녀석들 (딸과 친구)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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