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올케가 4kg에 가까운 아들을 자연분만으로 낳은 지 벌써 10개월이 지나간다. 두 주먹을 꽉 쥔 채 터프하게 세상에 인사한 내 조카는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3개월 아기의 성숙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눈을 사선으로 덮은 도톰한 눈꺼풀은 한눈에 상대를 제어하는 카리스마를 낳았고, 동그랗게 말아 쥔 주먹 위로 뻗은 팔뚝은 얇은 실을 군데군데 묶어둔 듯 했다. 목덜미의 주름과 손금에 낀 하얀 때의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좋아 맡고 또 맡았다. 등허리 밑으로 뿌려진 쪽빛 물감은 우리 먼 조상의 보우가 아기위에 임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잘게 자른 샤인머스캣과 블루베리를 집어 넣는 분주한 입술이 세상의 달콤한 면을 제일 먼저 경험한다. 빠져드는 달콤하고 새콤한 맛은 매끈한 머릿속에 수많은 회로를 주름처럼 남기고, 혀를 통해 차곡차곡 기억과 경험으로 쌓인다. 살만한 세상이라는 결론은 살아갈 힘이 된다.
모자를 씌운 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내리고, 답답한 발이 양말을 잡아 늘려 벗어낸다. 숟가락을 쥔 손은 기특하게도 입에 명중하고, 먼발치에서 번쩍이는 핸드폰을 낮은 포복으로 쟁취한다. 아기에게 주어진 하루는 임무의 완성이고 목표의 쟁취이다. 어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제보다 하루 더 독립한 오늘이다.
엄마의 목소리에 고막이 진동하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동공이 반응한다. 부르고 추켜대는 엄마의 응원에 벽을 잡고 일어섰다가, 일어선 김에 무릎을 연신 굽히며 동요의 리듬에 무아지경이 된다. 지켜보는 어른들의 웃음소리에 카메라가 흔들리고, 결국엔 렌즈를 내려놓고 드러누워 직관을 선택한다.
오뚝이 같던 발바닥은 체중이 실려 판판해지고 튼실한 허벅지와의 콜라보로 몸을 우뚝 세운다. 양발의 대근육과 소근육의 조합은 이제 막 깨어나 어쩔 줄 모르는 막막한 모양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우람한 이 작은 인체는 어느새 1평 남짓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묘목의 모습으로 정지한다. 모음으로만 말하는 통에 아기의 언어는 옹알이로 치부되지만, 팔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결이 아기의 외침 같은 한마디를 부단히 듣고 기록한다. 외침은 줄 끊어진 연이 되어 창공을 가로지른다.
잎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수런거리는 숲에 있다. 연못을 둘러싸고 한 발짝 간격으로 열립한 녹나무 군락에 깊이 들어와 있다. 오가며 재재우는 참새 비슷한 노란 꼬리 새와 새우 몸에 가재 집게를 장착한 징거미의 유영소리가 수면 위로 뽀글뽀글 올라온다. 밤새 내린 비로 덮인 벤치를 훑어내리는 손날의 방향을 따라 빗물이 급류를 이룬다.그리곤 바닥으로 덧없이 쏟아져흔적 없이 땅으로 스몄다.
숲의 울타리 너머로 크게 나있는 8차선 도로의 차들이 오늘도 성급하게 달린다. 매연과 브레이크 분진은 숲이라는 거름망을 통해 걸러지고 정화되지만 엔진, 타이어 마찰음, 바람의 속도가 내는 소리까지 걸러내기에는 아직 성글고 젊은 숲이다.
주간에는 45 데시벨, 야간에는 40 데시벨이 넘어가면 소음으로 분류가 된다. 이 순간 48 데시벨을 표시하는 소음 측정기가 정도를 알리지만, 소음까지도 고요하게 느껴지는 무던한 청각 덕분에 마음은 잔잔하다.
나무의 귀
나무는 한번 뿌리내리면 이종 하기 전까지는 그 자리를 일생의 터전으로 삼는다. 척박한 흙이라도 나무가 한번 재식된 자리는 생명의 자리로 변한다. 어느 생명이든 살고, 살릴 수 있는 힘이 흙에 깃들기 때문이다.
나무는 생명과 성장의 상징이다. 씨앗에서부터 발아하여 자라나는 모습은 우리 인간의 삶의 연속성과 변화를 공통적으로 나타낸다. 인간인 우리와 나무의 유전자는 어느 정도 일치한다. 실제로, 인간과 식물의 유전자도 약 20% 이상 유사하다는 연구가 있는데, 이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을 많은 생명체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에너지 생성, 세포 분열, 단백질 합성 등의 기본적 생리 과정은 대부분 생물체들의 공통적으로 가진 유전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흡족하게 내린 빗물을 뿌리에 저장하고 한껏 싱그러워진 나무는 우리의 소리가 궁금하다. 이파리를 비벼 말을 걸고 수제비 같은 귀를 돋우어 아기의 옹알이를 바람결에 전해 듣는다. 세상에 뿌려진 온갖 소리와 소음에 귀 기울이며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상기한다.
궁금한 목이(木耳)*가 껍질 틈 사이로 샐그러지게 내밀었다. 우산대로 슬슬 건드려 떨어진 한 조각을 무심코 코에 대본다. 아기 목덜미와 손바닥의 쿰쿰하고 비릿한 냄새가 미끌한 목이의 촉감 위에 익숙하게 덮여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존재는 은근하며 익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목이(木耳) 버섯: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이란 뜻의 목이(木茸)가 아니라, 모양이 흡사 '나무에 달린 귀(木耳)'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