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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범 Sep 03. 2023

뒤집힌 세계에서 우리는 - 연극 <스고파라갈>

 어릴 적, 처음 물구나무 서기에 성공했던 때가 떠오른다. 벽에 겨우 기댄 나는 감히 중력에 반하는 대가로 벅찬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연습을 계속하고, 어느 날 겨우 몸을 안정시켰을 때가 되어서야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었다. 특별할 것도 없던 체육관은 반대로 뒤집힌 채 독특한 심상을 자아냈다. 


그 뒤집힌 세계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탓에 자꾸만 물구나무 서기를 시도했다. 피가 쏠리는 고통을 견뎌야만 볼 수 있는 드문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보던 체육관이 판타지 세계의 일면인듯 어딘가 독특해지는 감각도 좋았다. 세상을 잠시 뒤집고 바로 선 채 하루를 살아갈 때면 이 일상적인 세계가 문득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물구나무를 선 채 보는 이것이 똑바로 선 세계가 아닐까. 오히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계가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뒤집히고, 뒤틀리고,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것 아닐까. SF 영화에서도 종종 그런 소재가 나오지 않는가. 가운데에 거대한 거울이라도 둔 듯 완벽히 뒤집힌 세계와 바로 선 세계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 고로 무엇이 뒤집히고 무엇이 바로 섰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시선뿐이다.   


연극 <스고파라갈>은 그러한 뒤집힌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선 세계에서 모든 것들이 바로 선 채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뒤집힌 세계를 통해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연극 <스고파라갈>은 갈라파고스를 반대로 읽은 말을 제목을 삼았다. 그 자체로 연극의 배경이자 뒤집힌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공연은 일곱 명의 인간이 미지의 섬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땅거북. 처음에는 땅거북의 외양을 힌트 삼아 여러가지 가정을 내놓던 이들은 곧 그에 얽힌 온갖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일곱 인물의 시선으로만 그 너머의 풍경을 감각하는 관객은 머릿속에 자신만의 땅거북을 그려 보고자 노력한다. 처음에는 섬만큼이나 거대한 등껍질을 가진 회백색의 거북을 상상했다. 마치 신화 동물과 같았던 땅거북은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작고 볼품없고 그저 느릴 뿐인 연약한 생물처럼 느껴졌다. 땅거북 자체로서의 특성보다는 점점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바로 서 있던 세계는 땅거북에게는 너무나 어지러웠다. 빠르고, 물렁하고, 시시각각 변하며 한 생물에게 다른 생물의 삶을 착취할 권리가 너무나 자연스레 주어지는 이 세계가. 그런 오만한 생물인 우리가 땅거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물구나무를 서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뒤집히고, 그곳에 이용당하지 않은, 그 자체로서의 땅거북이 있다. 섬처럼 단단하고, 크고, 세상의 속도에 반하며 느릿하게 자기 삶을 이어나가는.  

땅거북은 계속해서 '바다, 바다로 가야해'라고 말한다. 일곱 인물은 그 말에 계속해서 반응한다. 바다로 가야한다니, 그러고 보니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하지만 난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걸? 난 무얼 해야 하지? 난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걸? 인물들의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땅거북을 바다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탐욕에 찬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모두의 방황이다. 땅거북은 물론, 이 비극을 초래한 인간조차 갈 곳을 잃고, 자신의 쓰임을 잃고, 정체성을 잃는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넓히겠다고 시작된 일들은 결국 지구를 좀먹고, 모두의 터전을 파괴해버렸다. 적어도 그 속에서 땅거북은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을, 바다임을 알고 있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한다. 이제 무얼 향해 나아가야 할 지 알 수 없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캐리어에서 수많은 책을 꺼내 그것을 다급하게 쌓고, 무너지면 또 쌓고 쌓다가 결국 무대 한 쪽이 책으로 온통 어지러워진 장면이었다. 일곱 인물들이 활보하면서 깔끔했던 무대 공간이 점점 인간의 흔적으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쯤에는 한 인물이 캐리어인 줄 알았던 자신의 아이스박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다른 인물들에게 건네준다. 각자의 일에 집중한 인물들 중 아이스크림에 관심 갖는 이는 없다. 덕분에 바닥에 달라붙은 채 끈적히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은 무대 공간, 스고파라갈을 끝까지 더럽히고 만다. 덕분에 무대를 자유롭게 활보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의 흔적은 인간 자신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섬의 둘레를 빙빙 돌던 거북이 문득 방향을 바꾼다. 일곱 인간들은 그것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어디에선가 들었던, 전환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들은 그제야 질문한다. 둘레를 의미 없이 도는 것만 같았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았던 것들은 언젠가 변화하고 사라진다. 거꾸로 된 세계에서는 이를 보다 잘 감각할 수 있다. 인간들은 그제야 자신들에게도 무언가 변화가필요함을 직감한다. 거꾸로 서본 자만이 이 세계가 바로 서 있었다는 걸 안다. 


<스고파라갈>은 무척 생생한 작품이다. 관객으로서의 나도 스고파라갈에 도착한, 어디로 갈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되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배우들과 아주 가까이 위치해있기 때문일 테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관람 경험이었다. 블랙박스 극장인 만큼 관객들이 보다 가까이에서 배우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듯한 느낌을 강화했다고 여긴다. 


무엇보다 배우 한 명 한 명의 매력이 돋보이는 연극 <스고파라갈>을 놓치지 않고 관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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